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 임인건 ‘올 댓 제주(All That Jeju)’= 뭍사람들에게 제주는 무척 이채로운 공간입니다. 제주를 대한민국 땅이면서도 대한민국 땅이 아닌 듯한 느낌을 주는 공간이라고 표현하면 조금 과한가요? 제주국제공항을 빠져나와 올려다 본 하늘이 뭍에서 올려다 본 하늘과 다르게 느껴지는 경험을 한 이들은 기자만이 아닐 겁니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설레는 제주라는 공간을 음악으로 표현한다면 어떤 결과물이 나올까요? 이 앨범은 그 소박한 질문의 아름다운 해답입니다.

서울이 고향이지만 제주에 살고 있는 재즈 피아니스트 임인건과 베이시스트 이원술은 지난해 말부터 제주를 소재로 만든 음악을 발표하는 프로젝트 ‘올댓제주’를 진행했습니다. 이제 완전히 제주도민이 다 된 장필순이 장엄한 애월의 금빛 낙조를 서정적이면서도 몽환적으로 표현한 ‘애월낙조’는 그 시작이었죠. 이후 가슴 아픈 짝사랑을 애절하고도 우아하게 노래한 정준일의 ‘짝사랑’, 억척스레 제주를 지켜 온 설문대 할망들의 모습을 파도를 닮은 시원한 음악으로 그려낸 BMK의 ‘바람의 노래’, 아직 남아 있는 제주의 옛길을 따라 하도리 마을로 가는 여정을 담담하게 소화한 강아솔의 ‘하도리 가는 길’ 등 놓치기 어려운 멋진 곡들이 줄줄이 ‘올댓제주’라는 이름으로 이어졌습니다. 여기에 임인건의 연주곡 ‘평대의 봄’ ‘푸른 밤 푸른 별’이 추가로 더해져 하나의 옴니버스 앨범으로 완성됐습니다.

이 앨범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바로 이 앨범을 만든 임인건입니다. 임인건은 80년대부터 한국 최초의 재즈클럽 ‘야누스’에서 활동해 온 재즈 2세대 대표 뮤지션입니다. 그는 박성연, 이판근, 강대관, 김수열, 이동기 등 재즈 1세대 뮤지션들과 함께 연주하며 세대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해왔습니다. 또한 그는 지난 2011년 즉흥 연주를 중시하는 재즈에선 거의 쓰이지 않는 미디를 활용한 파격적인 시도로 주목을 받기도 했죠. 기교를 덜어낸 음악으로 돌아온 베테랑 연주자의 변신이 즐겁습니다.

<정진영의 이주의 추천앨범> 15. 임인건 ‘올 댓 제주’ㆍ 9와 숫자들 ‘빙글빙글’ 외

▶ 9와 숫자들 미니앨범 ‘빙글빙글’= 지난해 대한민국에서 발표된 모든 앨범들 중 가장 높은 완성도를 가진 작품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마도 답이 분분할 겁니다. 하지만 가장 좋은 가사를 들려줬던 앨범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조금 다른 풍경이 펼쳐지지 않을까요? 그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는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할 앨범은 아마도 밴드 9와 숫자들의 정규 2집 ‘보물섬’일 듯합니다. 9와 숫자들이 2집 발표 후 불과 4개월 만에 내놓은 미니앨범 ‘빙글빙글’도 밴드의 그런 강점을 잘 드러내 보여주는 수작입니다.

이번 앨범에는 ‘빙글’ ‘빙글빙글’ ‘빙글빙글빙글’ 3곡이 수록돼 있습니다. 미니앨범이라고 말하기에 다소 단출한 구성을 가진 앨범이지만, 9와 숫자들은 과거의 결과물을 반복 재생하는 대신 나름의 변주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우선 앨범의 타이틀과 수록곡 3곡의 제목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앨범은 콘셉트 앨범의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타이틀곡 ‘빙글’은 9와 숫자들이 처음 선보이는 미드템포의 어쿠스틱 팝이고, ‘빙글빙글빙글’에는 어쿠스틱 사운드의 뼈대를 해치치 않는 한도 내에서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더해졌죠.

늘 그래왔듯이 9와 숫자들의 노래들은 문득 가사로 무릎을 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별의 우울을 은유하는 ‘빙글’의 “얼어붙은 언덕에/깨진 무릎을 부비면/기억은 더 선명히”, 반복되는 일상과 만남의 피로를 고백하는 “미안 오늘 조금/급한 일이 있어서 그랬어/아니 다음 주도 어려울 것 같아/정말 미안해/미뤄둔 약속들만 줄지어 우네” 같은 가사는 그대로 종이에 옮겨 적으면 시로 읽힐 정도로 멋진 표현들이죠. 그중에서도 백미는 사랑하기 때문에 견뎌내야하는 것들을 돌아보는 ‘빙글빙글빙글’의 가사입니다. “당신을 사랑한 뒤로/난 거짓말이 늘었네/아픔은 무탈함이고/그리움은 관절염과 같은 것”과 같은 가사는 어떤 과정을 거쳐야 곡으로 완성될 수 있는 것인지 그저 궁금할 따름입니다.

9와숫자들은 오는 25일 오후 7시 서울 서교동 레진코믹스 브이홀에서 앨범 발매 기념 콘서트를 엽니다. 그곳에서 새 앨범을 더욱 생생하게 느껴보시길.

※ 살짝 추천 앨범

▶ 프로젝트 시로(詩路) 정규 2집 ‘골목환상’= 한국의 전통음악인 정가와 민요의 정서, 즉흥적이면서도 실험적인 현대 음악. 이 모든 것들이 시와 함께 조화를 이뤄 우리 주변의 흔한 골목을 더 이상 흔하지 않은 공간으로 만든다. 이런 골목 여행이라면 얼마든지 환영.

<정진영의 이주의 추천앨범> 15. 임인건 ‘올 댓 제주’ㆍ 9와 숫자들 ‘빙글빙글’ 외

▶ 조응민 정규 1집 ‘오리엔탈 페어리 테일(Oriental Fairy Tale)’= 따뜻하게 청자를 감싸는 공간감을 가진 매력적인 기타 톤. 수록곡들마다 다른 목소리를 내면서도 서정과 감성을 잃지 않는 다채로운 연주.

▶ 신세하(Xin Seha) 정규 1집 ‘24Town’= 올드 스쿨 특유의 간결한 사운드. 80년대 추억을 되살려내는 톤의 신서사이저 연주. 앨범 재킷만 카세트테이프가 아니다. 그런데 1993년생이라고? 세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