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두에 앞서, 처음이라는 낯선 상황에서는 무엇이든 서툴다. 하지만 처음이라서 설레고 강렬하다. 2020년 새해를 맞아, 헤럴드경제에 첫 글을 전하는 필자의 마음도 첫 만남이라서 그런지 설렌다. 오늘도 삶의 새로운 각오를 다지며, 감히 이 글을 마주하는 독자들에게 “태양은 우리에게 고루 그 빛을 주지만 그 빛이 반짝하고 사라지느냐 영원히 지지 않고 발하느냐는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다”라고 전한다.
우리나라 노인인구가 이미 14.2%가 넘어섰다고 한다. 고령사회에 진입한 것이다. 그러나 고령화 속도는 거기에서 그칠 것 같지 않다.
지난해 통계청이 보고한 바에 따르면, 7년 후인 오는 2026년에는 다시 초고령 사회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렇게 되면 노인이 전체 인구 대비 20% 이상, 즉 1200만 명이 된다는 것으로 생산 가능 인구 비중이 그만큼 더 떨어질 것은 분명해진다. 노인인구 급증이란 이처럼 사회적 변화를 가져올 수 밖에 없는 필연적인 것으로 이는 오래전부터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이를 타개하기 위해 그 동안 정부가 노력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국민연금, 의료보험, 노령연금을 비롯해 노인요양병원과 요양원 등, 의료시설과 복지시설을 해마다 늘리고, 전문기관을 통해 정신 상담까지 무상으로 해주고 있는 것도 모두 다 그것을 대비하기 위한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그뿐만이 아니라 일자리 창출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그 성과가 만족할만한 수준에는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모두다 그렇다고는 할 수 없지만, 대다수의 노인들은 가족의 해체로 인한 고독과 경제적 빈곤, 경쟁사회에서 소외된 환경 등으로 인한 불안과 박탈감을 안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조그마한 충격에도 의기소침해지는 것은 물론, 상대적으로 사회의 중심에서 도태되었다는 자괴감으로 인해 심리적 갈등과 소극적 성격을 지니고 있게 마련이다. 여기에 더해 사회 전반에 깔린 정서가 무관심으로 일관한다면 이는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돈을 평생 쓰지 않고 모아야 겨우 제 몸 누울 집 한 칸 마련하기가 힘든 게 현실이다. 게다가 노인들에게는 늙으면 모든 인간에게 자연스레 찾아오는 노환의 치료를 위해 그 집을 팔아서 해결해야 할 지경이어서 지금의 복지 정책이 흡족해도 한편으로는 가혹하게만 보일 수 있다.
노인들은 자녀들을 대학까지 공부시켜도 취업이 되지 않아 밥벌이도 어려운 자녀들에게, 이젠 부모가 늙었으니 부양의 의무 운운해가며 책임을 물어봐야 아무런 메아리도 없는 것이 현실이여 안타깝고 가슴이 답답할 뿐이다.
정부는 미래 세대인 아동의 건강한 성장을 지원하고 홀로 노인, 고시원, 쪽방 거주자 등 주거지원 등 복지 사각지대에 처해 있는 이들을 돕기 위해 목표를 설정하고 강도 높은 복지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이 같은 복지정책을 추진하면서 성과를 점검해 추가적으로 복지 사각지대를 발굴해 지원 대상을 확대 할 계획도 구상하고 있다니 기대를 걸어 본다. 최근에는 부양의무자 기준의 1인 가구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정부 지원에서 벗어나 가난한 개인이 복지혜택을 받을 기회가 박탈당하는 사례도 흔하다.
제도상 근로능력자로 분류되는 거리부랑자도 일자리로 내몰리는 경우가 있다. 복지 수급 신청 절차와 선정 기준이 까다로워 신청하지 못하는 경우다. 또 복지 전담 공무원이 부족한 것도 문제다. 이러한 제도와 지원 시스템이 개선되지 않는 한 극빈층의 극단적 선택은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다. 개선의 출발은 가난을 바라보는 사회인식의 변화다. 가난이 게으름에서 생겨났고 개인의 책임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인간의 존엄을 잃었다고 생각할 때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를 목격하게 된다. 서둘러 현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하고, 정부와 지역사회가 촘촘한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정부의 후덕한 복지 정책 속에서 최근 대구에서는 40대 초반 부부와 중학생 아들, 초등생 딸 등 일가족 4명이 숨지는 안타까운 사건도 발생했다.
또 최근 인천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40대 여성 가장 등 일가족 4명과 함께 같은 달, 서울 성북구의 다가구주택에서도 네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되기도 했다.
이처럼 반복되는 가족의 비극을 단순히 개인의 불행으로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사회와 국가 복지 시스템에 구멍이 뻥 뚫렸다고 봐야 한다. 복지예산은 해마다 큰 폭으로 증액되고 있는데 비극은 더 잦아지는 것 일까.
실제로 보건·복지·노동 분야 새해 예산은 전체 예산의 36%를 차지하고 있다. 이처럼 복지예산이 해마다 증가하고 사회복지 전달체계 또한 눈에 띄게 개선되는 추세인데도 이런 일이 생기고 있다. 현금 살포성 복지 예산 지출도 해마다 엄청나게 증가 하고 있다. 근로장려금과 자녀장려금 등 현금을 뿌리는 복지 행정이 그렇다. 정부가 선심 쓰듯 복지예산의 지출을 확대하는 판국에 개인과 가정이 속절없이 무너지는 이유를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에 대해 필자의 생각은 간단명료하다. 복지 전달 체계가 잘못 설계된 것은 아닌지. 일자리가 사라지면 가난한 사람들은 더 속수무책이다. 가족 붕괴는 조만간 전체 공동체의 붕괴로도 번질 수 있다. 더 늦기 전에 정부는 현실에 걸 맞는 복지 전달 체계를 재점검하고 만약 설계가 잘못 되었다면 어긋난 선은 다시 연결하는 방식으로 재수정해야 한다.
복지도 중요하지만 비극을 막는 게 먼저란 말이다. 또 자녀를 소유물로 여기는 가부장적 사고체계도 개선하는 데 정부가 힘을 쏟아야 한다. 어려운 처지에 놓여 힘들게 생활하는 사회 소외계층을 적극적인 지원으로 복지 사각지대를 좁혀나가는 노력만이 선진국을 향해가는 사회의 공동 목표임을 진지하게 되짚어봐야 한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청년이 미래라면 노인은 과거…’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과거란 미래에 비해 크게 각광을 받을 수 없다. 그러나 과거가 없다면 미래 역시 결코 존속될 수 없는 것이고 보면 노인은 결코 우리 사회에서 바깥으로 내몰리거나 경시 당해도 되는 존재가 아닌 존경 받아야 마땅하다.
그들도 한 때는 온몸으로 산업현장에서 역사와 부딪치며 살아온 한 가족사회의 가장이었으며, 지식과 지혜를 갖춘 인격체라는 것을 인정받아야 한다. 그렇다고 지금 와서 그런 충효를 들어 사회를 논박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고자 한다면 시대를 초월해 연장자의 지혜도 보탬이 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진정한 복지국가란, 남녀노소 불문하고 누구나 함께 밝은 햇살아래 어깨동무하고 더불어 사는 나라를 일컫는 것 아니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