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SK텔레콤오픈 때의 일이다. 당시 아마추어 세계랭킹 1위 이원준은 스카이72골프클럽 하늘코스의 412야드짜리 이단 내리막 파4홀인 13번홀에서 드라이버를 꺼내 들었다. 강력한 임팩트와 함께 볼은 똑바로 날아갔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이원준의 볼은 찾을 수 없었다. 한참을 찾은 끝에 이원준의 볼은 동반 플레이어인 호주 선수에 의해 그린 뒤편 러프 지역에서 발견됐다. 이원준은 파5홀인 18번홀에서도 유일하게 2온을 시켰다. 성대결에 나선 미셸 위가 4번 아이언으로 3온을 시킨 홀이었다. 스카이72 골프클럽의 김영재 사장은 “18번홀에서 2온 시킨 선수는 이원준이 유일하다”고 회고했다.다음 해인 2007년 매경오픈 때도 이원준은 가공할 장타로 갤러리 뿐 아니라 경쟁 선수들을 놀라게 했다. 남서울CC 5번홀은 413야드짜리 파4홀로 왼쪽으로 휘는 오르막 경사의 도그레그 홀로 그린이 까다로워 파를 잡으면 만족하는 난이도가 있는 홀이었다. 프로자격으로 출전한 이원준은 페어웨이 왼쪽 산등성이를 향해 드라이버샷을 날렸다. 앞 조의 선수들은 퍼팅 라인을 읽다 그린 위에 ‘툭’ 떨어진 볼에 화들짝 놀라야 했다. 어린 시절 제임스 본드 같은 첩보원을 꿈꾸던 이원준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이후 운동 삼아 골프를 시작했다. 그리고 불과 일년 만에 뉴사우스웨일즈 매치플레이 챔피언십에서 연장전 끝에 우승했다. 37번째 홀에서 브리티시 아마추어 챔피언십 우승자인 게리 홀스텐홈을 물리쳤다. 37번째 홀은 핀까지 315m 거리의 파4홀이었는데 이원준은 5m 거리의 이글 기회를 만들었다. 드라이버로 310m를 날린 것이다. 이원준의 최장타 기록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빈슨 렌치 골프장에서 기록한 425m이다. 이 골프장은 평평한 사막 코스에 있다.동양선수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장타를 날리던 이원준은 그러나 PGA투어 진출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191cm 93kg의 체격을 갖춘 이원준은 LG전자와 10년짜리 장기 계약을 하며 ‘포스트 타이거’의 선두주자를 노렸으나 운이 닿지 않았다. PGA투어 퀄리파잉스쿨을 통과하지 못했고 2부 투어인 웹닷컴투어에서 상금랭킹 25걸을 노렸으나 이뤄지지 않았다.손목 부상까지 찾아온 이원준은 2년 전 골프채를 내려 놓았다. 기형적인 왼쪽 손목 뼈가 문제였다. 이원준은 바닥으로 추락하는 심리상태를 제어하지 못해 자살 충동에 시달릴 정도로 심한 우울증을 겪었다. 부모님과 상의 끝에 의대 진학을 위해 지난 해 공부를 시작한 이원준은 그러나 골프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했다. 가족 몰래 일본프로골프투어(JGTO) 퀄리파잉스쿨에 참가 신청을 한 이원준은 지난 해 12월 열린 Q스쿨 최종 예선을 통과하며 출전권을 획득했다.이원준은 어찌 보면 운동선수로는 부적합한 인성을 갖고 있다. 항상 어려운 사람들을 돌보려 하며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강하다. 그리고 신세 진 사람들에 대해선 끝까지 의리를 지키려고 노력한다. 일본의 대표적인 골프용품사가 시즌 개막을 앞두고 거액의 후원계약을 제시했으나 아마추어 시절부터 지원해 준 타이틀리스트사와 5분의 1의 금액에 계약을 맺었을 정도다. 승부의 세계에선 결코 도움이 안되는 인성이다. '사람 좋으면 꼴찌'라는 말까지 있지 않는가. 하지만 죽음을 생각할 정도로 절박함을 경험한 만큼 모진 마음이 생기지 않았을까 짐작된다.이원준은 오랜 호주 생활을 청산하고 18일 귀국했다. 인천 청라지구에 집을 마련한 이원준은 다음 달 16~19일 열리는 JGTO 도켄 홈메이드컵을 시작으로 2년 만에 투어생활을 재개한다. 아마추어 시절 세계 정상에 올랐던 이원준이 ‘미완의 대기’라는 이름표를 떼고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것이다. 만 30세의 나이로 ‘제2의 골프인생’을 시작하는 이원준이 부디 ‘못 다핀 꽃 한송이’가 아님을 입증했으면 좋겠다. [헤럴드스포츠=이강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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