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보고 싶네/아름다운 그 모습을 자꾸만 보고 싶네”

한국인이라면 누구에게나 익숙한 명곡인 신중현의 ‘미인’. 그런데 무대 위에서 이 곡을 부르고 연주하는 이들은 놀랍게도 이방인이었다. 발음은 조금 어색했지만, 이들의 표정에선 무대를 즐기는 자의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객석에서 무대를 즐기는 이들의 상당수도 이방인이었다. 비록 낯선 나라의 낯선 장소에 마련된 무대였지만 이들은 무대와 객석의 주인공으로 그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낯선 땅 한국에서 음악으로 쏘아올린 다문화의 희망

지난 19일 오후 서울 신정동 CJ아지트에서 조금 특별한 콘서트가 마련됐다. ‘튠업 음악여행 안산’이란 타이틀로 열린 이날 콘서트의 주역은 경기도 안산시에 거주 중인 중도입국청소년(외국에서 태어나 부모를 따라 한국으로 들어온 청소년), 결혼이주여성, 외국인근로자 밴드였다. 여기에 해리빅버튼, 향니, 블루파프리카, 후추스 등 CJ문화재단의 신인 뮤지션 지원프로그램 ‘튠업’을 통해 선발된 뮤지션들이 함께 무대를 채워 풍성함을 더했다.

이날 콘서트는 CJ문화재단의 이주노동자를 위한 문화 프로그램으로부터 출발했다. CJ문화재단은 지난 2012년부터 서울 다솜학교에서 다문화 청소년을 위한 음악 수업을 진행해왔다. ‘튠업’ 뮤지션들이 선생님 역할을 맡아 다문화 청소년들과 교감했다. 올해부터 ‘튠업’ 뮤지션들은 인구의 10%가 외국인인 안산으로 향했다.

낯선 땅 한국에서 음악으로 쏘아올린 다문화의 희망

블루파프리카가 열어젖힌 무대 위로 중도입국청소년으로 구성된 ‘드림팀 밴드’가 등장했다. 이웃사랑 안산다문화지역아동센터에서 수업한 중도입국청소년들은 이날 무대에서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뽐냈다. 수업을 진행했던 후추스의 김정웅, 블루파프리카의 성기훈, 코어매거진의 이동훈, 마호가니킹의 이말씨가 함께 무대에 올라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갔다. 이어 후추스, 해리빅버튼, 향니의 축하 무대가 펼쳐진 뒤 안산시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K팝 부르기 수업을 받은 결혼이주여성 보컬팀이 무대에 올랐다. 고국의 전통의상을 곱게 차려입은 이들은 이선희의 ‘인연’, 장윤정의 ‘어머나’ 등을 선보여 큰 호응을 얻었다.

‘튠업음악여행안산’의 큰 수확은 인도네시아 출신 외국인 노동자로 구성된 밴드 ‘짬부르사리’의 발견이다.

낯선 땅 한국에서 음악으로 쏘아올린 다문화의 희망

인도네시아어로 ‘여러 가지가 섞여 있는 꽃’이란 의미를 가진 ‘짬부르사리’는 지난해 결성돼 안산 외국인 근로자들 사이에선 꽤 이름이 알려진 밴드이다. ‘짬부르사리’는 아시안체어샷의 황영원과 손희남, 코어매거진의 송인학과 강민규, 블락스의 유현욱과 김형균, 마호가니킹의 제이신 등 ‘튠업’ 뮤지션들과 함께 연습하며 낯선 땅의 무대를 준비했다. ‘짬부르사리’는 이날 무대에서 수준급의 연주로 신중현의 ‘미인’을 비롯해 인도네시아 곡을 라이브로 들려줬다.

결혼이주여성 보컬팀 수업을 진행했던 마호가니킹의 홍아라는 “메르스 사태의 여파로 계획보다 연습을 많이 할 수 없었지만 한 명도 빠지지 않는 등 열심히 무대를 준비했다”고 전했다.

한편, 이날 무대는 이후 안산시 원곡동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또한 ‘짬부르사이’는 오는 26일 안산M밸리록페스티벌 무대에 올라 ‘튠업’ 뮤지션들과 함께 연주한다. 고국에서도 이렇게 큰 무대에 서보지 못했다는 이들은 “큰 무대에 서게 돼 떨리지만 잘 해내겠다”며 “고국으로 돌아가서도 계속 음악을 하고 싶다”고 바람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