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가수 이문세가 정규 17집 작업을 본격화했다. 2025년 완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 13일 ‘이별에도 사랑이’, ‘마이 블루스’ 2곡을 선공개했다.
가수 조용필 정규 20집을 내놓았고, 이문세가 17집을 준비하는 등 시니어 가수들의 현재진행형 활동은 음악계와 후배음악인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이문세는 1978년 CBS ‘세븐틴’ DJ로 연예계에 데뷔했고 83년 1집 ‘나는 행복한 사람’으로 가수 경력을 본격 시작했다. 80년대초에는 KBS ‘젊음의 행진’, MBC ‘영 11’(MC) 등에서 모창과 토크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다, 85년 3집부터 이영훈 작곡가를 운명처럼 만났다.
3집 수록곡은 빅히트곡 ‘난 아직 모르잖아요’ ‘소녀’ 등이다. 87년 발매된 4집 ‘사랑이 지나가면’ ‘이별 이야기’ ‘가을이 오면’ ‘깊은 밤을 날아서’ ‘그女의 웃음소리뿐’ 등 이영훈-이문세 라인은 한국형 팝발라드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며 화려하게 꽃을 피웠다.
‘이렇게 우리 헤어져야 하는 걸/서로가 말은 못하고’로 시작하는 ‘이별이야기’는 ‘그대 네게 말로는 못하고/탁자 위에 눌러쓰신 마지막 그 한마디’에 이르면 누구나 감정이 고조된다.
‘그女의 웃음소리뿐’의 ‘이대로 떠나야만 하는가/너는 무슨 말을 했던가/어떤 의미도/어떤 미소도…’는 눈물이 나서 더 이상 부를 수 없었던 시절도 있었다.
물론 이문세는 별밤지기 음악 DJ , 한번도 안겹치게 만들어내는 수많은 이문세의 기획형 콘서트도 그의 음악 인생에서 큰 부분을 차지한다.
이문세표 발라드는 곧 이영훈 음악을 의미했다. 뽕끼와 신파성을 배제하고 서정적이고 클래식한 느낌마저 드는 발라드를 많은 사람들이 좋아했다. 이문세 LP음반은 다른 음반에 비해 유독 비쌌음에도 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이문세 이전까지는 영미 팝 음악을 많이 들었고, 라디오에는 최동욱, 박원웅, 이종환, 김광한, 김기덕, 황인용, 전영혁 등 팝음악의 유명 DJ들이 인기를 얻는 시절이었지만 대략 이문세의 발라드를 기점으로 가요를 더 많이 듣는 시대를 열 수 있었다.
특히 ‘광화문 연가’에도 나왔듯이 광화문 구두 가게들을 지나 육교 부근 덕수제과에서 빵을 먹고 경기여고와 이화여고, 배화여고, 숙명여고, 창덕여고, 진명여고생들을 봤던 우리 세대에게는 그때의 추억을 오롯이 되살려주었다.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은 무엇일까?
이영훈 작곡가가 2008년 저 하늘로 갔으니, 이문세의 홀로서기 기간은 제법 오래 된 셈이다. 이후 윤일상, 유희열 등에게 곡을 받기도 했고, 규현, 나얼, 개코, 헤이즈, 잔나비, 김윤희 등 개성있고 능력있는 후배 뮤지션들과 노련한 화합으로 새로움을 보여주기도 했다.
정규 17집은 지난해 12월 최초 선공개곡으로 ‘Warm is better than hot’을 발표해 편안함을 선사한 바 있다.
최근 공개된 ‘이별에도 사랑이’와 ‘마이 블루스’를 들어봤더니, 아티스트 이문세가 ‘포스트 이영훈 시대’를 자연스럽게 녹여내고 있다는 점이 느껴진다.
‘이별에도 사랑이’는 ‘나의 해방일지’ OST를 담당한 헨이 작사, 작곡했고, ‘마이 블루스’는 이문세가 직접 작사, 작곡했다. 이문세는 헨을 “힘 하나 들이지 않고 하고싶은 말 다 하는 뮤지션”이라고 했다.
‘이별에도 사랑이’는 연인과의 이별을 넘어서, 인생에서 소중한 사람들과의 다양한 이별을 떠올리게 하는 노래다.
‘마이 블루스’는 이문세가 가수로 긴 시간을 살아오며 느낀 감정과 상황들을 솔직하게 전하고 있다. 이 곡은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목가적인 일상과 무대의 삶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이문세의 진솔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마이 블루스’에서는 더욱 담백하고 진솔한 감정이 드러난다. 이는 이문세의 인생관을 보여주는 시리즈로 볼 수 있으며, 15집의 ‘무대’, 16집의 ‘Free my mind’와도 연결된다.
“과거 제 노래를 돌이켜보면 ‘옛사랑’이 담긴 7집에 타이틀곡은 다른 곡이었다. ‘옛사랑’은 이렇게 까지 될줄 몰랐다. 훅도 없고, 기승전결 없이 독백하듯 부르는 노래다.”
이제 이문세의 음악은 이영훈 시대와는 달라지지만, 음악의 기조와 맥락은 그때와 이어진다.
“옛날에는 음악 파트너가 있었다. 16년 가까이 그 유명한 명곡들을 만들어주고 떠났다. 이제 나혼자다. 턱없이 부족하다.”
“히트곡 하나 더 내기 위해서가 아니고, 음악의 리듬과 그 리듬의 흐름을 계속 가지고 가는 게 음악하는 사람의 본능이자 의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부단히 창작의 욕심을 내고 있는 것뿐이다.”
이문세 정규 17집은 세 곡이 공개됐지만 음악 전체의 정조는 세월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아티스트의 자세다.
“사랑을 되돌아볼때 어떤 감정이었을까? 오히려 이별이 고마웠다. 정상적이려면 이별에 대해 누구 탓을 하고 그런 것이겠지만, 이별이 치유의 기능을 하고 있다.”
“우리 세대는 정신이건 육체건 아파야 되는 나이다. 좀 더 젊어보이려고 피부과, 성형외과 가는 것도 어느 순간까지지, 어디 순간이 지나면 똑같이 가는 거구나를 느낀 순간이 있었다.”
“나는 사랑을 테마로 적절하게 잘 표현하며 활용해온 아티스트라고 생각한다. ‘광화문연가’를 20대 후반에 부르며, 덕수제과에서 빵 사먹고 ‘너 여자친구 있어 없어’ 그러던 시절이었다면, 지금 60대는 그게 내 삶이었고 어떻게 살아야 되나 하고 생각해보는, 사랑 각도도,깊이도 많이 달라진 것 같다.”
“60대 중반이 되면 모든 게 느려진다. 생각도 행동도 느려지고 공연하다 보면 슬로우 템포가 된다. 이문세 노래 한 곡을 들으면, 그 본능이, 삶의 여정이 한바퀴 돌아간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꿈을 꿨던 사람’인데 ‘지금 이렇게 살고 있다’를 느낀다. 그래서 제가 허투루 준비할 수가 없다.”
이문세 음악은 작위적인 세계관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세월과 함께 세상과, 인생과 호흡할 뿐이다. 이문세는 그런 아티스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