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칼럼-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 뮤지엄 협업전시 모범사례는

최근 가장 흥미롭게 보았던 전시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렸던 ‘당신의 마음을 닮은 얼굴-영월 창령사 터 오백나한’전이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아닌 국립중앙박물관이 기획한 ‘오백나한’전에 필자를 비롯한 많은 미술인이 큰 관심을 보였던 이유는 무엇일까?

문화유산과 현대미술이 협업한 기획전의 성공사례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물론 ‘오백나한’전 이전에도 유, 무형문화유산이나 문화콘텐츠를 활용해 전통과 현대미술의 경계를 허무는 크로스오버전시가 다수 개최되곤 했었다. 이른바 전통의 현대적 계승이라는 의도로 기획된 전시들이다. 그러나 대부분 전통양식을 모방하거나 전통적 소재를 차용하는 시도에 의미를 두었을 뿐, 유물과 현대미술의 창조적 융합에 이르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냈다.

‘시장을 뒤흔드는 크로스오버 아이디어’의 공동저자 레이먼 벌링스와 마크 헬리번에 따르면 서로 다른 분야의 협업이 성공하려면 다음의 세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우선 개념을 이해하고, 잠재적 유사성을 찾아 결합시켜 전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이다. 필자의 눈에 비친 ‘오백나한’전은 개념-결합-창조로 이어지는 삼박자가 제대로 맞아 떨어진 협업전시였다.

설치예술가 김승영은 강원도 영월 창령사 터 땅속에 500여년 묻혀있다 2001년 발견된 나한상을 전시하는 국립중앙박물관의 기획의도, 즉 전시개념을 이해했다. 나한은 불교 수행자 가운데 가장 높은 경지에 오른 이를 가리킨다. 500나한상은 불교의 진리를 깨우친 신성한 존재인데도 보통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김승영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고 답을 얻었다.

고려시대 조각가가 성과 속(聖과 俗)의 상반된 두 요소를 나한의 얼굴에 통합시켰던 것은 지혜를 통한 깨달음을 얻으면 누구나 나한이 될 수 있으며 하찮은 존재인 중생도 마음의 눈을 뜨면 부처의 길에 가까워진다는 긍정의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서였다고.

김승영은 깨달음의 대중화를 구현한 나한상과 평소 치유와 위로가 주제인 자신의 작품에서 공통점을 발견했다. 자기성찰의 글귀가 새겨진 1만장의 고벽돌로 전시장 바닥을 채웠고, 보통사람의 삶을 상징하는 700대의 중고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도시의 소음 사이로 깨달음을 의미하는 물방울 소리가 섞이도록 연출해 유물의 가치를 현대미술로 재창조했다.

‘오백나한’전은 국립중앙박물관과 현대미술가가 협업한 최초의 전시라는 진기록을 남겼지만 문화선진국은 과거 속에 잠든 미래를 깨우는 협업전시를 적극적으로 시도하고 있다.

예를 들면 세계문화유산인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은 2008년부터 제프쿤스, 무라카미 다카시 등 유명예술가들을 초청해 현대미술 전시를 매년 열고 있는데 관객들의 반응이 대단하다.

‘오백나한’전은 박물관 전시는 죽은 유물과 미술관 전시는 살아있는 예술가와 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는데도 큰 역할을 했다. 고전과 현대의 경계를 넘나드는 협업전시가 활성화되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