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미국의 퓨연구센터(Pew Research Center)는 선진 17개국을 대상으로 ‘자신의 삶의 의미와 만족감’에 대한 재미있는 발표를 했다. 17개국 중 14개 국가에서 자신의 삶을 가장 의미 있게 만드는 요인으로 ‘가족’을 꼽았다. 하지만 한국만 ‘물질적 풍요’를 가장 중요한 삶의 의미로 평가했다. ‘가족’을 꼽지 않은 나머지 2개국 중 스페인은 ‘건강’, 대만은 ‘사회’가 1순위라고 했다.
이 보고에서 더 놀라운 사실은 한국은 ‘물질적 풍요’ 척도는 1위를 차지했지만 나머지 직업, 가족이나 친구와의 관계, 취미생활, 자연과 여행, 영성과 종교 등의 척도는 17개국 중 거의 꼴찌를 차지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물질적 풍요’라는 하나의 가치 외에는 삶의 의미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오늘날 한국 사회가 ‘물질’이라는 가치를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생각하면 현재 한국 사회가 과거보다는 부유해졌지만 여전히 현실은 어려운 상황임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취직하기 어렵고, 자기 집을 구입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는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SNS로 물질적 가치를 과시하는 분위기, 돈이 돈을 버는 사회가 됐다는 점 등 다양한 요인이 물질 만능주의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이유는 교육이나 노력으로 달성할 수 있는 소득과 자산의 격차에 대한 회의감이 아닐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누구나 교육을 통해 소위 ‘계층 상승’을 할 수 있는 사회였다. ‘개천에서 용 난다’라는 말이 있듯이 아무리 가난한 사람도 교육을 통해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일을 할 수 있던 사회였던 것이다.
하지만 급격한 경제성장의 시기가 지나고 안정기에 들어서면서 우리나라 역시 미국 등 선진국과 같이 점차 ‘자수성가’의 기회는 사라지고 있다. ‘흙수저’나 ‘금수저’라는 말은 교육을 통해 계층 간 이동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점점 없어지고 있음을 방증하는 단어이며, 이제 우리 사회도 더는 개개인이 교육이나 노력을 통해 달성할 수 있는 근로소득이 아닌 자산이 중요한 시대가 됐다는 자조적인 말일 것이다. 특히 청년들이 느끼는 좌절감은 짐작할 만하다. 이로 인해 역설적으로 ‘물질적 풍요’를 삶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게 됐는지도 모른다.
물론 삶에 있어 ‘물질적 풍요’가 중요한 요소임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대다수의 국민이 삶을 의미 있게 만들 수 있는 수많은 요인 중 물질만이 가장 중요하다는 이 상황은 조금 슬프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적 문제들을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정부는 오히려 더 양극화를 조장하는 경우도 있으며, 청년들이 느끼는 좌절감에 대한 마땅한 방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상대적 빈곤감을 느끼지 않도록 제도적 시스템을 구축하여 국민이 박탈감 없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올해 실시될 대통령선거에서는 젊은 층의 좌절감을 감싸주고 현실적인 해결책을 마련해주어 다양한 삶의 가치를 중시하고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는 대통령을 잘 뽑아야 할 것이다.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