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 윤현종 기자] 용산국제업무지구개발사업이 끝내 청산 수순을 밟게 됐다. 이 사업 최대 주주 코레일은 8일 오후 이사회를 열어 사업협약과 토지매매계약 해제를 결의했다. 코레일은 사업 시행사 드림허브 프로젝트금융회사(PFV·이하 드림허브) 지분의 25%를 보유한 최대 주주이자 사업 부지에 포함된 용산 철도정비창의 땅주인이었다. 땅값을 돌려주면 토지매매계약이 해제되고 사업구역 지정이 취소돼 자동으로 청산 절차를 밟게 된다.

이번 사업 파산의 직접적인 원인은 금융이지 납입시한이 6월 12일로 시간적 여유가 있음에도 코레일이 스스로 토지매매계약 취소를 결정한 데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다. 관련업계에서는 대주주가 사실상 자진해 사업을 청산한 전례가 많지 않은 만큼 ‘특이 사례’로 받아들이고 있다.

▶ 부담없는 코레일, 그러나 자본잠식-줄소송 등 후폭풍 불가피 = 일단 코레일은 큰 부담이 없다는 입장이다. 코레일은 우선 이달 말로 청구시한이 만료되는 협약이행보증금 2400억원을 드림허브에 청구하며 ‘출구 전략’을 본격 실행하게 된다. 코레일은 총 2조4000억원에 달하는 토지대금 중 우선 반환하는 5400억원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을 9월 말까지 순차적으로 완납하고 사업부지를 되찾아올 방침이다. 코레일은 이 금액을 금융권 단기차입금을 조달해 충분히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땅값을 돌려주면 철도기치창 부지를 돌려 받으므로 나중에 재평가해 다시 팔면 되는 등 큰 피해는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다.드림허브 주도의 현 용산개발 사업이 막을 내리는 대신 코레일이 ‘새 판’을 짜고 새로운 개발사업을 재추진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는 이유다.

그러나 후폭풍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우선 코레일의 자본잠식이 우려된다. 개발이익금 7조2000억원이 일시에 빠져나갈 경우 코레일의 순자산은 1조5000여억으로 줄어든다. 자본잠식률도 84%로 높아진다. 만약 코레일이 민간기업이라면 시중은행에서 차입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는 지적이다.

코레일은 민간 출자사와의 줄소송도 감당해야 한다. 일단 출자금 1조원이 사라졌다. 코레일과 29개 민간 출자사들이 사업 추진을 위한 자본금으로 낸 돈이다. 30개 출자사가 200억∼2500억원씩을 투자했다. 이 돈은 그동안 토지대금 대출이자 등으로 쓰여 한 푼도 남아 있지 않다. 아울러 사업이 청산된 결정적 원인이 코레일과 민간출자사 양자 사이의 주도권 다툼이었던 만큼 소송전도 크게 코레일 대 29개 민간 출자사 구도로 진행될 전망이다.

현재 민간출자사들은 전전긍긍하고 있다.투자실패의 책임이 부각될 수 있기때문이다. 한 출자사 관계자는 “경영진이 주주들에게 투자실패원인을 명확히 소명하지 못하면 배임 혐의로 고발당할 수 있다”며 “배임이 아니더라도 경영진 책임이 인정되면 회사에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된다”고 전했다. 민간출자사들은 이들 중심의 새 사업 정상화 방안을 만들어 이번주 국토교통부 산하 ‘공모형 PF(프로젝트파이낸싱) 사업 조정위원회’에 중재를 요청할 계획이다. 그러나 공모형 PF조정위원회는 중재자 역할만 할 뿐 양측 합의에 강제성이 없어 중재가 이뤄져도 코레일이 반대하면 사업 청산이 불가피하다. 코레일의 단호한 입장을 감안할 때 재협상 가능성이 엷어지는 것도 이때문이다.

▶ 초상집 된 서부이촌동…극단적 선택도 = 이런 가운데 개발구역에 포함됐던 서부이촌동 주민들은 공황상태다. 지난달 드림허브의 디폴트 소식에도 일말의 희망을 갖고 지켜보던 주민들은 ‘지난 한 달 간 코레일이 보여준 행태에 치가 떨린다’며 어쩔줄 몰라 하고 있다. 특히 생활자금 등으로 억대의 빚을 진채 40년이상 된 노후주택에 살며 보상금만 바라던 고령자, 취약계층 주민들의 안타까운 사연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서부이촌동의 한 판잣집에 살고 있는 독거노인 김 모(73)씨는 “보상금이 안나올 것이라는 충격에 5년 째 뇌졸중을 앓고 있다”며 “살 길이 막막하다”고 하소연했다. 점포 보증금을 소진하고 10개월치 임대료도 체납 중인 상가세입자 조정길(가명ㆍ64)씨도 “마지막 방법은 자살 뿐”이라며 극단적인 방법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주민들의 빚 부담은 더 늘었다. 4월 현재 서부이촌동의 가구당 평균 부채는 2년 전 3억4000만원에서 최근 4억5000만원까지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이곳 주민협의체는 8일 박찬종 변호사가 이끄는 법무법인 한우리의 ‘손해배상소송 설명회’를 시작으로 법적행동에 본격 착수했다. 주민들의 소송규모도 당초 예상된 2000억 수준에서 5000억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김재철 11개구역대책협의회 총무는 용산개발사업의 최종파산 소식이 전해진 직후 헤럴드경제와의 전화통화에서 “당초 소송은 이번사업의 파산을 전제하지 않고 계획됐었다”며 “향후 소송규모는 사업의 초기단계까지 소급된 피해액으로 산정돼 가구당 2억 이상, 총 5000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