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정경수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글로벌 스마트폰 제조업체인 애플에 대한 제재를 중단하고, 자진시정안을 받아주기로 했다. 국내 이동통신사를 상대로 광고비 갑질을 저지른 애플은 법적 처벌을 피하게 됐다.
역시나 미국 기업에 면죄부를 줬다는 논란이 일었다. 공정위 내부서도 예상한 결과다. 그럼에도 신속한 피해 구제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감수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게 공정위 입장이다.
'통신3사 갑질' 애플에 처벌 대신 자진시정 기회
공정위는 지난 18일 애플코리아의 '거래상 지위 남용 행위' 건과 관련, 동의의결 절차를 개시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동의의결은 공정위가 제재를 내리는 대신 사업자가 제시한 원상회복 또는 피해구제 방안을 받아들이는 절차다.
애플은 크게 3가지의 시정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먼저 애플은 그간 SK텔레콤·KT·LG유플러스에 일방적으로 광고비를 떠넘긴 관행을 없애고 거래조건을 개선하기로 약속했다. 또 앞으로는 비용 분담을 협의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하겠다고 공언했다. 상생지원기금을 만들어 중소사업자나 소비자를 위해 쓰겠다고 했다.
이러한 소식이 전해지자 즉각 위법 기업에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애플은 법적 처벌을 피하는 동시에 금전적 이득을 보게 됐다. 우선 제재를 받았다면 관련 매출의 2%까지 과징금으로 내야 했다. 대내외적으로는 과징금 규모가 수백억원에 달할 수 있다는 분석이 있다.
게다가 애플은 해외서 기존의 영업구조를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애플은 다른 나라서도 통신사에 광고비, 사후서비스(AS) 비용 등을 떠넘기고 있는데, 한국 법원에서 이같은 행위에 대해 위법하다는 판단이 나오면 해외서 이뤄지는 관행까지도 바꿔야 할 부담이 있다.
길게는 5년 동안 법원서 불복 소송을 이어가며 부담해야 할 리스크를 피하는 대신 혐의를 일부 인정하고 피해를 보상하는 게 애플 입장에선 합리적이기도 하다.
동의의결의 장점은 효율성…ICT 산업에 효과적
공정위는 봐주기 논란을 감수하면서까지 자진시정 기회 부여를 택한 이유는 효율성이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법적 제재보단 자율 시정을 통한 신속한 거래 질서 개선이 효과적이라는 판단이 있었다. 특히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은 변화가 빨라 공정위 제재와 법원 판결을 거치면 사후약방문과 같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게다가 자진시정을 통해선 직접적으로 불공정한 관계를 개선시키고, 피해를 신속하게 구제할 수 있다. 과징금을 부과하고 검찰에 고발하는 등 법적 제재를 내리면 국고 수입이 늘고 위법행위에 대해 확실히 처벌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불공정행위의 피해자는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한다.
실제로 2009년 퀄컴의 2·3G 칩에 대한 충성 리베이트 제공행위에 대해 공정위는 2732억원 과징금을 부과했는데, 대법원 판결은 10년이 지나서야 (작년 3월) 사실상 공정위 승소로 나왔다. 이미 칩 시장은 이미 4G를 거쳐 5G로 넘어가는 단계였다.
동의의결 활성화는 조성욱 공정위원장의 뜻이기도 하다. 조 위원장은 지난 3월 '2020년 업무계획'을 발표하면서 "ICT 분야 등을 중심으로 경쟁 질서 회복 조치, 피해 구제 방안 등이 충분·타당할 경우 동의의결을 활용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면서 "동의의결은 피해 구제가 가능하다. (공정거래법 위반) 사건에 피해를 받은 분들에 대한 구제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정적 외부 시선 탓에…내부서도 고민
신속한 피해 구제라는 장점에도 사회적 논란이 반복되자 공정위 내부에서도 고민이 많다. 한 공정위 관계자는 "공정위도 이러한 봐주기 논란에 대해 인지하고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국회 등 외부에선 동의의결 제도를 나쁘게 바라보고 있어 고충이 크다"며 "지난 2018년 골프존이 동의의결을 신청했을 때도 외부의 강한 비판이 있어 결국엔 기각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개인적으로 동의의결 제도를 반대한다"며 "면죄부라는 소리까지 듣는 것보단 정석대로 사건을 처리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이러한 비난 때문에 동의의결 제도는 도입된지 만 9년이 됐지만 적용 사례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현재까지 총 10건의 동의의결 신청이 있었지만 인용된 경우는 5차례에 불과하다.
공정위는 동의의결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사후관리 강화를 추진 중이다. 현재 재발의를 준비 중인 공정거래법 전면개편안은 전문성 있는 외부 이행감독인을 선임해 반기별로 이행감독 현황을 공정위에 보고하도록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