이달 들어 기록 쏟아지는 전셋값 통계

‘전세난 더는 못 참겠다’ 집값도 덩달아 꿈틀

전세매물 잠겼다는데…갑자기 3+3안 등장

[헤럴드경제=양영경 기자] 새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시행된 지 이달 7일로 100일이 된 가운데 시장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71주째 고공행진하고, 여기서 시작된 전세난은 수도권을 넘어 전국으로 확산 중이다. 전세난 회피수요가 매매수요로 돌아서면서 집값도 덩달아 오르는 등 시장 불안이 심화하고 있다. 정부는 전세난의 원인을 ‘저금리’, ‘주거문화’ 등으로 꼽으면서도 별다른 해법은 내놓지 못해 시장의 불만도 커진 상황이다.

임대차법 100일…전셋값 날고 매맷값 뛰고, 시장 혼란엔 “참으라”, “3+3법안”[부동산360]
서울 송파구의 한 중개업소의 모습[헤럴드경제DB]

지역 구분이 없다…뛰는 줄 알았는데 날고 있다

7일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11월 첫째 주(2일 기준) 전국 아파트 전셋값은 0.23% 올라 전주 대비 0.01%포인트 올랐다. 이는 61주 연속 상승인 데다 2015년 4월 셋째 주 (0.23%) 이후 5년 6개월 만에 최대 폭으로 오른 것이다.

전국 아파트 전셋값은 지난해 8월까지 약 20개월간 마이너스 변동률을 기록하다 9월부터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다. 매주 0.10% 안팎으로 오르다가 새 임대차법이 본격 시행된 올해 8월 0.20% 뛰었다.

서울에서 시작된 전세난은 수도권과 지방으로 확산 중이다. 서울에선 특히 강남4구를 중심으로 크게 뛰고 있다. 이들 지역의 아파트 전셋값은 8월 첫째 주 0.30% 올라 서울 전체 권역 중 가장 많이 올랐다. 이후로도 타 권역보다 매주 0.01∼0.11%포인트 높은 변동률을 보였다.

수도권 아파트 전셋값도 이번 주 0.23% 오르면서 5년 만에 가장 높은 주간 변동률을 나타냈다. 8월 첫째 주 0.22% 올라 올해 최고점을 찍은 뒤 2개월 가까이 상승 폭이 둔화했지만, 지난달부터 매주 0.14%→0.16%→0.21%→0.23%→0.23%로 상승폭을 키웠다. 전세난에 서울에서 밀려난 수요가 수도권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지방 아파트 전셋값 역시 이번 주 0.23% 뛰었는데, 이는 통계가 작성된 2012년 5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의 주간 변동률이다.

새 임대차법 시행 이후 14주간 전셋값 누적 상승률은 서울 1.28%, 수도권 2.31%, 지방 2.24% 등이다. 시행 직전 14주(서울 0.93%, 수도권 1.61%, 지방 1.07%)와 비교하면 최근 들어 상승세가 가팔랐다는 것이 드러난다.

전세난에 지친 세입자들이 ‘집을 아예 사자’는 수요로 돌아서면서 집값을 끌어올리는 현상도 전국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전국 아파트값 상승률은 이번 주 0.17% 올라 6·17 부동산 대책 직후 수준으로 올랐다. 서울 아파트값은 0.02% 올라 최근 10주 연속으로 0.01% 올랐던 횡보를 끝냈다. 수도권 아파트값은 0.15% 올랐는데, 7·13 대책 직전인 7월 둘째 주(0.16%) 이후 4개월여 만에 최고 수준으로 올랐다. 서울 출퇴근이 가능한 김포는 갭투자 수요까지 합세하면서 주간 상승률이 1.94%에 이르는 등 과열 양상을 보였다.

임대차법 100일…전셋값 날고 매맷값 뛰고, 시장 혼란엔 “참으라”, “3+3법안”[부동산360]
서울 송파구의 아파트 밀집지역의 모습 [헤럴드경제DB]

시장 혼란이 커지는데…정부는 “저금리 탓”, “참아달라”

시장에선 저금리 장기화, 집주인들의 반전세·월세 선호, 청약대기·이주·학군 수요, 실거주 의무 강화 등으로 가뜩이나 전세물건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이런 가운데 새 임대차법 시행으로 임대차 계약을 연장해 기존 주택에 2년 더 눌러앉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시장에 나올 매물들이 자취를 감췄다는 평가가 나온다. 새 임대차법이 전세난 악화에 촉매제 역할을 했다는 점에 대해선 전문가 사이에서도 거의 이견이 없다.

기존 세입자 다수는 계약을 2년 더 저렴하게 연장할 수 있게 됐지만, 새로 집을 구하는 임차인은 전세품귀 속에 어렵게 찾은 집마저 보증금이 폭등해 발을 동동 구르는 상황이다.

정부도 전세 대책은 거론하지만 마땅한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전세물건 부족에 따른 전세난을 해결하려면 즉각적인 공급이 이뤄져야 하는데, 이런 방안을 마련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안일한 현실인식이 원인 파악과 그에 따른 대응책 마련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3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임대차법 때문에 수요와 공급이 동시에 줄어 시장에 나오는 공급물량이 줄었다는 점에 대해선 인정한다”면서도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코로나19를 겪으면서 기준금리가 0.5%로 떨어진 것”이라고 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지난 4일 전세대란의 원인에 대해 “시중 유동성이라든지 금리 같은 측면이 있다”며 “다른 측면으로는 주거 문화가 바뀌는 것 같다. 주거문화가 바뀌면서 세대분화가 일어나고 고급화돼 공급을 열심히 해도 수요의 폭증을 따라잡지 못하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도 같은 날 “수도권 전세 가격은 상승 폭이 유지되고 있는데 이는 사실 세대 분할 효과가 크다”고 거들었다. 최근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전세난에 대해 “불편해도 기다려달라”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전세난이 저금리 때문에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정책 외 부분만 탓하고 있으면 사실상 내놓을 수 있는 대책이 없다”며 “현재 전세대란을 심각하게 보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여당에서는 거주기간을 최장 6년간 보장하는 임대차법 개정안이 슬그머니 발의되면서 여론이 들끓고 있다. 가뜩이나 왜곡된 시장 상황이 더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사무총장인 박광온 의원은 임대차 보장 기간을 3년으로 늘리고, 계약을 갱신하는 경우 존속기간도 3년으로 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박 의원은 “우리나라는 초등학교 6년 및 중고등학교 6년의 학제를 취하고 있고, 임차인의 거주기간이 자녀의 취학 기간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며 “임차인의 주거 안정성을 제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회의안정보시스템에는 이날까지 800건이 넘는 반대 의견이 올라왔다.

y2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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