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 김일두 정규 2집 ‘달과 별의 영혼’= 잔잔한 어쿠스틱 기타 연주에 실린 기교 없는 투박한 목소리를 흘려보내듯 지나치지 마세요. 그 목소리가 실어나르는 가사에 주목해주세요. 뭔가 있어 보이는 듯한 가사에 ‘문학적’이란 거창한 수식어가 흔하게 붙는 세상이죠. 이 앨범에 담긴 곡들의 가사는 미문과 철저히 거리를 두고 있지만, 그 거창한 수식어가 아깝지 않을 만큼 절실하고 아픕니다. 이 앨범을 감상하기 전에 먼저 재킷에 담긴 넓은 가사지를 펼쳐 드시죠.
김일두는 목소리만큼이나 투박한 말투로 거리의 성자처럼 도시의 짠내 나는 삶과 세상의 부조리를 훑습니다. “본드나 성냥으로 충분히 황홀해지는 세상”이라고 툭툭 내뱉는 목소리 뒤로 들리는 ‘직격탄’의 절규는 남루한 현실을 섬뜩하게 전합니다. “진실 없는 사랑은 타살”이라고 일갈하는 ‘시인의 다리’, “슬픔은 갑자기 옵니다/행복 또한 그러합니다”라며 “죽어야만 없어질 터이니/도와 달라는 얘긴 무의미”라고 자조하는 ‘정신병’은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는 관계의 허무함을 아프게 조명합니다. “호구 새끼/걸레 빨고 으스대기는”이라며 나즈막하지만 날카롭게 분노하다가 “주님 계시긴 한 거죠”라고 되묻는 ‘SBGR’은 경쾌한 사운드와 엮여있어 더욱 따갑습니다. “어쭙잖은 것들에게 작살나는 운명/그리하여 오만은 아름다워라”고 체념하는 ‘숙명’에 다다르면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김일두는 그 질문에 대한 결론을 내리진 않습니다. 사실 그럴 필요도 없고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그 자체만으로도 “누구나 다 그런 삶을 살아내고 있다”는 위안이 되니까요. 직접 눈앞에서 위안을 느끼고 싶다면 5월 2일 서울 동교동 ‘한잔의 룰루랄라’로 찾아오시죠. 그곳에서 그날 김일두의 앨범 발매 기념 단독 콘서트가 열립니다.
▶ 피해의식 정규 1집 ‘헤비메탈 이즈 백(Heavy Metal is Back)’= 짙은 화장과 긴 머리, 가죽바지와 호피무늬 의상, 강렬한 기타 리프와 유려한 멜로디. 2015년에 이런 ‘쌍팔년도 헤비메탈’을 다시 듣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나요? 심지어 앨범 타이틀까지 당당하게 “헤비메탈이 돌아왔다!”입니다. 구시대의 유물이라고 생각했던 이런 음악이 세월을 돌고 돌아 신선하게 들리는 날이 올 줄 몰랐습니다.
피해의식이 단순히 화려했던 과거의 유산을 추억하고 재현했을 뿐이라면 이렇게 관심을 모으진 못했을 겁니다. 앨범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피해의식은 과거의 유산을 모두 비틀어 재현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우선 금발을 휘날리는 미남 보컬 대신 가발을 눌러 쓴 자유육식연맹 총재가 과장된 표정으로 프론트 맨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부터 파격입니다. 가사에서도 멋을 기대했다면 꽤 당황스러울 겁니다. “애 아빠가 나인지도 확실하지 않잖아”라며 당혹감을 드러내는 ‘속도위반’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제목부터 민망한 ‘사면발이’는 80년대 록발라드를 충실하게 재현한 사운드 위에 “아침 햇살에 깨어/난 습관적으로/그 곳에 손을 넣어/근데 이 가려움은 뭘까”라는 가사를 실어 실소를 자아냅니다. ‘러브 오브 식스티나인(Love Of Sixtynine)’에 대한 설명은… 그냥 생략하겠습니다.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시죠. ‘음란마귀’가 도와줄 겁니다. 특히 ‘걸 그룹(Girl Group)’을 감상하실 땐 반드시 이어폰을 지참하시고요. 배경에 깔린 키보드 연주를 듣고 ‘야동’으로 오해하는 분들이 적지 않을 테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의식의 시도는 꽤 멋있어 보입니다. 이 멋은 피해의식이 역으로 멋있는 척을 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했다면 무리한 의견일까요? 오는 26일 서울 서교동 KT&G 상상마당 라이브홀에서 열리는 피해의식 단독 콘서트에서 확인해 보시죠.
“통기타치고 젬베 따위 두드리는 병신 같은 너/실실 대며 흥얼거리는 거지새끼들/주둥이만 나불나불 힙합 좆밥 돼지들/질질 짜며 노래 부르는 감성게이들/사실 나도 너희들이 졸라 부러워/우리들도 너네처럼 하고 싶었는데”(‘헤비메탈 이즈 백’ 중)
※ 살짝 추천 앨범
▶ 이어스(Ears) 정규 1집 ‘하프 그론(Half Grown)’= 몽환적이면서도 따뜻한 사운드가 주는 편안함이 대단히 매력적. 거두절미하고 아름답다. ‘이퀄(Equal)’ ‘더 그레이트풀 브리즈(The Grateful Breeze)’ 추천.
▶ 프롬 정규 2집 ‘문보(Moonbow)’= 사운드의 힘을 빼고 돌아와 감정에 충실한 음악을 담아낸 앨범. 프롬은 앞으로도 보여줄 게 많은 싱어송라이터이다. ‘찌잉’ ‘이만한 게 다행’ 추천.
▶ 미쓰에이 미니앨범 ‘컬러스(Colors)’= 수록곡 전곡 모두 기복 없이 귀에 쏙쏙. 올 봄에는 다른 걸그룹 말고 너. ‘다른 남자 말고 너’ ‘아이 코트 야(I Caught Ya)’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