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스포츠·동화작가 활동 한진 조현민 군인·화가 꿈꾸는 SK 최민정·LG 구연수
재벌가 특유의 엄숙함·신비함은 남의 일 경영에서 일상에서 파격적인 재계 막내딸
[특별취재팀] 재벌가에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했다. 재벌가 사람들 특유의 엄숙함과 신비주의를 벗어던진 딸들이 그 주인공이다. 특히 차녀와 막내딸들은 자유분방한 사고와 뛰어난 사교성으로 대중 친화적인 면모를 보이는가 하면, 남다른 감각을 바탕으로 광고와 패션을 도맡아 경영에도 자기 색을 입히는 중이다. 이같은 ‘파격’을 대부분 이들이 담당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그만큼 언니, 오빠에 비해 짊어져야 할 책임감과 부담이 상대적으로 덜해 더욱 과감한 행보를 걷는 것으로 풀이된다.
▶‘번지녀’·‘e스포츠의 여신’ㆍ‘동화작가’, 한진 조현민= 조양호 한진그룹의 막내딸인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31)는 첫 직장생활부터 화제였다. 그는 2005년 아버지 회사가 아닌 LG애드(현 HS애드)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광고 일을 배웠다. 2007년 대한항공 통합커뮤니케이션실로 자리를 옮긴 이후에도 파격은 이어졌다. 대한항공의 TV CF 뉴질랜드 편에 직접 번지점프를 하는 ‘번지녀’로 출연했으며, 자회사 진에어의 신입 승무원들과 함께 교육을 받고 실제 기내 음료서비스에 나서기도 했다. 작년 말 대한항공 임원들과 함께 직접 와플을 구워 출근하는 직원들에게 나눠 준 것도 그의 아이디어였다.
e스포츠 마니아이기도 한 조 전무는 e스포츠 팬들 사이에서 재벌가 막내딸보다 ‘e스포츠의 여신’으로 불린다. 그는 지난 해 자신이 본부장으로 있는 진에어를 통해 e스포츠 게임단을 창단했고, 자주 현장에 찾아가 팀 경기를 관람하는 모습을 보였다. 창단 당시 조 전무는 ‘우승하면 선수들 얼굴로 항공기를 래핑하겠다’고 공약했는데 이후 우승소식이 들려오자 트위터를 통해 “제대로 된 래핑 실력을 선보이겠음”이라는 재치있는 멘션으로 응답했다. 실제로 지난 5월 래핑된 항공기를 공개하자 e스포츠 팬들은 약속을 지킨 ‘여신’(?)에게 큰 지지를 보냈다.
최근에는 그의 직함이 하나 더 추가됐다. 동화책 ‘지니의 콩닥콩닥 세계여행’을 출간하면서 동화작가로 등단했다. 회사일을 하며 점심시간과 주말에 틈틈이 집필했다고 밝혔다. 이밖에도 175cm의 큰 키 덕분에 두 차례 패션모델 제의를 받은 사실을 공개하기도 했다. 아버지, 언니, 오빠 모두 외부 노출이 적은 것에 대해 조 전무는 “모두 홍보에 관심을 기울였으면 좋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바람대로 그는 최근 공중파 토크쇼에 아버지 조양호 회장과 나란히 모습을 보였다. 이 방송에서 조 회장은 막내딸에 대해 “나이 차가 있는 언니, 오빠들을 따라가려고 노력하다 보니 독립심이 강해진 듯하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언니, 오빠와 8, 9살 터울인 조현민 전무는 자기만의 길을 걸으며 재벌 3세의 새로운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화가ㆍ군인 꿈꾸는 막내딸, LG 구연수ㆍSK 최민정= 막내딸들의 신선한 ‘반란’은 경영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아버지 회사 밖에서 자신만의 취미와 관심사를 좇으며 생활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들도 있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막내딸 구연수 양은 서양화가를 꿈꾸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 양은 구본무 회장이 51세에 얻은 늦둥이 딸로 아직 고등학생이다. 지난 해 어머니와 함께 인사동 경인미술관에서 ‘모녀전’을 열면서 본인의 재능을 대중 앞에 처음 공개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구 양은 가수 싸이의 모습이 그려진 작품 ‘PSY’ 등 인물화와 정물화 13점을 선보였다. 어머니 김영식 씨 또한 민화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화가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막내딸 최민정 씨(23)는 얼마 전 군 입대로 세간의 화제가 됐지만 그의 독특한 행보가 이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중국 베이징대를 다녔던 그는 방학 때마다 한국에 나와 레스토랑과 편의점 등에서 아르바이트하며 학비와 생활비를 스스로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어릴 때부터 부모와 떨어져 중국에서 유학생활을 한 것이 그의 자립심을 키운 계기가 됐다. 지난 해에는 한국에서 젊은 유학파 인재들과 판다코리아닷컴을 공동 창업하는 등 아버지 회사와는 관련 없는 곳에서 사회경험을 쌓아왔다. 중화권 대상의 온라인 쇼핑몰인 이 회사에서 민정 씨는 부사장으로 근무하다 해군 장교에 지원하면서 그만뒀다.
민정 씨는 대학에 다닐 때부터 지인들에게 “외할아버지(노태우 전 대통령)의 뒤를 이어 군인의 길을 가는 사람이 한 명쯤 나와야 하지 않겠냐”는 말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아들도 아닌 딸이, 그것도 재벌가 막내딸이 편한 생활을 마다하고 군에 자원입대한 것에 대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모범사례라는 평가다.
▶‘튀는’ 감각으로 그룹 경영참여하는 차녀, 삼성 이서현ㆍ광주요 조희경=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차녀인 이서현 제일모직 사장(41)은 미국 뉴욕의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서 현대 패션디자인을 공부하며 일찍이 예술감각을 길렀다. 그룹 내에서도 자신의 남다른 감각을 녹여낼 수 있는 패션(제일모직)과 광고(제일기획) 부문을 맡아 경영을 지휘하고 있다.
조태권 광주요 회장의 둘째딸 조희경 가온소사이어티 대표(34)는 아버지 회사의 한식사업을 주도하고 있다. 미국에서 디자인 공부를 한 조희경 대표는 이탈리아에서 음식을 공부하고 조리사 자격증을 취득해 셰프로도 일한 바 있다. 아버지 조 회장도 딸의 감각에 큰 신뢰를 보내고 있다. 한식점 ‘비채나’ 경영을 조 대표에게 맡긴 것도 젊고 신선한 감각을 갖고 있는 딸이 본인보다 더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조 대표는 케이블 TV의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 ‘한식대첩’의 심사위원으로도 나서며 방송활동에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