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日총리 자리 9명 후보 등록 ‘역대최다’
고이즈미 “엄마가 아니라 고모” 가정사 공개
이시바 전 간사장, 당내 기반 취약이 걸림돌
기시다 후미오 총리를 대신해 차기 일본 총리 자리에 오를 집권 자민당 총재 선거에 9명의 후보가 도전장을 내밀었다. 파벌 해체로 역대 가장 많은 후보가 나온 가운데 고이즈미 신지로(43) 전 환경상과 이시바 시게루(67) 전 간사장의 양강 구도가 유력하다.
자민당 총재선거본부 관리위원회는 12일 오전 10시 당 총재 선거 입후보자 접수를 시작했다. 고이즈미 전 환경상과 이시바 전 간사장 외에 다카이치 사나에(63) 경제안보 담당상, 고노 다로(61) 디지털상, 고바야시 다카유키(49) 전 경제안보담당상, 하야시 요시마사(63) 관방장관, 가미카와 요코(71) 외무상, 모테기 도시미쓰(68) 간사장, 가토 가쓰노부(68) 전 관방장관 등이다.
후보자들은 국회의원 투표를 통해 차기 총재를 뽑는 오는 27일까지 도쿄, 오사카, 나고야 등 전국 8개 지역을 돌며 연설회와 토론회에 참가한다. 국회의원과 당원, 당우(당을 후원하는 정치단체 회원)가 투표하는 1차 투표에서 과반이 안 나오면 1·2위가 결선 투표를 한다. 총재 당선자는 임시 국회를 거쳐 10월1일 일본 총리에 오른다.
일반 국민 대상 여론조사에서 고이즈미와 이시바는 20%대 지지율로 다른 후보들을 압도하고 있다. 민영 JNN이 7~8일 101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고이즈미 전 환경상이 28.5%로 1위였고, 이시바 전 간사장이 23.1%로 2위였다.
아사히신문이 지난달 24~25일 1058명을 대상으로 한 전화 설문에서는 이시바 전 간사장과 고이즈미 전 환경상이 각각 21%로 공동 1위에 올랐다.
▶‘펀쿨섹좌’고이즈미...가정사 공개, 최연소 타이틀 도전=작년 연말 터진 자민당 ‘비자금 스캔들’로 기시다 총리가 연임 도전을 포기할 정도로 자민당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커진 가운데 치러지는 이번 선거에서는 40대 고이즈미 전 환경상이 누구보다 주목받고 있다. 그는 2001년부터 2006년까지 내각을 이끈 준이치로(82) 전 총리의 차남으로, 2009년 중의원(하원) 의원으로 처음 당선될 때부터 ‘장래 총리 후보’로 불렸다. 43세의 고이즈미 전 환경상이 총재로 당선되면 44세에 총리가 된 이토 히로부미 기록을 깨고 역대 최연소 총리가 된다. 자민당 일각에서는 그의 준수한 외모에 젊은 이미지가 당의 쇄신 이미지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나온다.
고이즈미 전 환경상은 12일 선거 고시 이후 도쿄 자민당 본부에서 열린 첫 연설에서 가정사를 전격 공개하기도 했다.
그는 “부모님이 어렸을 때 이혼했는데,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이혼 사실을 몰랐고 어머니인 줄 알았던 사람이 사실은 고모(고이즈미 전 총리의 친누나)였다”고 회고했다. 또 “형제는 형(배우인 고이즈미 고타로)뿐인 줄 알았는데 동생이 더 있었다”며 “대학생 때 처음으로 성이 다른 동생과 만났으며 아버지랑 꼭 빼닮아서 깜짝 놀랐다. 순식간에 그동안의 거리와 공백이 메워졌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올해 처음으로 엄마를 만났으며, 자세하게는 말하지 않겠지만 만나서 좋았다”고 언급했다.
고이즈미 전 환경상은 간토학원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고 미 컬럼비아대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19년 방송인인 다키가와 크리스텔과 결혼했으며 이듬해 장남을 얻었다. 고이즈미가는 아버지 고이즈미 전 총리에 앞서 증조부부터 4대째 이어진 세습 정치가문으로 꼽힌다.
하지만 5선 의원임에도 환경상 외에는 각료와 자민당 주요 간부직을 맡은 적이 없는 것은 그의 약점으로 꼽힌다. 또 환경상 때인 2019년 “기후변화 문제는 펀하고(즐겁고) 쿨하고(멋지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말해 지나치게 가벼운 표현이라는 논란을 샀다. 한국에선 ‘펀쿨섹좌’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그는 자민당 총재선 입후보를 공식적으로 밝힌 지난 6일 “장관 시절 가벼운 언행들로 지적받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환경상 시절 내 발언이 적절히 전달되지 않았던 것은 반성하고 있다”며 “앞으론 그러한 일이 없도록, 국민에게 전하려는 바가 명확히 전달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매년 일본 패전일인 8월 15일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고 있는 고이즈미는 만약 총리로 당선되는 경우 참배 여부에 대해서는 “앞으로 적절히 판단하겠다”고만 답했다.
▶‘4전 5기’이시바...한일관계에서 ‘비둘기파’=고이즈미 전 환경상과 ‘2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이시바 전 간사장은 이번이 다섯번째 총리 도전이다.
요미우리 조사에 따르면 이시바 전 간사장은 40대 이상 중장년 및 고령 유권자의 지지를 받고 있다. 1957년에 일본 도쿄에서 태어난 그는 아버지 이시바 지로가 돗토리현 지사에 취임하면서 돗토리현으로 이사했다. 게이오대를 졸업한 후 은행원 생활을 하다가 돗토리현 지사, 자치 대신을 역임했던 아버지가 사망하자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의 권유로 정계에 입문해 당시 최연소 나이인 만 29세로 당선됐다. 고이즈미 내각에서 방위청 장관으로 첫 입각 후, 연속 12선을 기록 중이다. 그는 방위청 장관, 방위상, 농림수산상, 지방창생담당상을 지냈고 자민당에서 정무조사회장, 간사장을 역임했다. 자민당 내에서는 ‘아베파’로 대변되는 우익 성향 의원들과는 한·일 관계 면에서 다른 역사 인식을 보여 ‘비둘기파’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태평양 전쟁 A급 전범을 합사 중인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대해 부정적이며, 일본 우익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
이시바는 정부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며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지만 당내 기반이 약하다. 이 때문에 2008년부터 2020년까지 총 네 차례에 걸쳐 총재 선거에 출마했지만 고배를 마셨다. 특히 아베 신조 전 총리와 맞붙었던 2012년 총재 선거에선 1차 투표에서 1위를 차지했으나 의원 대상 2차 투표에서 패배했다.
야마자키 다쿠 전 자민당 부총재는 지난 5월 “이시바는 고이즈미 내각에서 방위청 장관으로 첫 입각한 뒤 대신과 당 3역을 거쳐 지금까지 4차례나 총재 선거에 도전했다. 당선 횟수도 충분하고 야당도 겪어봤다. 경험 면에서 문제가 없다”며 이시바를 지지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정목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