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조치 무시한 日 “불참 아쉽다”
韓, 유감 표명 없이 신중한 대응
일본 정부가 사도광산 추도식이 ‘반쪽 행사’로 파행된 데 대해 한국 정부에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한국인 희생자 유가족이 참석하는 추도식에 대해 진정성이 결여된 태도로 일관한 일본측의 적반하장식 입장에도 우리 정부는 유감 표명이나 적극적인 조치를 내놓지 않았다. 내년 국교정상화 60주년을 앞두고 한일 관계를 중시하는 기조를 깨지 않으려는 절제된 대응에 비판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은 25일 기자회견에서 “한국 측이 (사도광산 추도식에) 참가하지 않은 것은 유감”이라고 밝혔다. 하야시 장관은 “이번에 한국 측이 현지 관계자가 정중하게 준비해 개최한 행사에 참가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열기로 한 경위에 비춰볼 때, 행사 대응이나 그 내용에 대해 신중한 검토와 대응을 요구하는 취지로 한국 측에 요청했다”라고도 말했다.
일본 중앙정부 인사가 한국 정부의 사도광산 추도식 불참과 관련해 기자회견에서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사도광산 추도식 문제는 내용이나 형식 모든 면에서 한국인 희생자와 유가족에 대한 배려가 없었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럼에도 ‘정중하게 준비해 개최한 행사’였다고 평가했다. 전날 추도식에서는 강제성에 대한 언급이나 사죄가 없었고,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이력을 가진 정부 대표가 ‘추도사’가 아닌 ‘내빈 인사’ 형식으로 발언을 했다. 희생자 유가족이 참석하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유네스코 등재를 축하하는 발언이 나온 추도식에 한국 정부의 불참 결정에 불만을 표하는 적반하장식 태도다.
특히 일본측은 이쿠이나 아키코 외무성 정무관(차관급) 파견에 대해서도 “종합적 판단을 통해 외무성에서 홍보·문화와 아시아·태평양 정세를 담당하는 이쿠이나 정무관 참석을 결정했다”며 “문제는 없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쿠이나 정무관이 참의원(상원) 의원 당선 직후인 2022년 8월 15일 태평양전쟁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고 보도한 일본 교도통신은 이날 “해당 보도는 오보”라고 밝혔다. 이쿠이나 정무관 참석이 발표된 22일 이후 야스쿠니 참배 이력이 논란이 됐을 때가 아닌, 한국 정부가 별도의 추모행사를 개최한 이후에서야 2년 만의 ‘오보’ 사실을 인정한 것도 일본 정부측 입장에 힘을 싣는 모양새였다.
한국 정부는 사도광산 추도식과 관련해 극도로 신중하게 대응하고 있다. 23일 추도식 불참 결정에 “추도식을 둘러싼 양국 외교당국 간 이견 조정에 필요한 시간이 충분치 않아 추도식 이전에 수용 가능한 합의에 이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는 입장을 밝혔고, 25일 교도통신의 오보 입장이 나오고서야 “일측 추도사 내용 등 추도식 관련 사항이 당초 사도광산 등재 시 합의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중요한 고려 사항이었다”고 조금 더 구체적인 설명을 내놓았다. 다만 26일 현재까지 우리 정부의 유감 표명은 없었다.
야당은 물론 여당에서도 이런 소극적인 대응에 대한 질타가 나오는 가운데 정부는 악화되는 여론을 고려하며 대응 수위를 고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높은 수위의 외교적 항의 방식으로는 ‘외교사절 소환’이 거론된다. 다만 이 경우 양국 외교관계가 급속도로 얼어붙을 수밖에 없어 실행 가능성은 떨어진다는 평가가 많다.
‘굴욕 외교’라는 비판에도 이처럼 절제된 메시지를 내놓는 데에는 현재 한일 모두 “양국 관계 발전”을 거론하면서 한일 관계 개선이라는 기조는 흔들지 않아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이든 미국 행정부에서 한미일 3각 협력 체제는 미국의 동맹인 한국과 일본이 관계 개선을 시도했기에 가능했다. 현재 트럼프 미국 신행정부 출범으로 한미일 체제에 대한 연결고리가 약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상황에서 한일 관계마저 흔들린다면 동력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실은 공식 입장 없이 “한미, 한미일 협력은 그대로 이어진다”고 밝혔다.
최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