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속 브랜드 탐구생활
티빙 드라마 ‘선재업고튀어’ 속 캔모아
[헤럴드경제=김유진 기자] 2000년대 초중반 소녀들의 비밀 이야기는 종종 캔모아(Canmore)를 배경으로 펼쳐졌다. 공주풍 그네 의자에 앉아 눈꽃빙수와 파르페를 마시고, 무한리필 토스트를 n번쯤 먹다보면 앉은 자리에서 몇시간이 지나있기 일쑤였다. 2008년이 배경인 티빙 드라마 ‘선재업고튀어’에서 여고생 임솔(배우 김혜윤)이 친구와 ‘남자 얘기’로 고민상담을 하던 곳도 바로 캔모아다.
세련된 커피 전문점에 밀려 사라진 줄만 알았던 그 시절 캔모아가 최근 재도약에 나섰다. 아직도 캔모아를 찾는 소녀들이 있냐고? 캔모아는 더 이상 그 시절 소녀들을 위한 시간여행 장소가 아니다. 레트로(Retro)로 시작해 뉴트로(New+Retro)로 진화한 캔모아의 근황, 소녀들을 위해 준비했다.
한때 전국 매장 500개 넘었던 캔모아…어쩌다 사라졌나
캔모아는 2003년 5월 공병순 회장이 미국 유학시절 머물렀던 지역 이름을 본따 설립했다. 청소년들을 주 고객으로 과일주스·프라페 등 과일을 중심으로 한 디저트와 음료를 팔던 카페 프랜차이즈다.
10여년간 전성기를 누린 캔모아는 스타벅스를 필두로 한 커피 중심의 카페 프랜차이즈에 밀려 점차 폐점 수순을 밟았다. 한때 전국 매장이 500개에 달했지만, 가맹 사업을 접고 계약만료 후 자생하던 전국 매장 10여개 정도만을 남겨뒀던 터널같은 시간이 10년 가까이 이어졌다.
그 시절 캔모아 재소환 뒤엔…그 시절 소녀들 있었다?
이대로 사라질 줄 알았던 캔모아는 레트로·Y2K열풍을 딛고 다시금 직영점을 열었다. 커피 일색인 세련되고 힙한 카페들 사이에서 그 시절 캔모아 감성으로 컴백한다면 오히려 개성이 될 수 있겠다는 판단으로 옛 직원들이 다시 한번 합심했다. 2022년 연말 직영1호점인 부평점이 문을 열었고, 지난해 말에는 부평테마의거리 직영2호점까지 생겼다. 두 가게는 불과 도보 2분 거리다. 1호점 수요가 그만큼 뒷받침 됐기에 가능한 선택이었다.
캔모아를 되살린 건 그 시절 그 소녀들이다. 김종규 캔모아 본부장은 “레트로 바람을 타고 다시 한번 사업을 해보자고 대표님을 설득한 건 저지만, 추진력은 대표님 따님 덕”이라며 “따님도 아버지처럼 중국에서 잠시나마 카페 사업에 몸을 담았고, 본인도 그 시절 캔모아에 추억이 남달라 애정을 갖고 시작했다”고 귀띔했다.
지난해 12월 문 연 부평직영2호점은 캔모아에서 중학교 시절을 보냈던 플로리스트 김솔 씨가 인테리어 작업에 참여해 그 시절 분위기를 섬세하게 복원했다. 그는 “캔모아를 사랑하던 소녀였기에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더라”며 “요즘 스타일로 꾸며서는 추억 속 캔모아의 느낌과 멀어지길래, 조금 촌스럽고 레트로한 느낌을 최대한 살리는 쪽으로 작업했다”고 설명했다.
레트로야 뉴트로야?…“캔모아 찾는 건 1020”
90년대 전후 청춘 드라마 감성을 내세운 뉴진스의 ‘Ditto’부터 임시완 주연의 쿠팡플레이 시리즈 ‘소년시대’와 비비의 ‘밤양갱’에 이르기까지 레트로는 또 한번 대중문화와 유행을 관통하는 하나의 굵직한 코드로 자리잡았다.
과거를 추억하고 향수를 느끼는 게 레트로라면, 새로운 세대가 이방인의 눈으로 과거의 콘텐츠를 즐기는 건 뉴트로(‘뉴’와 ‘레트로’의 합성어)다. 그럼 캔모아는 레트로일까, 뉴트로일까?
레트로 열풍 속에 부활한 캔모아는 어느덧 뉴트로 궤도에 올라선 것으로 보인다. 캔모아에 따르면, 직영점 초기에는 그 시절 소녀들이 엄마가 돼 가족단위로 찾아오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사업이 궤도에 오른 지금, 주 고객층의 60~70%는 미디어를 통해 레트로 콘텐츠를 접한 10대와 20대다.
“아니! 벌써 내 차례라니”…90년대생 학창시절 완벽 재현 ‘선업튀’
레트로의 열풍의 원동력은 ‘과거가 끊임없이 생성되고 인간은 어김없이 향수를 느낀다’는 데 있다.
2012년 닻을 올린 tvN ‘응답’ 시리즈는 당시 3040 시청자들의 향수를 자극하며 성공했다. ‘응칠’(2012’) 시원이는 1980년생, ‘응사’(2013’) 나정이는 1975년생, ‘응팔’(2015’) 덕선이는 1971년생이다. 당시 20대였던 90년대 전후 태생 시청자들에겐 응답 시리즈는 어른들의 과거 이야기였다. 신기하고 재밌는 ‘뉴트로’였던 셈이다.
어느덧 또한번의 10여년이 지난 2024년. 2008년을 배경으로 한 tvN 월화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는 올해 기준 서른 다섯인 1990년생 임솔의 학창 시절을 그렸다. 응답 시리즈를 뉴트로로 소비하던 90년대생들이 자신들의 ‘진짜 추억’과 마주할 차례가 온 것이다. 기자 주변에도 ‘벌써 내 차례라니’라는 당혹감과 ‘그땐 그랬지’라는 아련함으로 이 드라마를 본다는 90년대생 지인들이 한트럭이다.
돌이켜보면 2000년대 중반 학창시절은 악습과 적폐도 많았다. 폭력은 수시로 교육의 수단이 되고, 입는 옷과 머리 하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도 없었다. 그토록 불완전한 시절이 이토록 소중해진다는 건, 막막한 오늘에 건네는 최고의 위안 아닐까. 레트로는 무대의 주인공을 시시각각 바꿔가며 건재할 클래식이다. 어른들에겐 점점 더 많은 위로가 필요한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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