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신년 인사회 신스틸러 ‘푸른 호랑이’

작품 이용 요청 거절했더니 ‘표절’한 초대형 카페

벽화 작가 “표절 절대 아니다” 주장했지만

1심 법원 “표절 맞다…저작권법 위반 혐의 인정”

청와대에서 고상우 작가의 작품 ‘운명’을 배경으로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는 문재인 전 대통령. [청와대 제공]
청와대에서 고상우 작가의 작품 ‘운명’을 배경으로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는 문재인 전 대통령. [청와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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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안세연 기자] 지난 2022년, 청와대에서 진행한 신년 인사회의 신스틸러는 푸른 호랑이였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등 뒤를 총천연색 호랑이가 꽉 채워 눈길을 끌었다. 해당 작품은 한국 현대 미술계의 거장 12명 중 1명으로 선정된 고상우(47) 작가의 2019년작 ‘운명’ 이었다.

검은 호랑이의 해에 걸맞은 신년 행사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됐지만 고 작가는 생각지 못한 수난을 겪게 됐다. 9개월 뒤 ‘운명’과 너무나 비슷한 벽화가 경북 안동의 한 초대형 카페에 전시됐기 때문이다. 콜라보 작업으로 착각한 이가 많았지만 고 작가는 벽화를 그린 적도, 이미지 사용을 허락한 적도 없었다.

표절 시비가 붙었다. 벽화를 그린 A작가는 “영감을 받았을 뿐 표절은 절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작업을 의뢰한 카페의 B대표도 “A작가에게 의뢰했을 뿐”이라며 모르쇠로 일관했다. 이들은 한국저작권위원회의 조정 참석 요청에도 응하지 않았다. 결국 사건은 법적 공방으로 번졌다.

헤럴드경제는 이후의 이야기를 취재했다. 고 작가가 약 2년 8개월만에 웃을 수 있게 됐다. 미술계의 예상과 달리 법원에서 표절이 인정됐다. A작가와 카페 대표가 저작권법 위반으로 처벌 받았다.

고 작가는 헤럴드경제와 통화에서 “가해자들은 끝까지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며 “다음 세대 예술가가 될 아이들을 위해 저작권을 무시하는 관행에 경종을 울릴 수 있길 바란다”고 밝혔다.

1. ‘청와대 호랑이’ 등장 배경은?

고상우 작가의 작품 ‘운명’이 청와대에 전시돼 있다. [대통령실 제공]
고상우 작가의 작품 ‘운명’이 청와대에 전시돼 있다. [대통령실 제공]

‘청와대 호랑이’ 작업은 대통령실 측에서 먼저 고 작가에게 연락하면서 진행됐다. 고 작가는 ‘운명’ 작품을 프린트한 뒤 좌우 아래위를 잘랐다. 대통령 연설을 화상으로 보는 국민들이 호랑이와 시선을 마주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 작품은 과거 삼성전자의 Z플립 휴대폰 광고에도 사용된 적이 있었다.

2. 갈등의 시작은?

고상우 작가의 작품 ‘운명’. [고상우 작가 제공]
고상우 작가의 작품 ‘운명’. [고상우 작가 제공]

2022년 7월, 고 작가는 카페 측의 이메일을 받았다. ‘운명’ 작품을 벽화로 그려도 되겠냐는 취지였다. 메일엔 감정에 호소하는 내용도 있었다. “작가님의 인종차별 경험을 작품으로 승화한 호랑이를 벽화로 남기고 싶다”며 “인근에서 일하는 동남아시아 이주 여성 노동자들과 카페를 활성화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고 작가가 알아본 결과, 실제 카페 운영의 목적과 공익과 거리가 멀었다. 해당 카페는 안동 최대 규모의 베이커리 카페로 동남아시아 이주 여성과 전혀 상관이 없었다. 유명 작품으로 포토존을 만들어 수익을 창출하기 위한 것임을 눈치챈 고 작가는 요청을 거절했다.

고 작가는 “다문화 가정을 위한 카페라면 진행할 의사가 있지만 개인 상업시설이라면 사용하지 말라”며 “원작의 이미지를 변형해 사용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답장을 보냈다.

카페 측에선 “다른 작품으로 하기로 결정했다”고 회신했다. 하지만 몇 개월 뒤 갈등이 시작됐다.

3. ‘표절’ 작품의 등장 배경은?

A작가가 경북 안동의 한 카페에 그린 벽화. 고 작가의 작품과 매우 비슷하다. [고상우 작가 제공]
A작가가 경북 안동의 한 카페에 그린 벽화. 고 작가의 작품과 매우 비슷하다. [고상우 작가 제공]

“카페에 갔는데 선생님이 그리신 벽화가 있더라고요. 그림 잘 봤습니다.”

2개월 뒤 고 작가는 이런 연락을 받기 시작했다. 해당 카페에서 고 작가의 벽화를 발견했다는 이야기였다. SNS에선 “고 작가의 작품과 사진을 찍었다”는 인증샷이 수십 개 올라왔다. 해당 카페는 고 작가의 작품이 있는 카페로 알려졌다.

고 작가가 문제를 제기했지만 카페 측에선 “우리와 상관없는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카페 측에선 “다른 작가에게 의뢰해 그린 그림일 뿐”이라고 했다. 벽화 작업을 맡은 A작가도 “고 작가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벽화를 그린 사실은 인정하지만 어디까지나 영향을 받았을 뿐 표절은 절대 아니다”라고 했다.

이어 “현대미술에서는 작가끼리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참조하는 일이 흔하게 일어난다”며 “파란색 등 색채 일부가 유사한 점이 있긴 하지만 벽화 전체를 실제로 보면 완전히 다른 그림”이라고 해명했다. 특히 고 작가의 작품과 달리 나비 대신 까치가 등장하는 점, 벽화에 꼬리를 그린 점을 꼽았다.

A작가가 경북 안동의 한 카페에 벽화를 그리고 있다. 해당 카페는 이를 공식 SNS에서 홍보했다. [고상우 작가 제공]
A작가가 경북 안동의 한 카페에 벽화를 그리고 있다. 해당 카페는 이를 공식 SNS에서 홍보했다. [고상우 작가 제공]

4. 원작가의 피해는?

고상우 작가의 SNS 계정에 달린 댓글. [고상우 작가 제공]
고상우 작가의 SNS 계정에 달린 댓글. [고상우 작가 제공]

이 사건으로 고 작가가 받은 피해는 컸다. 두 그림이 너무나 비슷했기 때문이다. 사건이 공론화된 뒤 SNS에선 “카페와 고 작가가 협업한 것으로 착각했다”는 반응이 많았다.

하지만 당초 미술계에선 고 작가가 법적인 보호를 받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게임이나 영상물과 달리 순수미술 작품은 표절 입증이 까다롭고, 피해 산정도 어렵기 때문이다.

고 작가는 카페 측에 벽화를 지워달라는 요청이 담긴 내용증명을 보냈지만 카페 측에선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한국저작권위원회를 통해 합의도 시도했으나 이들은 조정 기일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조정은 아예 열리지도 않았고, 결국 사건은 법원으로 갔다.

5. 법적 공방은?

이 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A작가와 B대표를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이 법은 “누구든지 저작재산권의 재산적 권리를 침해해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과정에서 검찰은 “A작가는 피해자(고 작가)에게 저작권이 있는 미술저작물 ‘운명’을 약간만 변형한 벽화를 그려 저작재산권을 침해했다”고 밝혔다. 또한 “B대표는 고 작가의 내용증명을 받고도 해당 벽화를 카페에 계속해서 전시해 저작재산권을 침해했다”며 두 사람의 처벌을 요구했다.

반면 A작가와 B대표는 무죄를 주장했다. A작가는 “피해자의 작품을 모방하지 않았다”며 “실질적 유사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했다. B대표도 “해당 벽화가 피해자에게 저작권이 있는 작품을 모방한 것이라는 것에 대한 인식이 없었다”며 “고의가 없으므로 무죄를 선고해달라”고 했다.

6. 1심 결과는?

법원. [연합]
법원. [연합]

1심 결과는 이례적인 유죄였다. 법원은 단순 벌금형이 아니라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징역형 이상이 선고되는 일은 드물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1심을 맡은 대구지법 안동지원 형사1단독 손영언 판사는 A작가와 B대표에게 각각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피해자의 작품은 다른 미술작품에선 흔히 볼 수 없는 색상 및 배치를 사용해 자신만의 창작적 개성을 반영해 호랑이 얼굴을 표현한 것”이라며 “다른 저작자의 기본 작품과 구별할 수 있을 정도의 특성이 부여돼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되는 저작물에 해당한다”고 전제했다.

이어 A작가가 피해자의 작품을 표절한 게 맞다며 “해당 벽화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커다란 호랑이 얼굴 부분은 피해자의 작품과 동일하거나 매우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피해자의 작품과 달리 나비가 없는 대신 호랑이 꼬리가 묘사되는 등 다른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이는 벽화에서 전체적으로 차지하는 비중의 사소한 부분에 불과하다”고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판단의 근거로 “A작가도 수사기관에서 ‘인터넷으로 고 작가를 검색해 자료를 수집했다. 6~7년 전쯤 고 작가가 호랑이 작품으로 유명해진 것을 알고 있었으며 고 작가의 작품을 참고해 벽화를 그렸다’고 진술한 점”을 들었다.

이어 “피해자의 작품은 청와대 신년 인사회에서 배경으로 사용됐고, 관련 내용이 언론에 보도됐다”며 “카페를 이용한 사람들이 피해자에게 저작권 논란에 관해 제보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법원은 양형이유에 대해선 “해당 범행은 저작권자의 창작 의욕을 저하시키고, 수익 창출 기회를 침해해 궁극적으로 문화 발전을 가로막기 때문에 죄책이 무겁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럼에도 피고인들(A작가·B대표)은 납득할 수 없는 변명으로 일관하며 잘못을 부인하고 있다”며 “피해회복을 위한 별다른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했다. 또한 “이 사건 범행으로 피해자가 불면증을 겪는 등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받는 것으로 보인다”며 “엄벌을 거듭 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7. 앞으로는?

이 사건은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 A작가와 B대표가 모두 “1심 판결에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며 항소했기 때문이다. 2심 재판이 열릴 예정이다.

A작가와 B대표는 고 작가에게 손해를 배상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형사 재판에서 “두 사람이 고 작가의 저작권을 침해했다”는 판단은 민사 재판에서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될 근거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고 작가는 두 사람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진행할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헤럴드경제에 밝혔다.


notstro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