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학회·의대협회 협의체 탈퇴 선언

“정부·여당 사태 해결 의지 없어 참담해”

의정갈등 다시 원점…차기 의협회장 선거 변수 될듯

여야의정 협의체 3주 만에 좌초
이진우 대한의학회장과 이종태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 이사장이 지난 1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여·야·의·정 협의체 회의와 관련한 입장 발표를 마친 뒤 자리에서 이동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안효정 기자] 의정갈등 해결 창구로 기대를 모았던 여야의정 협의체가 출범 20여일만에 좌초됐다. 협상에 진전이 없다고 본 의료단체들이 협의체 참여 중단을 선언하면서다. 야당과 전공의가 빠진 채 개문발차한 ‘반쪽짜리’ 협의체마저 닫히게 되면서 의정갈등 사태는 결국 해를 넘길 것으로 전망된다.

2일 의료계에 따르면 대한의학회와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의대협회·KAMC)는 전날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여야의정 협의체 4차 전체회의를 마치고 협의체 참여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이진우 대한의학회장은 “정부와 여당이 이 사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지금, 대한의학회와 의대협회는 협의체 참여를 중단할 수밖에 없는 참담한 결정을 내리게 됐다”고 말했다.

이로써 ‘국민에게 성탄 선물을 안겨주겠다’며 야심차게 출발한 협의체는 20여일 만에 빈손으로 막을 내렸다. 여야의정 협의체는 지난달 11일 정부와 여당, 대한의학회와 의대협회 등이 모여 시작됐지만 대한의사협회(의협)과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더불어민주당은 협의체에 들어오지 않아 ‘반쪽짜리’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협의체가 중단에 이르게 된 주요 원인은 2025학년도 의대 증원 문제를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의 입장 차이가 좁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의료계는 2025학년도 의대 신입생 모집 규모를 축소하기 위해 수시 미충원 인원을 정시로 넘기지 않는 방법, 정시 예비 합격자를 1배수로 제한하는 방법, 2026년도 정원은 유예하고 2027년 이후 증원 논의를 하는 방법 등을 제시했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은 입시 혼란에 대한 우려로 내년도 정원은 조정 할 수 없다는 답변을 냈다.

지난달 의협 비대위원장에 박형욱 연세대 의대 교수가 당선된 점도 협의체 파행의 배경으로 분석된다. 박형욱 의협 비대위원장은 의료계에서 전공의 입장을 대변하는 ‘강경파’로 분류된다. 비대위 체제로 전환한 의협은 지난달 28일 여야의정 협의체를 ‘알리바이용 협의체’라고 표현하며 대한의학회와 의대협회에 협의체 참여 중단을 요청했다.

정부는 협의체가 중단됐어도 의료계와 대화를 계속 이어나가겠다고 했다. 그러나 의료계는 냉소적이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여야의정 협의체는 양측이 심도 있는 논의를 통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오해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됐다”며 “당분간 회의가 열리지 않더라도 그사이에 다양한 소통을 강화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반면 이진우 대한의학회장은 “휴지기라는 것은 정부와 여당의 입장일 뿐”이라며 “우리는 의대 정원에 대한 정부의 확실한 태도 및 정책 변화가 있지 않으면 대화에 나설 수 없다”고 맞섰다.

박단 대전협 비대위원장도 협의체 가동 중단 직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글을 올려 “현재로서 최선은 2025년도 의대 모집 정지”라고 기존 입장을 재차 언급했다.

차기 의협 회장 선거에 나서는 예비 후보자들도 정부와 여당의 태도를 비판하는 데 목소리를 내고 있다. 주수호 전 의협 회장은 “유치원생도 믿지 않는 산타의 크리스마스 선물 운운한 것부터 유치한 짓”이었다며 “엉킨 실타래가 더 얽히고설켜 다 버리기 전에 실뭉치를 자르고 잇는 수밖에 없다. 2025년 의대 입시 중지가 바로 그런 의미”라고 지적했다.

강희경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참여했던 의료계) 두 단체의 결단을 존중하고 지지했으나 정부가 현 사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전혀 없음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며 “정부의 독선적인 태도가 사직 전공의들의 선택지를 명료하게 좁히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의협은 내년 1월 신임 회장 선거를 앞두고 이날부터 후보 등록을 받는다. 차기 의협 집행부에서도 현재의 강경 기조가 이어질지 혹은 대화파 집행부가 새로 등장할지 등에 관심이 쏠린다. 지금까지 의협 회장 선거 출마를 공식화한 후보는 강희경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 비대위원장과 김택우 전국광역시도의사협의회장, 이동욱 경기도의사회장, 주수호 전 의협 회장(미래의료포럼 대표), 최안나 의협 대변인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