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연인’은 ‘옷소매 붉은 끝동’에 이어 MBC에서 또 한번 히트한 사극이다. 여주인공 길채는 병자호란이라는 큰 환란을 겪으며 발랄한 능군리 애기씨에서 들꽃처럼 단단한 여인으로 성장하며 최선을 다해 인생을 사는 사람으로 시청자들의 응원을 받았다.
길채를 연기한 안은진도 ‘연인’을 통해 한층 단단해진듯 했다. 병자호란을 겪으며 엇갈리는 연인들의 사랑과 백성들의 생명력을 잘 표현해냈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특히 처음에는 미스캐스팅 논란도 있었지만 안정된 연기로 극복하며 큰 사랑을 받았다.
“초반에 사랑 받지 못할 거라는 생각은 했다. 길채가 자애로운 부분은 없고 자기 생각만 하고, 미운 짓만 골라서 하지 않나. 그런데 남궁민 선배가 나에게 ‘1~2부는 캐릭터 때문에 그런 거고, 3~4부에서는 응원 받잖아’라고 설명을 해주었다. 한 1주일 정도 속상하다가 괜찮아졌다.”
안은진의 길채 연기는 결코 쉽지 않았다. 특히 1부 깨발랄 시절의 길채가 어려웠다고 한다. 안은진은 “이렇게 변화무쌍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게 좋기는 했지만 초반 대본에 앙큼, 새초롬 등이 특징인 길채 캐릭터를 구축하는 게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처음에는 연준을 좋아하다가 장현의 사랑을 깨닫고 마음고생을 하지만, 나 또한 K장녀로서 길채의 선택이 이해가 됐다. 장현을 사랑하게 되면서도 그 분은 바람 같이 훌쩍 떠나 안정적인 생활을 하기 힘들었고, 장현이 죽은 것으로 알고 3년이 흘러 재회하게 됐다”고 했다.
길채의 성장 계기는 병자호란이다. 전쟁이 터지면 사람의 본성이 더 잘 보일 것이다. 길채는 피난을 가다 일행중 한 명인 은애의 몸종 방두네(권소현)의 출산을 도와 아기를 받아낸다. 고향에 돌아와서도 가족을 지키기 위해 대장간을 맡아 열심히 산다. 이은진은 “길채는 손에 물 한번 묻힌 적이 없지만 위급한 상황이 터지니 본래 기질이 나온다”면서 “방두네를 살려 이끌고, 심양에 가서도 많은 고생을 한다. 한 여인의 삶이 이렇게 기구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안은진은 “남편 구원무(지승현)가 날 찾으러 심양에 왔다가 돌아갔다는 말에, 길채에겐 오히려 희망의 불씨가 생겼다. 길채가 포로시장에서 좀비처럼 끌려다니며 삶을 포기했지만, 장현이 길채를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걸 보면서 다시 살아 장현에게 폐 끼지치 않고 사는 게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고 기구한 길채의 성장 과정을 전했다.
안은진은 ‘연인’을 통해 조선사회 병자호란기 포로문제 등 당시 사회상에 관해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영화 ‘올빼미’에 출연할 때는 궁에서 있었던 일만 공부했다면 ‘인연’에서는 포로와 속환된 이후의 삶까지 알 수 있었다.
“포로와 속환 문제를 이번처럼 세세하게 살펴본 적이 없었다. 시청자들에게 불편한 장면일 수도 있지만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속환된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 등 당시 역사 공부도 더 많이 하게 됐다. 문성근 선배님을 8년만에 뵙고 인사드렸는데, 선배님도 포로를 다룬 게 처음이라 꼭 하고싶었다고 말씀하셨다. 길채-장현의 사랑 외에도 왕족, 지배층과 당시 백성의 삶을 고루 다룬 밀도 있는 작품이었다.”
‘연인’은 여성간 연대의 드라마이기도 했다. 길채는 처음에는 성균관 유생 연준(이학주)을 좋아해 은애(이다인)와 삼각관계를 형성했다. 하지만 끝까지 길채-은애의 우정은 지속된다. 안은진은 “길채와 은애의 우정과 의리는 부러울 정도다. 길채는 은애가 오랑캐에게 겁탈 당하는 걸 막아주고, 은애도 길채를 찾으러 가다 마을 초입에서 잡힌다. 또 길채와 몸종 종종이와의 관계도 상하관계지만 서로를 위하는 가장 바람직한 관계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길채는 한마디로 대단한 여성이다. 청에서 한양으로 돌아올 때 주위에서 환향녀라며 수군대자 “개 짖는 소리다”라면서 “욕 먹는다고 안죽어. 움츠러들지 마”라고 함께 온 사람들을 다독거린다. 안은진은 “길채에게 그런 기질은 어디서 나왔을까를 생각하며 그 순간을 연기했다”면서 “현대로 바꿔 생각해도 능동적이며 생명력이 강한 사람이다”고 해석했다.
‘연인’은 장현과 길채간의 엇갈리는 사랑을 잘 그리면서 결국 재회로 마무리됐다. ‘장채커플’은 그런 애틋함속에서 탄생한 최고의 커플이었다. 안은진은 최고의 명대사로 “안아줘야지. 힘들었을텐데”를 꼽으며 “대본만 봐도 눈물이 났다. 바로 그 앞부분 ‘유순한 길채’ 부터 대본을 놓을 수 없었다. 촬영장에서도 ‘안아줘야지’가 유행어가 됐다”고 전했다.
안은진은 배우로서 남궁민과 큰 경험을 했다. 하는 작품마다 성공하는 남궁민을 “유니콘 같은 배우”라고 했다. 안은진은 “큰 작품에서 단단하고, 존재만으로 의지가 되는 선배였다. 디테일하게 설명해주기도 했는데 따라해보면 흐름이 매끈해지는 등 거의 정답이더라”면서 “‘은진아 진짜 안좋으면 전화해. 몸이 안좋으면 선배에게 얘기해야 돼’라고 항상 잘 챙겨줘 후배로서 행복했다”고 말했다.
또한 “멜로 촬영할 때도 불편한지 일일이 물어봐 주시고, 멜로 모드로 들어가면 바로 눈빛을 갈아끼운다. 눈빛이 다했다. 남궁민 선배가 그 신에 깊이 들어가 있어 나는 눈만 보면 사랑을 담을 수 있었다. 멜로 연기하기가 편했다. 이런 유니콘 같은 캐릭터가 바라봐주고 위로해주는 건, 이건 반칙이지”라고 덧붙였다.
안은진은 “장현-길채 커플을 보면서 빨리 화해하고, 솔직하게 말하는 것 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기도 했다”면서 “이번에는 어머니들이 좋아하시더라. 엄마 친구들이 길채를 좋아한다고 해 기분좋았다”고 고생한 보람을 전했다.
‘연인’은 지난 1년 동안 전국을 다니면서 사계절을 보냈다. 지난 겨울에 시작해 다시 겨울이 왔다. 이 과정에서 ‘연인’ 스태프들 중에서 아홉쌍의 커플이 탄생했다고 한다. 안은진은 “나도 ‘연인’의 호사가로서 커플이 많이 나와 신기하면서도 재밌게 봤다. 1년간 전국을 돌며 촬영해 정이 안들 수가 없었다. 우리는 이들을 ‘연인의 연인’이라고 불렀다. 즐거운 경험이었다”고 전했다.
안은진은 “촬영하면서 다닌 동해시 무릉계곡을 비롯해 함안, 합천 등 전국의 경치 좋은 명소는 다 꿰고 있다. 부모님 효도여행을 어디로 갈지도 파악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