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신생아수, 사상 최저…36만명↓ -문제는 ‘일과 가정’ 병행 어려운 현실 -한국의 워킹맘, ‘슈퍼우먼’ 탈출 가능할지 [헤럴드경제=장연주 기자] #워킹맘인 A씨는 늦은 출산 후 법적인 휴직기간인 15개월(출산 3개월+육아 12개월)을 모두 쉬고 복귀했다. 하지만 아무도 법적으로 최대 휴직기간을 쉰 선례가 없어, 복귀 후 상당히 힘든 기간을 보냈다. 자칫 나쁜 선례로 남게 되면, 후배들에게 두고두고 안좋은 영향을 미칠까 두려웠다.
결국 A씨는 복귀 후 일을 2~3배로 더 열심히 잘하려 했고, 다행히 그의 장기간 휴직을 놓고 이런저런 말이 나오지 않았다. A씨는 복직 후에 오히려 승진을 두번이나 했고, 이런 영향때문인지 요즘에는 아이를 낳고 15개월씩 휴직을 하는 후배들도 생겨났다.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A씨는 종종 몸살을 앓는다.
워킹맘이란 이유로 다른 사람들에게 일을 미루면 안된다는 생각에 가꾸로 자기 일 플러스 알파를 하는데다 남편은 맨날 야근에다 주말까지 근무를 자주해서 일과 육아를 빼면 자기 시간이 없기때문이다. 마인드 컨트롤을 하고, 늘 긍정적이고 밝은 마음으로 임하지만 한번씩 꼭 체력이 바닥날 때가 있다.
A씨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슈퍼우먼이다. 아이가 아프면 항상 A씨가 달려가고,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입학 등등 아이와 관련된 문제는 모두 A씨가 해결한다. A씨의 남편은 보수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회사의 분위기상 선뜻 아이때문에 휴가를 낸다고 말을 못한다. 엄청난 장시간 근로에 시달리는 남편은 일에 치여 아이를 돌볼 겨를이 없고, 이런 남편의 사정을 A씨는 이해한다.
A씨 같은 슈퍼우먼이 대한민국에서 사라질 날이 올 수 있을까.
“처음 슈퍼우먼이란 말을 들었을 땐 으쓱하기도 하고 칭찬이란 생각에 더 열심히 하게 됐다. 하지만 일과 육아를 병행하다보니 슈퍼우먼이 오히려 ‘굴레’였다. 슈퍼우먼이란 말 안에 여성의 역할을 가두는 느낌이었다. 슈퍼우먼이라는 말은 사회와 국가가 책임질 일을 여성에게 독박 씌우는 말이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최근 일하는 엄마로서의 고충을 밝혀 눈길을 끈다. “살림 보다 정치가 쉬웠다”고도 했다. 심 후보는 대선 출마 이후 1호 공약으로 ‘슈퍼우먼 방지법’을 내걸었다. 이 공약은 직장을 다니는 부모가 각각 3개월씩 반드시 육아휴직을 써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맞벌이 부부시대는 진작에 왔지만, 맞돌봄 시대는 아직 안왔다는 것. 엄마와 아빠가 나눠서 육아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주장이다.
‘5.9 대선’을 앞두고 대선후보들이 저마다 ‘엄마 표심’을 잡기 위해 보육 및 육아 공약을 내걸고 있다. 대부분 국공립어린이집 확대, 유연근무제 실시, 양육수당 혹은 육아휴직 급여 확대, 둘째 출산장려금 지급 등이다.
이런 공약들이 얼마나 지켜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보다 근본적인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전업맘이든 워킹맘이든 아이를 키워 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했다면 보다 좋은 대안이 나왔을 것이다.
워킹맘의 관점에서 보면, 보육 및 육아정책에서 최우선적으로 고려할 사안은 ‘시간 문제 극복’과 ‘괜찮은 보육시설 확충’이다.
아이를 낳은 뒤 가장 먼저 경험하는 것은 어린이집에 들어가기 힘들다는 점이다. 심지어 태아 때 입소대기 신청을 해도 안심하고 맡길 곳을 찾기가 어렵다. 결국 말도 못하는 갓난 아이를 두고 일을 해야 하는지, 생판 모르는 남의 손에 맡겨야할지는 두고 고민하다가 첫번째로 퇴사를 결심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내 주변에도 일을 그만두고 육아를 하겠다고 하는 일들이 벌써 세명이나 나왔다. 모두 갓난아이를 일하면서 키우기 어렵다고 판단해서다.
두번째 고민은 어렵게 어린이집에 들어갔다고 해도 ‘시간의 불일치’에서 발생하는 힘겨움이다. 출퇴근 시간과 등하원 시간의 불일치에서 워킹맘은 두번째 고민에 부딛치게 된다. 이 같은 시간의 불일치는 부모가 아닌 제3자를 필요로 한다. 조부모나 돌보미가 있지 않으면, 직장을 다니면서 어린 아이를 키우는 것이 한국에서는 어렵다. 결국 회사와 보육시설, 혹은 돌보미 등 제3자에게 눈치를 보면서 몸과 마음이 피로해진다. 아이를 편히 보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일에도 전념하기 어렵고, 여기저기 눈치를 보며 몸과 마음이 지치면서 두번째 고비를 맡고 퇴사를 한다.
세번째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다. 우여곡절 끝에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지만,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비해 엄청 빠른 하원시간은 일하는 엄마들을 당혹스럽게 한다.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퇴사를 결심하는 엄마들이 가장 많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단순히 하원시간만 빠른 것이 아니라 중간에 학부모를 찾는 일이 많아 특히 3월은 워킹맘에겐 고통스러운 한달이다.
결국 단순히 생각하면, 이 세가지 고민만 해결하면 보육, 육아문제의 상당 부분은 해소될 수 있다고 본다.
첫번째 보육시설 문제는 국공립이든 민간이든 내 아이를 안심하고 맡길 곳을 비교적 쉽게 찾아 들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금도 민간어린이집 중에는 문을 닫는 곳이 많다. 그 이유는 찾는 사람이 없기때문이다. 찾지 않는다는 것은 이유가 있다. 어떤 식으로든 아이에게 좋지 않다는 입소문이 퍼졌기때문이다. 아무리 급해도 아이를 물건처럼 아무데나 맡기는 부모는 없다. 따라서 국공립어린이집 확대만 외칠 것이 아니라 아이를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곳을 만드는데 우선 치중해야 한다. 국공립어린이집을 지을 때까지는 시간이 걸리는 만큼, 민간어린이집도 우선적으로 함께 양성하는 대책이 필요해보인다. 차후에 민간어린이집을 국공립으로 전화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
두번째 시간의 불일치는 전사회적인 인식 변화가 수반되어야 한다.
출퇴근 시간과 야근, 회식 문제 등이 모두 얽혀있기때문이다. 육아를 위한 시간 문제를 해소하려면, 엄마와 아빠가 모두 육아야 참여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해 줄 필요가 있다. 아빠육아휴직 의무화와 유연근무제는 물론이고 아빠도 아이를 위해 조퇴를 할 수 있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아이가 갑자기 아프면 엄마를 병원으로 달려가지만, 아빠들은 대개 눈총을 받는다. 그 이유는 ‘엄마는 뭐하고 있는데?’라는 인식이다. 결국 엄마는 없는 시간 쪼개느라 일부는 승진을 포기하고, 아빠 역시 장시간 근로에서 오는 피로감을 견뎌야하는 상황이 되고 있다. 아이는 엄마와 아빠가 함께 키우는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될 수 있도록 아빠들도 육아에 참여할 수 있는 시간적, 인식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세번째 초등학교 입학 문제도 마찬가지다. 아이가 학교라는 낯선 곳에 적응하는데는 상당한 스트레스가 뒤따른다. 당연히 첫 입학 한달 가량을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부모의 도움이 필요하다. 초등학교 입학 때 퇴사하는 워킹맘이 많다면, 이를 방지하는 대안이 구체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일과 가정의 양립이 어려워지면서, 올해 출산율이 역대 최저치로 낮아졌다.
당장 올해 태어나는 신생아 수가 사상 최저인 36만명 선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추정이 나왔다. 인구보건복지협회에 따르면, 신생아수가 40만명 선이 무너지는 것은 15년 만의 일이다. 지난해와 비교하면 무려 12.1%나 줄었다.
대선후보들이 보육, 육아문제를 단순히 공약을 내거는데 그치지 말고, 보다 근본적으로 아이를 돌보면서도 일을 할 수 있는 사회분위기를 만들도록 해야 한다. 일과 가정의 양립은 어떤 제도가 하나 마련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심상정 후보의 ‘슈퍼우먼 방지법’은 일하는 엄마가 겪는 고충을 가장 잘 담아낸 법안이란 점에서 눈길을 끈다. 누가 대통령에 당선이 되고, 어떤 공약이 실행될지는 알 수 없지만 워킹맘의 입장에서 대책을 생각해본다면 의외로 답은 쉬울 수 있다. 큰 기대는 안하지만, 적어도 지금보다는 나아진 대책이 나오기를 마음 한편에서는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