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저당 안 되면 집 안 봐”…달라진 반포 매수 풍경

“5~10억원 대여·연 5%·6개월 만기가 일반적”

매도인이 직접 상환 능력 평가…고소득자에 유리

서울 용산구 이촌동에서 보이는 서초구 반포동 아파트 단지 일대 모습. [헤럴드경제DB]
서울 용산구 이촌동에서 보이는 서초구 반포동 아파트 단지 일대 모습. [헤럴드경제DB]

지난 9월 서울 서초구 반포동 반포리체 전용면적 59㎡ 한 가구가 31억5000만원에 거래됐다. 해당 주택에는 매도인을 근저당권자로 하는 채권최고액 7억2000만원의 근저당권이 설정됐다.

[헤럴드경제=윤성현·김희량 기자] 정부의 고강도 대출 규제가 이어지는 가운데 서울 강남권 고가 아파트 시장에서 매도인이 매수자에게 주택 매매대금 일부를 직접 빌려주는 이른바 ‘셀러파이낸싱(매도인 금융)’ 거래가 나타나고 있다. 금융기관에서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워진 매수자와 주택을 처분하려는 매도인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개인 간 금융거래가 새로운 자금 조달 수단으로 활용되는 모습이다.

26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최근 서울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 고가 아파트 시장에서는 매도인이 근저당권 설정을 조건으로 매수자에게 수억원의 매매대금을 빌려주는 사례가 확인되고 있다.

지난해 10·15 부동산 대책으로 수도권·규제지역의 주택담보대출 한도가 강화된 것이 배경으로 꼽힌다. 여기에 지난 5월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 종료와 8월 세제개편안에 따른 고가주택 보유세 인상 부담까지 맞물려 대출 규제로 자금 마련이 어려워진 매수자와 세금 부담 등을 고려해 집을 처분하려는 매도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매도인 금융이 거래 성사 수단으로 등장한 것이다.

반포동 A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최근 반포동에서 50억원대 아파트를 매매하면서 매도자가 매수자에게 약 4억원을 빌려준 거래를 성사시켰다”며 “금리는 연 5%, 만기는 6개월로 설정했다”고 전했다.

그는 “과거에는 매도인에게 돈을 빌려 집을 사는 거래가 30~40건 중 한 건 있을까 말까 할 정도로 드물었지만, 최근에는 10건 중 한두 건 정도로 체감될 만큼 관심이 높아졌다”며 “반포에는 중개업소만 100~200곳가량 있다는 걸 고려하면 각 업소에서 한두 건씩만 성사돼도 적지 않은 규모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예전에는 매도인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묻는 것 자체가 예의에 어긋난다고 여겼고, 매도인도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요즘에는 근저당 설정이 가능한지를 먼저 묻고, 안 된다면 집을 볼 필요도 없다는 매수자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거래 방식은 지난 7월 이재명 대통령의 분당 아파트 매각 이후 주목받기도 했다. 이 대통령 부부는 당시 경기 성남시 분당구 아파트를 29억원에 매도하면서 매수인의 잔금 지급을 유예하고 채권최고액 17억7000만원의 근저당권을 설정했다.

반포동 B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최근 ‘집주인 대출’을 문의하는 사람들은 주로 1970~1990년대생으로, 고소득 전문직이나 직장인들이 대부분”라며 “과거에는 의사 등 고소득 전문직을 대상으로 금융기관에서 수억원대 신용대출을 내주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대출 규제가 강화되면서 고소득자조차 주택 매수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이어 “은행은 대출을 제한하더라도 매도인은 매수자의 직업과 소득을 보고 상환 능력을 판단해 돈을 빌려줄 수 있다”며 “금융기관에서 막힌 자금 수요가 결국 개인 간 금융거래로 이동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 강남권의 한 아파트 매물이 온라인 부동산 플랫폼에 등록돼 있다. 매물 설명에는 ‘입주협의 근저당매매가능’이라는 문구가 명시돼 있다. [네이버 부동산]
서울 강남권의 한 아파트 매물이 온라인 부동산 플랫폼에 등록돼 있다. 매물 설명에는 ‘입주협의 근저당매매가능’이라는 문구가 명시돼 있다. [네이버 부동산]

그는 “현장에서 실제로 받아들여지는 대여 규모는 대체로 5~10억원 이내이며, 금리는 연 5% 안팎, 만기는 6개월 이내로 설정하는 사례가 많다”며 “실제로 매도인이 매수자로부터 최근 2년 치 근로소득 명세서를 직접 제출받아 상환 능력을 확인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다만 매도인이 장기간 거액의 매매대금을 회수하지 못하는 데 따른 부담도 적지 않다. 개인 간 대출인 만큼 채무불이행에 따른 분쟁 가능성도 있다. 매수자가 약정한 기한에 원리금을 갚지 못하면 매도인은 담보권 실행 등을 통해 채권 회수에 나서야 한다.

B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과거에도 매매 잔금 지급을 수개월간 유예했다가 그사이 집값이 크게 오르면서 매도인과 매수자 간 갈등이 발생한 사례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매도인이 소유권을 넘기기를 거부하자 실제로 매수자가 기존 계약금액보다 5000만원 더 지급하는 방식으로 분쟁을 해결한 경우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매도인 금융이 등장하는 배경에 금융권 대출 규제뿐 아니라 집값 상승에 대한 불안감과 매수 심리가 자리 잡고 있다고 분석한다.

권대중 한성대 부동산학과 석좌교수는 “주택 시장에서 셀러파이낸싱이 나타나는 것은 금융권 대출이 제한된 상황에서도 집을 서둘러 사려는 심리가 강하기 때문”이라며 “주택 공급을 확대해 시장을 안정시키고, 집값이 안정될 것이라는 신호를 줘 매수자들이 서둘러 집을 사지 않아도 된다는 인식을 갖도록 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권 교수는 “집주인 대출은 법리적으로 문제가 없지만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과 달리 금융기관의 심사 기준이 아닌 매도인과 매수자 간 개별 협의에 따라 대출 조건과 규모가 결정된다”며 “자산과 소득이 풍부한 사람일수록 유리한 조건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어 부익부 빈익빈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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