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산수유꽃은 불현듯 찾아와 바쁘게 몸을 사리는 봄을 많이 닮았습니다. 봄이 채 무르익기 전에 잎보다 먼저 마른가지를 비집고 피어난 샛노란 산수유꽃은 봄의 한복판에서 문득 새벽안개처럼 사라집니다. 이 같은 산수유꽃의 흥망은 마치 꿈결 같아서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꽃대에 희미한 자취만을 남긴 채 사라지는 일도 허다합니다. 매년 봄이면 전국 최대의 산수유 군락지인 전남 구례군은 수많은 인파로 미어터지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봄의 꿈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은 욕심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식물왕 정진영> 6. 우리는 ‘산수유꽃’을 등지고 봄의 춤을 춘다

산수유꽃 개개는 뜯어보면 그리 볼품이 없습니다. 꽃망울의 크기는 좁쌀처럼 작은 데다, 만개한 꽃의 생김새 역시 밋밋하기 짝이 없죠. 이처럼 허약한 산수유꽃의 모습을 장관으로 거듭나게 만드는 것은 군집입니다. 무리지어 일제히 피어나는 산수유꽃은 다른 꽃들과는 달리 먼 곳에서 은근한 아름다움을 뽐냅니다. 바람이 불면 파스텔 톤의 노란 물결로 일렁이는 산수유 꽃무리는 늦봄에 황홀한 꽃비를 내리는 벚처럼 시야를 압도하지 않습니다. 참으로 마음이 따뜻해지고 포근한 풍경입니다.

산수유는 살갗에 닿는 공기가 제법 쌀쌀해지는 늦가을에 다시 한 번 장관을 연출합니다. 오래전 꽃이 진 자리에 루비처럼 붉은 빛깔의 열매들이 알알이 맺혀 가을햇살을 맞아 영롱하게 빛을 발하기 때문이죠. 산수유 군락지는 이 무렵 다시금 사람들의 발길로 몸살을 앓습니다. 하나의 나무로 계절을 건너 뛰어 두 가지 원색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죠. 남자에게 참 좋다는 산수유 열매는 눈에도 참 좋습니다.

산수유꽃의 꽃말은 ‘지속(持續)’, ‘불변(不變)’이랍니다. 유래가 불분명한 꽃말이지만, 그 꽃말 하나만으로도 연인들이 노란 꽃대궐 안을 거닐어야 할 이유는 충분해 보이는군요. 멀리서 손에 닿지 않았던 아련한 풍경이 곧 지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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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 서울 성동구 성수동1가 살곶이다리 부근에서 촬영한 산수유꽃. 정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