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프란치스코 교황이 미국 방문 중에도 소외된 이들의 버팀목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23일(현지시간) 프란치스코 교황이 미국 워싱턴의 백악관 근처를 카퍼레이드로 지날 때 한 소녀가 제지선 안으로 들어와 교황에게 다가가려고 했다.

경호원들이 급히 소녀를 붙잡아 돌려보냈지만, 소녀의 아버지는 딸을 다시 바리케이드 위로 들어 올렸다. 이를 본 교황은 소녀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을 하며 차량을 멈췄다.

소녀는 경호원에게 안겨 교황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교황은 경호원이 차량까지 번쩍 들어 올린 소녀를 뺨에 입을 맞추며 축복했다.

다시 바닥에 내려진 소녀는 손에 꼭 쥐고 있던 편지와 노란 티셔츠를 교황을 향해 위로 내밀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경호원이 전달한 편지와 티셔츠를 환히 웃는 얼굴로 받아들었다.

나중에 소녀는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미등록 이주민 부부의 다섯 살 된 딸 소피 크루즈로 확인됐다.

“우리 피부색이 어떻든 간에 내 친구들과 나는 서로 사랑합니다.”소피가 직접 작성한 편지에는 이런 스페인어 문구, 교황과 여러 인종의 친구들이 손에 손을 잡은 그림이 담겨 있었다.

또 소피가 교황에게 건넨 노란색 티셔츠에는 ‘교황님, DAPA를 살려주세요’(PapaRescate DAPA)라는 문구가 쓰여있었다.

DAPA(Deferred Action for Parents of Americans)는 불법체류자 자녀가 미국에서 태어나 시민권을 얻을 경우 그 부모도 추방하지 않는다는 오바마 정부의 이민개혁 정책이지만 공화당의 반대로 현재 시행이 중단된 상태다.

소피 가족이 바로 이 DAPA 정책에 해당되는 경우다. 소피와 그의 여동생은 미국시민이지만, 부모가 불법체류 단속 대상이다.

다른 말로 하면 소피와 동생은 ‘앵커 베이비’(anchor baby)다. 앵커 베이비는 미등록 이주민이 미국에서 출산해 출생 시민권을 규정한 헌법에 따라 시민권을 얻은 아기를 뜻한다.

배가 정박하려고 닻(anchor)을 바다에 내리듯 부모가 아이를 미국인으로 만들어자신들의 정착을 돕는다는 뜻을 담은 것으로 인식된다.

공화당을 비롯한 미국 정치권 일각에서는 앵커 베이비라는 말을 써가며 이주민 가족을 비하하는 때가 종종 있었다.

최근에는 대권 도전에 나선 젭 부시(공화당) 전 플로리다 주지사가 원정출산을 비판하며 이 말을 꺼냈다가 곤욕을 치른 바 있다.

소피는 불안하게 살아가는 앵커 베이비의 처지를 널리 알리고 제도를 개선하겠다는 이유로 이날 교황에게 달려간 것으로 전해졌다.

편지 본문에는 소피의 두려운 하루하루가 구구절절 녹아있었다.

“교황님, 마음이 슬퍼요. 어느 날 엄마, 아빠를 데려갈까 봐 매일 겁이 나요.

대통령과 의회에 얘기해서 엄마, 아빠가 합법적으로 체류할 수 있게 해주세요.” 그는 AP통신 인터뷰에서 언젠가 오바마 대통령에게 전달할 두 번째 편지도 써뒀다고 밝혔다.

소피의 부모는 10년 전에 멕시코에서 건너와 현재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고 있다.

아버지 라울 크루즈는 이날 워싱턴포스트 인터뷰를 통해 “미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의 부모는 극심한 불안 속에 산다”고 말했다.

소피는 불안 속에서도 아빠를 보는 시간이 적다고 한다. 그가 도금공장에서 불규칙하게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아빠가 오후 4시30분부터 새벽 3시까지 일할 때가 잦다”며 “아빠가 쫓겨날까 겁내지 않고 살 날이 언젠가 찾아올 것을 소망한다”고 말했다.

소피는 교황에게 달려갈 용기가 어디에서 났느냐는 말에 “하느님이 이끌었다”고신앙을 고백했다.

그는 교황에게 보낸 편지에 미등록 이민자를 강경진압하는 정책을 완화해달라는목소리도 또박또박 담아냈다.

“나는 엄마, 아빠와 함께 살 권리가 있어요. 행복할 권리도 있어요. 아빠 같은 이주민도 품위있게 살고 존중을 받을 자격이 있어요. 이민개혁의 혜택도 받을 만 해요. 이민개혁은 우리나라에 도움이 되고, 이주민들은 오렌지, 양파, 시금치, 그 외에 다른 채소를 수확하는 데 열심히 일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소피의 이번 계획은 로스앤젤레스의 시민단체 ‘라 에르만다드’가 도왔다. 이 단체는 미등록 이민자의 애환을 전하려고 소피를 골라 교황에게 보냈다고 설명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난민과 이주민이 소외되고 배척받는 현실을 안타깝게 여기고 있다.

그는 최근 시리아 난민사태가 심각해지자 선진국의 책임을 강조하며 전 세계의 성당, 수도원, 수녀원, 성지는 즉각 난민을 받아들여 보살피라고 명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