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6년 ‘가갸날’로 시작 한글날 올해 100주년
한양대·서정대 연구팀 누리집 73곳 언어 조사
한글 병기 없이 외국어 사용 기관 73곳 중 71곳
‘ESG 경영’(225회), Q&A(127회) 순으로 빈번
[헤럴드경제=정태일 기자] 올해는 한글날 100주년으로 한글의 역사와 가치를 되새기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정작 한글 변환에 앞장서야 할 공공기관이 누리집에서 여전히 영어 표기에 대거 의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9일 김태경 한양대 창의융합교육원 부교수와 백경미 서정대 한국어과 조교수 한글학회가 발간하는 학술지 ‘한글’ 최신호에 공공기관 누리집의 언어 사용 실태에 대한 연구 결과를 실었다.
연구팀은 지난해 4∼12월 경기도·시군 및 직속기관, 산하 공공기관, 관세청 등 73곳 누리집에서 사용되는 언어에 대한 전수 조사를 진행했다.
조사 대상은 사이트 기본 틀, 대표 광고(배너), 알림창 등에 적힌 총 12만8446개 어절과 9650개의 구·문장이었다. 단순히 외부 자료를 인용한 게시물 등은 제외했다.
그 결과 한글 병기 없이 한자나 영어 약어 등 외국 글자를 사용한 기관은 73곳 중 71곳(97%)에 달했다. 횟수로는 1696건이었다.
가장 빈번하게 사용된 단어는 ‘ESG 경영’(225회)이었다. 이밖에 Q&A(127회), SNS(94회), CI(87회), FAQ(55회) 등 주로 누리집 메뉴 항목에서 영어가 빈번하게 사용됐다.
연구팀은 누리집에 방문해 필요한 정보를 찾기 위해 가장 먼저 확인하는 항목들이 한글로 표기되지 않아 저학력 국민은 어려움을 느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책이나 사업명에도 ‘ITS 구축구간’, ‘DRT 사업’ 등 단번에 알아차리기 어려운 영어 약어가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HOME(첫 화면), FAMILY SITE(관련 사이트), GUIDE(안내)처럼 국립국어원에서 우리말로 바꿔 쓰도록 권고하는 어휘를 영어 표현 그대로 사용한 경우도 많았다.
또 조사 대상 기관의 절반 정도인 34곳(47%)은 코워킹스페이스(협업 공간), 푸드테크(첨단 식품 기술), 규제샌드박스(규제 유예 제도), 오픈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 전략), 웹진(누리 잡지) 등 외래어·외국어를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용 횟수는 총 145회였다.
이들 표현은 모두 지난해 국립국어원이 발표한 ‘공문서 평가용 외래어’에 해당해 대안어로 바꿔 쓰도록 권고하는 단어들이라고 연구팀은 지적했다.
연구팀이 지난해 10월 1∼10일 경기도민 7975명을 대상으로 공공기관 누리집에서 사용하는 외래어·외국어에 대한 개선 필요성을 설문한 결과 단어별로 많게는 80% 이상의 응답자가 개선이 필요하다고 답변했다. 매니페스토, 코워킹스페이스, 오브제 등이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이 밖에 ‘관급자재’(관공서가 지급한 자재), ‘영조물’(공공시설물) 등 낯선 한자어를 사용하는 경우도 많았다. 73개 기관 중 40개 기관(55%)에서 총 722회 한자어를 사용했다.
연구팀은 “매년 새로운 외국어가 빠르게 유입되고 있고 기존 순화 이력이 있어도 실제 사용 맥락에 맞지 않아 현장에서 거의 쓰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이미 대체어가 있더라도 사용 실태와 수용도를 점검해 수정·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국립국어원의 ‘2025년 국민의 언어 의식 조사’에서 국민의 87.3%가 ‘신문이나 TV에서 나오는 말의 의미를 몰라 곤란했던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52.4%는 ‘가끔 있다’, 34.9%는 ‘자주 있다’고 밝혔다. 어떤 말이 문제였는지에 대해선 ‘전문 지식이 필요한 단어’라는 응답이 60.0%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유행어나 신조어’(47.7%), ‘어려운 한자어’(45.6%), ‘외래어·외국어’(33.7%)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또한 한글 표기 없이 외국 문자로만 표기된 것을 보고 곤란한 적이 있었다는 응답자는 46.6%로 2020년 조사 대비 9%포인트 이상 증가했다. ‘외국 문자로만 표기하는 것은 문제’라고 응답한 국민은 전체의 61.8%에 달했다.
이러한 조사 결과는 신조어만 문제가 아니라 전문 용어나 외국어 중심의 언어 환경이 상당수의 국민에게 실질적인 언어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killpass@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