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머셜 영역에 대한 평가는

사회에 끼친 영향력이 척도

피부에 와닿는 혁신 만들어낸

스티브 잡스 가장 존경해…

비건 패션·의류 폐기물 등

옳고 그름의 영역 점점 늘어나

사회 고민 없인 디자인도 없어

‘KUHO’ 정구호 “패션은 삶의 기둥…의식주 아우르는 변화에 동력 제공해야” [헤럴드디자인포럼 2020]

“커머셜 영역도 의식주(衣食住)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로 관심사를 확장시켜나가고, 사회를 어떻게 진화시켜 나갈지 고민해야 합니다” - 디자이너 정구호

정구호는 가장 존경하는 사람을 물을 때 스티브 잡스라고 말하는 디자이너다. 패션이 본업인 그가 터틀넥과 청바지가 패션의 전부였던 스티브 잡스를 존경하는 이유는, 디자인을 향한 그의 남다른 시선에서 비롯된다. 이 세상의 모든 커머셜 영역들이 사회와 문화에 끼친 영향력을 척도로 칭찬받고 존경받을 수 있도록 진화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헤럴드디자인포럼2020 연사로 나서는 정구호는 인터뷰에서 ‘진화’라는 개념을 강조하며, 패션을 포함한 어떠한 상업 영역도 사회에 변화의 동력을 미칠 수 있을 때 가치있다고 강조했다. 패션은 단순한 껍질이 아닌 의식주를 이루는 삶의 기둥이며, 사회에 대한 고민 없이 디자인도 있을 수 없다는 메시지도 전했다.

정구호는 “동시대 혁신가 중엔 머나먼 우주를 꿈꾸는 일론 머스크 같은 대단한 사람도 있지만, 디자이너로서 추구하는 혁신과 진화는 스티브 잡스가 일궈낸 ‘피부에 와닿는’ 변화에 가깝다”고 말한다. “무엇을 만들고 발견하는 것 뿐 아니라, 그로 인해 그 문화를 향유하는 사회에 영향력을 주고 진화시켰느냐가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그의 관심사도 본업인 패션 외에 의식주(衣食住)의 모든 영역으로 열어뒀다. 영화 미술감독부터 서울패션위크 총감독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정구호는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땐, 내가 관성을 벗어난 틀 바깥으로 확장할 수 있을지를 기준으로 도전한다”며 “그 기준에 맞지 않아 과감히 도전하지 않았던 분야들도 존재하지만, 일단 도전했을 땐 시간을 쏟고 될 때까지 노력하다보니 이력들이 쌓인 것”이라고 말했다.

그에게 패션은 삶의 안쪽부터 차곡차곡 채워나간 결과물이다. 그가 의(衣)만큼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식(食)과 주(住)다.

정구호는 “집의 가구는 응접실 소파나 티테이블, TV 같은 기본적인 것들만 두고 생각을 비우려 노력한다. 그렇지만 집 한 켠엔 30년간 모아온 도예작가들의 그릇도 보물처럼 자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웃었다.

물건을 덜어낸 빈 공간은 먹고사는 이야기로 가득 채운다. “어릴 적 외할머니가 만들어 주신 황해도식 맑은 동태찌개를 재현하기 위해 노력 중”이고, “눈코뜰새 없이 바쁘지만 직접 음식을 만들어 먹고, 김장도 하는” 생활인의 삶도 부지런히 이어간다.

‘KUHO’ 정구호 “패션은 삶의 기둥…의식주 아우르는 변화에 동력 제공해야” [헤럴드디자인포럼 2020]
2019 밀라노 디자인워크 한국공예전‘ 수묵의 독백’

정구호는 10년 단위로 미래를 예측하고 고민해왔다. 그는 요즘도 미학적 측면에만 머물지 않고, 시대의 큰 그림과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엔 동물성 섬유를 배제하는 ‘비건(Vegan) 패션’에 관심이 많다. “인조가죽도 결국 합성소재이고 그 자체가 또 다른 화학적 쓰레기로 남는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는 데 고민이 있다. 저렴한 SPA브랜드로 인해 의류 폐기물이 늘어난 것과 비슷한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동물성 가죽을 사용하더라도, 소고기 도축과정에서 부수적으로 발생한 가죽을 활용하거나 가죽 자투리를 가루로 만들어 재가공하는 재활용이 기술적으로 가능해졌다.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고민해야 하나. 어떤 길이 옳고 그른지 이분법 적인 생각으론 판단하기 어렵다. 이제 디자이너와 개개인이 판단해 나아가야할 지점이 늘어나는 것”이라고 했다.

정구호가 쌓아온 디자인과 삶에 대한 통찰은 헤럴드디자인포럼2020에서 공개된다. 디자인이 고민할 영역과 지점이 점점 늘어나는 세상에서, 우리가 발 딛은 세상과 딛고 선 사람까지 사려깊게 생각해 온 디자이너가 있다는 건 얼마나 든든한 일인가.

김유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