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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서경원·고은결·박혜원 기자] ‘에푸르 시 무오베(Eppur si muove)’.

이 말은 이태리어로 ‘그래도 그것(지구)은 돈다’는 뜻으로 지동설을 주장했다 종교재판을 받은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했던 말로 알려져 있다. 그렇게 그는 가택연금 상태로 쓸쓸하게 여생을 마무리해야 했지만 교회에 맞서 펼쳤던 그의 주장은 이제 의심할 여지 없는 과학적 사실이 돼 있다.

대한민국이 45년 만의 비상계엄이라는 초유의 사태로 홍역을 앓고 있다. 점점 커지기만 하는 정치리스크에 당면한 경제 현안들은 뒷전으로 밀려나면서 경제는 그야말로 패닉이다. 가뜩이나 완연한 선진국 대열에 오르지 못한 상태에서 이른바 ‘선진국병’이라 불리는 저성장 고착화의 덫에 걸려 있는 한국경제가 정치의 덫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는 얘기다.

계엄 사태 이전에도 내년 경제성장률이 1%대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됐지만, 현 시국이 장기화되고 정권 불안정성이 지속될 경우 0%대 성장률을 보이거나 최악의 경우 역성장할 수 있다는 공포감도 조성되고 있다.

국내 기업들에 대한 해외 투자자들의 관심도를 보여주는 증시는 안 그래도 부진한 상황에서 이번 사태 이후로 더 급속도로 망가졌다. 밸류업을 기치로 자본시장 선진화와 K-증시의 레벨업을 정부의 노력과 달리 아이러니하게도 국내 증시는 ‘밸류다운’의 길을 걷고 있다. 환율에는 그 나라의 경제 펀더멘털(기초체력)과 성장성, 대내외 리스크가 모두 반영되는데 최근 치솟은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극도로 취약해진 국내 형편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최근 미국 포브스지가 ‘윤석열 대통령의 이기적인 계엄 사태에 대한 비싼 대가는 한국의 5100만 국민들이 시간을 갖고 분할해서 치르게 될 것’이라고 정면 비판한 것이 단적인 예로 볼 수 있다.

이런 가운데 경제전문가들은 이번 시국이 한국 경제에 미칠 메가톤급 충격을 고려하면 정치권에서도 정치와 경제를 분리해서 접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무엇보다 당장 내년도 경제와 민생에 큰 영향을 미칠 예산안 처리에 있어 보다 이성적인 논의 태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0일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에서 “경제문제가 너무 심각해 한 가지 제안한다”며 “여·야·정 3자의 비상경제점검회의 구성을 요청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이날 4조1000억원을 감액한 예산안을 통과시키겠다고 했다. 특활비와 예비비 국고채 이자상환 비용까지 모두 삭감하면서 경제를 볼모로 잡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붕괴하는 경제를 막을 방파제(컨티전시 예산)가 필요한 상황에서 오히려 둑을 무너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손양훈 인천대 명예교수(전 에너지경제연구원장)는 “국가 기능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예산을 제 때 편성해서 다양한 정책을 펴는 것인데, 예산을 이렇게 막아서 묶어 놓으면 안 그래도 극심히 혼란한 가운데 경제 문제까지 큰 타격을 주게 될 것”이라며 “어떤 예산이든 다 필요가 있어서 만들어 놓은 것이고, 야당 입장에서는 적절성 여부를 논의할 수 있지만 논의 자체를 봉쇄하는 건 위험한 일”이라고 말했다. 박기홍 충북대 교수(경제학)도 “경제는 경제 문제로만 논의해야 한다”며 “예산만큼은 별개로 국민들이 보기에도 정치적 상황과 관계 없이 보여줘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는 “이번 사태 전에도 국제기구들이 우리나라 경제 전망을 하향했는데, 이번 사태로 더 낮출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며 “지금 상황대로라면 현직 대통령이 구속될 수 있는 초유의 사태까지 갈 수 있는데 이럴수록 ‘정경분리’ 원칙으로 경제에 대한 충격을 최소화해야 되기 때문에 국회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해외에서도 내년도 예산안이 국회에서 어떤 모습으로 처리되는지 주목하고 있다. 자칫 특수활동비, 예비비, 지역화폐 예산 등을 둘러싼 항목 논쟁으로 합의가 실패로 돌아갈 경우 우리나라의 대외신인도는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여기에 이번 시국이 과거 2006년, 2017년 탄핵정국과는 다르다는 점을 해외 기관들은 일찌감치 주목하고 있는 상태다. 외국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2006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과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등 과거의 정치적 혼란은 성장률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앞선 두 사례에서 한국 경제는 2006년 중국 경기 호황과 2016년 반도체 사이클의 강한 상승세에 따른 외부 순풍에 힘입어 성장했다”며 “반대로 2025년 한국은 수출 중심의 경제구조를 지닌 국가들과 함께 중국 경기 둔화와 미국 무역 정책의 불확실성으로 인한 외부 역풍에 직면해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도 “과거 노무현 탄핵 사태나 박근혜 탄핵 당시에는 경제가 상당한 상승기였고,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았다”며 “현재는 세계 증시에서 한국 증시가 가장 나쁜 증시인데, 이는 우리 기업들이 돈을 못 벌고 저성장에 수출 환경이 점점 악화되고 있다는 뜻으로 이처럼 경제 여건이 안 좋은 상황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경제적 충격이 훨씬 더 클 수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