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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문이림 기자] 우리가 매일 손에 쥐는 아이폰과 갤럭시엔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모두 영국의 한 회사가 만든 설계도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입니다. 그 회사가 바로 ARM홀딩스입니다.
반도체 기업이라고 하면 보통 삼성전자나 TSMC처럼 공장을 떠올리지만 ARM은 다릅니다. 공장도 없고 직접 반도체를 만들지도 않습니다. ARM이 파는 것은 반도체가 아니라 ‘설계도’입니다.
최근 월가는 이 ‘설계도 회사’를 다시 보기 시작했습니다. ARM홀딩스가 인공지능(AI) 투자 열풍의 핵심 수혜주로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25일 기준 최근 3개월 동안 주가는 171%나 급등했고, 국내 투자자들은 한 달간 2억6557만달러어치 순매수했습니다.
30년을 지탱한 설계도 비즈니스
ARM홀딩스는 영국 케임브리지에 본사를 둔 반도체 설계자산(IP) 전문 기업입니다. 반도체를 직접 제조하거나 판매하지 않습니다. 대신 반도체의 ‘설계 도면’ 역할을 하는 IP를 개발하고, 이를 고객사에 라이선스 형태로 판매합니다. 대신 설계도만 만들어 라이선스하고, 고객사가 칩을 출하할 때마다 로열티를 받는 사업을 확립시켰는데요. 당시에는 매우 파격적인 비즈니스 모델이었습니다.
수익 구조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고객사가 ARM의 설계를 사용할 때 내는 ‘라이선스비’와 그 설계를 기반으로 생산한 반도체가 시장에 출하될 때마다 받는 ‘로열티’입니다. 제조 공장 없이 IP만으로 수익을 창출해 매출 증가가 곧 이익으로 직결되는 고마진 사업이죠.
이 전략은 곧 빛을 발했습니다. ARM의 저전력 프로세서를 탑재한 노키아 6110이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ARM은 단숨에 모바일 칩 시장의 핵심 기업으로 떠올랐습니다. 모바일 혁명의 파도를 타고 급성장한 ARM은 1998년 런던 증권거래소(LSE)와 나스닥(NASDAQ)에 동시 상장했습니다.
스마트폰 혁명이 시작되면서 ARM의 영향력은 더욱 커졌습니다. 2007년 애플의 아이폰 출시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스마트폰 시대가 열리면서, 애플의 A 시리즈 칩·퀄컴의 스냅드래곤·삼성의 엑시노스 등 전 세계 거의 모든 스마트폰 내부의 AP가 ARM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제작됩니다. 현재 전 세계 모바일 AP 시장에서 ARM의 점유율은 99% 이상으로 사실상 독점적인 위치에 있습니다.
이제는 직접 판다…완성품 칩 시장 출사표
오랫동안 ‘ARM=모바일’이라는 공식이 통용됐습니다. 그러나 AI 인프라 투자 열풍이 이 공식을 빠르게 뒤흔들고 있습니다. 최근 월가가 ARM을 다시 주목하는 이유는 스마트폰 때문이 아닌데요. 변화의 중심에는 ARM의 사업 구조 진화가 있습니다.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제어하고 AI 연산을 지휘하는 고성능 중앙처리장치(CPU) 역시 ARM 기반 아키텍처로 설계됩니다. AI 데이터센터가 늘어날수록 ARM 기술에 대한 수요도 비례해서 폭증하는 구조입니다.
고민성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향후 데이터센터는 AI 에이전트로 인해 기존 대비 4배 이상의 CPU 용량 필요하다”며 “이에 동사는 출하량 확대와 코어 수 증가에 따른 평균판매가격(ASP) 상승 효과를 반영해 2030년 1000억달러 이상의 데이터센터 CPU 시장 기회를 모색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최근 ARM은 AI 시대에 발맞춰 창사 이래 최초로 자체 설계 칩을 직접 판매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지난 3월 AI 데이터센터 전용 칩 ‘AGI CPU’를 공개했는데요. 이 칩은 기존 제품인 x86 대비 성능이 2배에 달하며 TSMC의 3나노(3nm) 최첨단 공정으로 생산됩니다.
ARM은 이 칩 사업만으로 2026년 하반기 상용화 이후 향후 2년간 20억달러 이상의 매출을 확보했다고 밝혔습니다. 아울러 2031 회계연도까지 칩 관련 매출이 150억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장기 목표도 제시했습니다.
실적도 달라졌다…데이터센터가 새 성장축으로
사업 구조 자체가 ‘설계도 판매’에서 ‘완성 칩 판매’로 진화하면서 ARM은 AI 인프라 지출의 직접적인 수혜 기업으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2026 회계연도 4분기(1~3월)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0% 증가한 14억9000만달러를 기록했습니다.주당순이익(EPS)은 60센트로 모두 시장 예상치를 웃돌았습니다. 라이선스 매출도 8억1900만달러로 평균 예상치(7억7560만달러)를 상회했습니다.
허성규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데이터센터 로열티 매출은 전년 대비 2배 이상 급증해 향후 모바일을 제치고 최대 단일 매출원으로 등극할 전망”이라고 내다봤습니다. 휴대폰의 뇌를 만들던 회사에서 AI 기업으로의 도약이 기대되는 이유죠.
월가는 ARM의 성장 스토리에 베팅하기 시작했습니다. 번스타인은 지난 17일 목표주가를 기존 300달러에서 500달러로 대폭 올렸습니다. 2030년까지 서버 CPU 시장에서 ARM의 점유율이 지속 확대되며 매출 성장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판단입니다.
다만 밸류에이션 부담은 투자자들이 주시해야 할 대목입니다. 현재 ARM의 주가수익비율(PER)은 490배를 넘습니다. 미래 성장에 대한 기대가 주가에 극단적으로 반영된 셈이죠.
대주주인 소프트뱅크그룹의 지분 매각 가능성도 상존합니다. 소프트뱅크는 ARM의 최대주주로 유동성 확보 등의 이유로 언제든 대량 매도에 나설 수 있다는 오버행(잠재적 매도 물량) 이슈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