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티가 끝난 무도회장에 홀로 남은 투자자들

반도체 조정의 핵심, 실적보다 CAPEX 지속성

레버리지 청산이 키운 금융위기급 변동성

극단적 공포 속 리밸런싱이 필요한 시점

숫자와 현금흐름이 새로운 투자 기회 말할 것

투자 현장에서 가장 먼저 들리는 신호는 뉴스도, 차트도 아닌 질문입니다. “지금, 큰손들은 어디에 투자하나요?” ‘큰손 따라잡기’는 그 흐름을 기록하는 연재입니다. 자산가들이 자산을 배분하는 방식, 리스크를 관리하는 논리, 그리고 시장을 바라보는 사고의 구조를 현장의 언어로 풀어냅니다. 돈의 흐름을 이해하는 순간, 당신의 투자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챗GPT로 생성]
[챗GPT로 생성]

[강구현 미래에셋증권 수석매니저/정리=홍태화 기자] 5월 초엔 전쟁 이후 나타난 브이(V)자 반등과 포모(FOMO) 현상, 투자자들의 급격한 신용융자 증가,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은 미국·이란 갈등이 금융시장에 미칠 영향을 다뤘다. 그로부터 불과 3개월도 지나지 않았지만, 금융시장은 예상보다 훨씬 큰 격변을 경험했다.

코스피 지수는 6월 19일 9385포인트를 기록한 뒤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6500선을 밑돌았다. 137조원에 달했던 고객예탁금은 108조원 수준까지 감소했고, 시장은 한 달 만에 상반기 상승 폭의 절반가량을 반납했다.

과도한 레버리지를 활용했던 투자자들은 반대매매와 강제청산을 경험했다. 현금을 보유한 투자자들조차 극심한 공포 속에서 매수를 주저했다. 은행에서 증권사로 빠르게 유입되던 자금도 다시 은행권으로 이동했다. 이달 들어서만 약 16조원이 증시를 이탈한 것으로 추산된다.

최근 블룸버그는 국내 증시에서 약 120만 계좌에 마진콜이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전체 성인 인구의 약 3.2%에 해당하는 사상 최대 수준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집중 투자하지 않는다고 질책하던 투자자들은 자취를 감췄다. 지금이라도 손절해야 하느냐는 문의만 빗발친다. 한 달 전 뜨거웠던 시장은 순식간에 적막으로 바뀌었다. 마치 파티가 끝난 뒤 어질러진 무도회장에 홀로 남겨진 듯한 분위기다.

7월의 급락은 시장 곳곳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러나 시장은 언제나 극단을 오간다. 상승장에서는 탐욕이 절정에 이르고, 하락장에서는 공포가 모든 판단을 압도한다. 그리고 그 공포가 극에 달할 때 새로운 투자 기회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곤 한다.

지수가 6000선에 머무는 지금은 현금을 무작정 아끼거나 한꺼번에 투입할 때가 아니다. 신중하면서도 의미 있게 활용해야 할 시점이다. 이번 글에서는 최근 반도체 업종 급락의 배경과 과도한 레버리지의 역효과, 그리고 현시점에서 필요한 포트폴리오 리밸런싱 방향을 살펴보고자 한다.

마이크론 실적이 보여준 시장의 높아진 눈높이

6월 24일 마이크론은 시장의 기대를 크게 뛰어넘는 실적을 발표했다. 주당순이익(EPS)에 대한 애널리스트 컨센서스는 20.81달러, 이른바 ‘위스퍼 컨센서스’로 불리는 기관투자가들의 기대치는 22.15달러였다.

실제 발표된 EPS는 25.11달러였다. 공식 컨센서스를 약 20%, 기관투자가들의 기대치도 13% 이상 웃돈 ‘슈퍼 서프라이즈’였다. 여기에 4분기 실적 가이던스까지 종전 전망보다 약 20% 상향했다.

그럼에도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투자자들은 이미 상당한 미래 성장을 주가에 반영한 상태였다. 높은 성장만으로는 부족했다. 시장은 더 높은 성장률이 더 오랫동안 지속되기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마이크론이 기록한 80%대 영업이익률이 과연 얼마나 오래 유지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됐다.

결국 마이크론 주가는 실적 발표 직후 사상 최고치인 1254달러를 기록한 뒤 한 달 동안 약 35% 조정을 받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물론 일본의 키옥시아홀딩스, 미국의 샌디스크 등 낸드플래시 관련 기업들도 비슷한 흐름을 보였다.

시장은 이제 숫자를 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 숫자가 얼마나 오래 지속될 수 있는지를 묻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한 마이크론조차 주가는 하락했다. 이유는 명확했다. 시장은 현재의 실적보다 앞으로도 하이퍼스케일러들의 대규모 인공지능 투자, 즉 설비투자(CAPEX)가 지속될 수 있는지를 더 중요하게 보기 시작했다.

투자자들의 관심은 당장의 이익에서 7월 말부터 이어질 빅테크 기업들의 실적 발표와 향후 투자계획으로 이동했다. 반도체 업종의 변동성이 진정되기 위해서는 주요 고객사들의 CAPEX 가이던스가 다시 상향되거나, 적어도 현재의 투자 수준이 지속 가능하다는 확신이 필요하다.

중국 AI의 추격과 ‘무한 투자’에 대한 의심

여기에 새로운 변수도 등장했다. 중국 AI 기업들의 급격한 추격이다. 7월 하순 시장 급락의 배경에는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의 거대언어모델(LLM) 등장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챗GPT의 오픈AI, 클로드의 앤트로픽, 제미나이의 구글을 중심으로 과점 체제가 형성될 것으로 예상됐던 시장에 딥시크 V4 프로가 등장했다.

일부 엔지니어링을 거치면 클로드에 근접한 성능을 훨씬 낮은 비용으로 구현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시장은 기존 프런티어 모델 기업들의 과점 가능성을 다시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어 사카나 푸구(Sakana Fugu), GLM-5.2, KIMI K3 등 가격 경쟁력을 내세운 모델들이 잇따라 등장했다. 이들 모델이 벤치마크에서 미국 주요 프런티어 모델과 유사한 성능을 보이자 하이퍼스케일러들의 대규모 CAPEX가 과연 충분한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도 커졌다.

반도체 강세론자들은 지금의 상황이 2025년 초 딥시크 등장 당시와 유사하다고 평가한다. 당시에도 시장은 중국이 훨씬 적은 비용으로 고성능 AI 모델을 구현할 수 있다면 GPU와 데이터센터 투자 수요가 감소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에 따라 엔비디아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주요 반도체 기업들의 주가는 적게는 15%, 많게는 44%까지 급락했다.

그러나 실제 변화는 시장의 예상과 달랐다. AI 모델 이용료가 낮아지자 사용자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AI의 활용 범위도 빠르게 확대됐다. 시장의 중심은 학습에서 추론으로 이동했다. 그 결과 GPU뿐 아니라 HBM, DRAM, 낸드플래시, CPU 등 대부분의 반도체 수요가 오히려 증가했고, 관련 기업들의 주가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다만 이번에는 한 가지 중요한 차이가 있다. AI 수요가 증가하는 것과 그 수요를 맞추기 위한 투자 비용을 누가 부담할 수 있는지는 전혀 다른 문제다.

구글과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과 같은 거대기업들은 향후 수년간 현재 수준의 투자를 감당할 여력이 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현금흐름이 취약한 기업들은 같은 속도를 유지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투자자들은 지금과 같은 제한 없는 투자 경쟁을 더 이상 원하지 않는다.

최근 빅테크 기업들의 주가 흐름은 시장의 메시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AI 투자의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현금흐름을 훼손하면서까지 투자를 무작정 확대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뜻이다.

역설적으로 AI 운영 비용은 계속 낮아지고 있는데도 빅테크의 투자계획은 여전히 사상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가장 많은 자본을 투입한 기업들이 오히려 과잉투자 위험에 가장 크게 노출된 셈이다.

이제 시장은 반도체 산업의 무한한 성장 가능성을 믿는 단계를 지나, 실제 투자 대비 수익률을 확인하려는 단계에 진입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블룸버그 컨센서스를 종합해 오라클을 제외한 주요 하이퍼스케일러들의 자유현금흐름이 2027년을 저점으로 다시 크게 개선될 것으로 전망했다. 결국 시장은 이들이 2028년 이후 현금창출력을 얼마나 빠르게 회복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려 할 것이다.

이 전망이 현실화한다면 2027년 이후 빅테크 기업들의 기업가치가 다시 빠르게 재평가될 가능성이 있다. 그 시점에는 반도체 비중을 점진적으로 줄이고 빅테크 비중을 확대하는 전략도 고려할 수 있다.

반대로 일부 기업이 투자 경쟁에서 이탈하거나 CAPEX를 예상보다 빠르게 축소한다면 시장의 변화는 더 일찍 나타날 수 있다. 반도체 투자자들이 고객사의 실적뿐 아니라 현금흐름과 투자 지속 가능성을 함께 살펴야 하는 이유다.

과도한 레버리지가 키운 시장 변동성

최근 시장에서 가장 큰 논란이 된 상품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다. 정부와 시장 전문가들은 이들 상품이 투자자들의 과도한 탐욕을 자극하고 시장 변동성을 키웠다고 지적한다.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자체는 해외에서도 널리 활용되는 투자수단이다. 문제는 상품의 존재가 아니라 규모다.

레버리지 ETF의 운용자산 규모가 기초자산의 거래대금에 비해 지나치게 커지면 현물시장보다 파생시장의 영향력이 확대될 수밖에 없다. 레버리지 ETF 운용사는 지수와의 수익률 배율을 맞추기 위해 장 마감 무렵 현물이나 선물 포지션을 조정한다. 시장이 급등하거나 급락할수록 이러한 기계적 매매가 가격 변동을 더욱 증폭시킬 수 있다.

현재 SK하이닉스 관련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의 운용 규모는 기초자산의 일평균 거래대금 대비 약 400%, 삼성전자는 약 270% 수준이다. 반면 마이크론은 36%, 테슬라는 25%, 엔비디아는 약 20% 수준에 불과하다.

더 주목해야 할 부분은 홍콩 시장이다. 홍콩에 상장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레버리지 ETF 규모는 이미 전체 관련 상품의 약 70%에 이를 정도로 커졌다.

결국 국내 상장 상품만 규제하거나 폐지한다고 해서 현재의 변동성이 근본적으로 해소되기는 어렵다. 국내 주식의 가격 변동이 이미 홍콩을 비롯한 글로벌 파생시장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최근 반도체 피크아웃 논란과 과도하게 확대된 레버리지 ETF, 선물·옵션 시장의 역효과가 맞물리면서 국내 증시는 금융위기 수준의 조정을 경험했다.

그러나 이번 하락은 기업의 펀더멘털이 갑작스럽게 훼손된 결과라기보다, 연초 이후 지나치게 빠르게 상승했던 시장이 레버리지 청산과 맞물리며 겪은 과열의 후유증에 가깝다.

문제는 가격보다 심리다. 반대매매와 강제청산을 경험한 투자자들이 다시 시장으로 돌아오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공포가 극단으로 치닫는 국면에서는 급격한 V자 반등보다 일정 기간 바닥을 다지는 과정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금융위기 수준의 조정, 그래도 믿을 것은 숫자

매크로 환경 역시 녹록지 않다. 미국과 이란의 충돌은 다시 긴장 국면으로 접어들었고 국제유가는 배럴당 80달러에 근접하고 있다. 반도체 업종의 향방도 7월 말부터 이어질 주요 빅테크 기업들의 실적 발표와 CAPEX 전망에 따라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올해 상반기와 같은 일방적인 강세장이 하반기에도 반복되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고 시장의 공포를 그대로 추종하는 것 역시 합리적이지 않다.

현재 국내 증시의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와 유사한 수준까지 하락했다. 삼성전자의 배당수익률도 7% 안팎으로 상승했다. 가격만 놓고 보면 과거 금융위기와 견줄 만큼 상당한 위험이 이미 주가에 반영된 셈이다.

물론 낮은 밸류에이션만으로 곧바로 주가가 반등하는 것은 아니다. 이익 전망이 추가로 하향되면 현재의 PER 역시 다시 높아질 수 있다. 국제유가 상승과 지정학적 긴장, 하이퍼스케일러들의 투자 둔화 가능성도 여전히 경계해야 한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시장의 바닥을 단정하는 일이 아니다. 현금을 여러 차례로 나누어 투입하고, 레버리지를 줄이며, 특정 반도체 종목에 지나치게 집중된 포트폴리오를 재조정하는 일이다.

반도체 비중이 과도하다면 일부를 현금과 배당주, 현금흐름이 안정적인 빅테크 기업 등으로 분산할 필요가 있다. 반대로 주식 비중을 지나치게 줄인 투자자라면 공포가 극심한 구간에서 우량 자산을 분할 매수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숫자는 시장의 공포보다 냉정하다. 과도한 낙관도 경계해야 하지만 극단적인 비관 역시 경계해야 한다.언제나 그랬듯 탐욕은 위기를 만들고, 공포는 새로운 기회를 만든다. 지금은 두려움에 휩쓸려 모든 자산을 내던질 때도, 반등을 확신하며 다시 레버리지를 확대할 때도 아니다.

차분하게 기업의 이익과 현금흐름, 밸류에이션을 확인하고 포트폴리오를 재정비해야 할 시점이다. 시장 참여자들의 극단적인 공포를 역으로 활용할 수 있는 투자자에게 이번 조정은 또 하나의 중요한 전환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