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가치 4년만 최저…트럼프 “훌륭하다”

美제조업 부활·수출경쟁력 필수 ‘弱달러’ 용인

원/달러 환율은 1420원대…석달 만에 최저

시장선 “달러약세 흐름 당분간 지속될 것”

美日 환율 공조 가능성·연준 금리인하

트럼프 불확실성· 셀아메리카 등 복합 요인

올해 달러 향방 키는 금리인하 ‘이후’ 美경기

금리인하 막바지 달러 반등 패턴 반복될수도

[헤럴드경제=서지연 기자] “원/달러 환율 떨어지면(원화가치 상승) 다시 달러 사재기를 한다.”

외환시장 주변에서 오래도록 통용돼 온 이 문장은 달러를 둘러싼 믿음을 상징한다. 글로벌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달러는 다시 강해졌고, 위기의 끝에는 언제나 강(强)달러가 자리했다. 하지만 최근 시장 흐름은 이 익숙한 공식에 균열을 내고 있다. 달러 가치는 주요 통화 대비 약세를 이어가는 반면, 금과 은 가격은 나란히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시장이 달러가 여전히 안전자산일지에 대해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27일(현지시간) ICE 선물거래소에서 주요 6개 통화에 대한 달러화 가치를 반영한 달러 인덱스는 95.86으로 전장 대비 1.2% 하락했다. 이는 2022년 2월 이후 4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이날 달러 약세는 엔화 강세와 미국 연방정부 셧다운(일시적 업무정지) 우려 영향도 있었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약달러 용인’ 발언이 부채질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아이오와에서 기자들과 만나 달러 가치가 4년 만의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데 대해 우려하느냐는 질문에 “아니요. 훌륭하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는 “달러는 스스로 제 수준을 찾아가게 두고 싶다”며 “그게 가장 공정한 일”이라고 말했다. 달러 하락을 문제 삼지 않는 듯한 발언이 이어진 직후에도 달러 약세 흐름은 멈추지 않았다.

달러화 가치는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독립성 침해 우려와 트럼 대통령의 예측 불가능한 외교·통상 행보가 겹치면서 4거래일 연속 약세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시장에서는 이를 단순한 기술적 조정이 아니라, 달러 강세를 떠받쳐 온 구조 자체가 느슨해지고 있다는 신호로 보고 있다.

달러 어디까지 떨어지나…“앞으로 더 하락할 것”

미국의 그린란드 합병 시도와 한국에 대한 상호관세 압박 등 공세적 외교정책은 달러 가치에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바클레이즈의 레프테리스 파르마키스 수석 외환전략가는 “그린란드 사태는 달러의 위험 프리미엄을 다시 끌어올렸다”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 질서의 균열은 장기적으로 달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투자자들이 달러 자산을 줄이고 다른 안전자산으로 이동하도록 부추기고 있다”고 덧붙였다.

일본 엔화와 미국 달러 지폐가 한 자리에 놓여있는 모습. [로이터]
일본 엔화와 미국 달러 지폐가 한 자리에 놓여있는 모습. [로이터]

미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환율 개입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달러 약세를 부추기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 재무부는 지난 23일 이례적으로 엔화 환율 수준을 점검하는 ‘레이트 체크(rate check)’를 실시했다. 이는 당국이 시장 참가자들에게 환율 동향을 문의하는 절차로, 통상 실질적인 시장 개입에 앞서 나타나는 신호로 해석된다. 캐피털이코노믹스의 이코노미스트 조나스 골터만은 “달러 하락의 배경에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현재 가장 중요한 변수는 미국 재무부가 외환시장 개입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라고 분석했다.

일본 정부 역시 미·일 환율 공조 가능성을 시사했다. 가타야마 사쓰키 일본 재무상은 27일 주요7개국(G7) 재무장관회의 이후 기자회견에서 “필요할 경우 미국 당국과 긴밀히 협력해 환율 변동에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를 두고 “과도한 엔저를 억제하기 위해 미·일 당국이 공동 대응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확산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일 당국의 공조로 엔화 강세가 이어질 경우, 상대적으로 달러 약세 압력이 더 커질 수 있다. 엔화가 급등하면 엔 캐리트레이드 청산이 가속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엔화를 빌린 투자자들은 환차손 위험이 커져 달러 자산을 팔아 엔화를 되사게 된다. 이 과정에서 달러 매도·엔화 매수가 동시에 발생해 달러는 약세 압력을 받는다. 다니엘 토본 시티그룹 전략가는 블룸버그통신에 “일본 투자자들이 자금을 일본 국채로 이동시키면 엔화 매수 압력이 강화될 수 있다”며 “엔화는 중기적으로 15% 이상 추가 상승할 여지도 있다”고 내다봤다.

“강달러는 미국에 독” 트럼프, 약달러 외치는 이유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25% ‘기습 인상’ 선언에 한미 무역 관계 전반에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사진은 28일 부산항 신감만부두, 감만부두에 컨테이너가 쌓여 있는 모습. <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25% ‘기습 인상’ 선언에 한미 무역 관계 전반에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사진은 28일 부산항 신감만부두, 감만부두에 컨테이너가 쌓여 있는 모습. <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이후 “강달러는 미국에 독(poison)”이라며 달러 강세에 대한 불만을 공개적으로 여러 차례 드러내 왔다. 실제로 달러 가치가 상승하면 미국 소비자 입장에서는 수입 물가가 낮아지는 효과가 있지만, 미국산 제품의 가격 경쟁력은 약화돼 수출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미 상무부에 따르면 미국의 무역적자는 2024년 기준 약 1조1000억달러로, 역대 최고 수준에 근접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정책을 환율 문제와 함께 언급해 온 배경에는, 강달러 환경에서 미국 기업이 겪는 가격 경쟁력 약화를 관세로 보완하려는 인식이 깔려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그는 1기 행정부 시절에도 중국, 유럽연합(EU), 일본을 상대로 “환율을 무기화하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미국 경제의 구조적 특성도 이런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다. 미국은 전통적인 제조업 수출국이라기보다는 기축통화국 지위를 바탕으로 달러 자체를 글로벌 경제에 공급해 온 국가다. 국제 교역과 금융 거래에서 달러 수요가 유지되는 한, 미국은 대규모 재정적자와 무역적자를 동시에 감내할 수 있었다. 금융시장에서는 이를 ‘달러 밀크셰이크 이론’으로 설명해 왔다.

달러 밀크셰이크 이론은 글로벌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자금이 미국으로 빨려 들어오고, 그 결과 달러가 강세를 보인다는 논리다. 신흥국 금융위기, 지정학적 긴장, 글로벌 금융 불안이 반복될수록 달러는 안전자산으로서 수요가 증가해 왔다. 실제로 2008년 금융위기, 2020년 팬데믹, 2022년 급격한 긴축 국면에서 달러지수(DXY)는 모두 단기간 급등했다.

문제는 이 같은 구조가 장기간 지속되면서 미국 내부의 산업 기반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해 왔다는 점이다. 미국의 무역적자는 중국과 일본, 독일, 한국 등 주요 수출국의 흑자로 전환됐고, 이들 국가는 대미 무역으로 벌어들인 달러를 미 국채와 미국 자산에 재투자해 왔다. 미 재무부 자료에 따르면 중국과 일본은 한때 미 국채 최대 보유국으로, 두 나라의 보유 잔액은 합산 기준 2010년대 중반 2조달러를 웃돌았다.

이 과정에서 달러는 해외로 유출됐다가 다시 미국 금융시장으로 되돌아오는 구조가 고착됐고, 달러 강세 역시 구조적으로 유지됐다. 미국은 값싼 수입품과 자본 유입의 혜택을 누렸지만, 제조업 고용 비중은 1990년 약 16%에서 최근 8% 안팎까지 낮아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강달러 체제를 문제 삼는 이유는, 이 같은 구조가 장기적으로 미국 제조업과 고용을 잠식해 왔다는 판단 때문이다.

2026년 달러, 금리보다 ‘정치·제도 변수’가 관건

과거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 사이클과 배경
과거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 사이클과 배경

이 때문에 올해 달러 흐름을 단순히 ‘금리 인하=달러 약세’라는 공식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과거 연준의 금리 인하 사이클에서도 마지막 인하 이후 달러가 다시 강세로 전환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권아민 NH투자증권 연구위원은 “1990년 이후 기준금리 인하 국면을 보면, 마지막 인하 이후 3~4개월의 시차를 두고 달러지수가 반등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번에는 연준의 독립성 논란과 차기 연준 의장 인선 등 제도적 변수까지 겹쳐 있다.

시장에서는 연준이 정치적 리스크에 노출될 경우 정책 금리가 평소보다 낮게 유지될 수 있다는 인식이 달러 약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본다. 통화정책의 신뢰성이 훼손될 경우 달러 자산의 매력도가 떨어지고, 달러 강세를 지탱해 온 구조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경계다. 다만 연준의 제도적 독립성이 단기간에 무너질 가능성은 낮다는 시각도 여전해, 외환시장의 반응은 아직 제한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외환시장이 주목하는 또 다른 변수는 연준의 차기 수장 인선이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임기가 끝나는 5월을 앞두고, 후임 구도를 둘러싼 판세가 빠르게 요동치고 있다. 최근 시장의 시선은 학계나 중앙은행 출신이 아닌, 월가 인사에게로 쏠리고 있다.

릭 리더(Rick Rieder) 블랙록 글로벌 채권 최고투자책임자(CIO)가 2026년 1월 12일(현지시간)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인터뷰하고 있다.[AP]
릭 리더(Rick Rieder) 블랙록 글로벌 채권 최고투자책임자(CIO)가 2026년 1월 12일(현지시간)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인터뷰하고 있다.[AP]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릭 리더 글로벌 채권 최고투자책임자(CIO)가 차기 연준 의장 후보로 급부상했다. 예측시장 칼시(Kalshi)에서는 리더가 연준 의장으로 지명될 확률이 48%까지 치솟으며 선두를 달리고 있다. 한때 유력 후보로 거론됐던 케빈 워시 전 연준 이사는 31%로 밀려났고, 크리스토퍼 월러 현 연준 이사와 케빈 해싯 전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한 자릿수 확률에 머물고 있다.

외환시장에서는 연준 수장 인선 결과가 달러의 중기 방향성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달러 흐름이 단순히 금리 경로뿐 아니라, 연준 독립성에 대한 신뢰와 백악관의 정책 인식에 따라 더욱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약달러에 원·달러 환율 안정되나…‘약달러-약원화’ 가능성도

28일 서울 중구 우리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원/달러 환율이 표시되어 있다.       이날 오후 3시 30분 기준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23.7원 내린 1422.5원을 나타냈다. [연합]
28일 서울 중구 우리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원/달러 환율이 표시되어 있다. 이날 오후 3시 30분 기준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23.7원 내린 1422.5원을 나타냈다. [연합]

달러의 중기 방향성 변화는 원·달러 환율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글로벌 외환시장에서 달러 약세 국면이 나타날 경우, 위험자산 선호 회복과 함께 신흥국으로의 자본 유입이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외국인 증권자금 유입을 통해 원화 강세 요인으로 작용하며, 한국 금융시장 전반에 우호적인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실제로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0년과 2023년처럼 글로벌 달러 약세 국면에서는 외국인의 국내 주식·채권 순유입이 확대되며 원·달러 환율이 하향 안정되는 흐름이 나타난 바 있다. 2023년 하반기 달러지수가 고점 대비 10%가량 하락하던 시기, 원·달러 환율도 한때 1200원대 중반까지 내려갔다.

28일 원/달러 환율은 28일 달러 약세와 엔화 강세의 영향으로 석 달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28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미국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의 주간(낮) 거래 종가(오후 3시 30분 기준)는 전날보다 23.7원 내린 1422.5원으로 집계됐다. 이날 주간 거래 종가는 지난해 10월 20일(1419.2원)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다만 달러 약세가 항상 원화 강세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 경기 둔화가 글로벌 수요 위축과 교역 감소로 이어질 경우,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는 오히려 부담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수출 비중은 국내총생산(GDP)의 약 40% 수준으로, 주요 선진국 대비 높은 편이다. 이 경우 외국인 자금이 위험 회피 국면에 접어들며 원화가 약세 압력을 받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 2001년과 2008년 글로벌 경기 둔화 국면에서는 달러지수가 하락하는 가운데서도 원화는 신흥국 통화 전반과 함께 약세를 보이며 ‘약달러-약원화’ 흐름이 동시에 나타난 바 있다.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달러지수는 중기적으로 조정을 받았지만, 원·달러 환율은 단기간에 1500원선을 상회했다.

여기에 한국 고유의 변수도 환율 방향성에 영향을 미친다. 반도체 경기 회복 속도, 무역수지 개선 여부, 지정학적 리스크, 그리고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스탠스에 따라 원·달러 환율의 흐름은 달라질 수 있다. 실제로 한국과 미국의 정책금리 격차가 축소됐던 2024년에도 무역수지 회복이 지연되면서 원화 강세는 제한적인 수준에 그쳤다.

이 때문에 외환시장에서는 ‘약달러=강원화’라는 단순한 공식보다는, 미국과 한국 간 경기 흐름과 자본 이동 방향을 함께 보는 복합적인 시나리오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과 글로벌 경기가 동시에 둔화되는 국면에서는 약달러와 약원화가 병존할 가능성도 있으며, 이 경우 원·달러 환율은 방향성보다는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