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성 급한 불 다 꺼져…한은에 예치
역대 최대 유동성…실물은 ‘돈맥경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충격에 따라 한국은행이 대대적으로 돈을 풀었지만, 금융기관들은 이들 자금의 상당수를 ‘반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확산세가 꺾인 지난 4월부터 지난주까지 140조원이 넘는 유동성이 한은에 재예치됐다. 그만큼 한 때 현금 흐름에 비상이 걸렸던 증권사 등 비은행 금융기관들이 안정을 찾아가고 있단 해석이 나온다. 하지만 동시에 시중에 역대 최대 규모의 유동성이 풀렸음에도 실물 경제로 돈이 흘러가지 않는 이유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8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한은이 지난 두달 간 실시한 환매조건부채권(RP) 매각(7일물)에 총 502조7500억원의 응찰이 몰렸고, 이 중 141조2000억원이 낙찰됐다. 지난 4월부터 이달 초까지 140조원이 넘는 시중 유동성이 한은으로 흘러들어갔다는 뜻이다.
낙찰액 대비 응찰액 규모가 3~4배에 달할 정도로 금융기관들의 유동성 상환 수요가 급증하는 모습이다. 특히 지난 4일 실시된 18조2000억원 규모의 RP 매각엔 이보다 6배가 많은 110조6800억원의 신청이 몰렸다. 역대 가장 높은 응찰 규모다.
한은은 국채 등 지정된 채권을 담보로 은행 등 금융기관에 자금을 빌려주고, 만기 후 다시 채권을 돌려주고 자금을 회수하는 RP 매매 방식으로 유동성을 조절한다. 한번에 110조원 넘는 자금이 한은의 RP 매각에 몰렸다는 건 그만큼 시중에 자금이 넘쳐난단 뜻이다. 6월 현재 국채의 올 순발행 규모가 81조원 수준이란 점을 감안해도 엄청난 수준이다. 시중 RP금리(0.3~0.4%)보다 높게 형성된 금리(0.50%)도 집중 요인이 되고 있다.
또 다른 유동성 조절 수단인 통화안정증권(통안채) 발행에도 수요가 몰리고 있다. 지난 3일 2조5000억원 통안채(2년물) 발행에 총 17개 기관이 3조3200억원 규모로 응찰에 나섰다. 지난 2일 통화안정계정 예치금(28일물) 경쟁입찰에도 총 10조4000억원이 신청됐고, 이 중 5조원만 낙찰됐다.
한은이 전액공급방식(무제한)으로 금융기관들에게 실시하고 있는 91일물 RP매입도 거의 씨가 마른 상태다. 추가 유동성 공급의 필요도가 낮아졌단 뜻이다.
이로써 자금 경색 위기를 겪었던 비은행 금융기관들의 유동성 해갈은 어느 정도 해소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은행 등 금융기관들이 적극적인 대출 등 실물 경제로의 유동성 공급에 나서지 않고 있단 지적도 나온다. 이 때문에 실물 부문에선 돈이 정상적으로 돌지 않는 ‘돈맥경화’가 나타나고 있단 것이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 1분기 통화유통속도는 0.64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그러나 은행들은 저금리 속 수익 구조가 악화된 상황에서 무리한 대출 확대가 자산 건전성 악화를 유발할 수 있단 점을 우려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한은이 풀어준 돈을 그대로 대출로 흘려보내기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다.
이병윤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갑작스러운 수요 위축으로 매출이 감소하자 빚으로 일단 위기 상황을 넘기려는 한계기업들이 늘어나면서 일시적으로 기업대출이 늘어나는 경우도 있다”며 “은행들을 중심으로 건전성 점검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서경원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