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 반도체 성공 키는 ‘협력’
‘홀로’ 성공해온 삼성엔 오히려 약점돼
SK-엔비디아-TSMC 삼각편대 기반에도 신뢰·협력
생태계 구축 및 협력 친화적 마인드 조직에 전파해야
[헤럴드경제=김민지 기자] “TSMC와 이야기할 때마다 가슴이 따뜻해진다. 파트너사를 존중하고 파트너사의 고민 해결을 위해 노력을 기울이기 때문이다.”
지난 4일 열린 SK AI 서밋 행사에서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TSMC와의 협력 사례를 언급하며 이 같이 말했다. ‘SK하이닉스-엔비디아-TSMC’로 이어지는 삼각편대의 기반에는 오랜 기간 쌓은 ‘따뜻한 신뢰’가 있음을 방증하는 에피소드다. AI 시대에 접어들며 주요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협력’의 중요성을 꾸준히 강조하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나 홀로 성공하는 건 불가능하다”라는 건 이미 반도체 업계의 정설이 됐다. 엔비디아, AMD, 구글, TSMC, 인텔 등 주요 기업들이 주최하는 포럼에는 다양한 파트너사들이 대거 참석, 산업계의 콘서트를 방불케할 정도로 화려한 라인업을 자랑한다. 혼자 전부 다 하는 것이 아니라, 생태계를 구축하고 각 분야의 리딩 기업들과 함께 협력하는 것이 AI 시대에서 성공할 수 있는 키(key)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대만의 TSMC다. TSMC는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라는 철학을 가지고 고객 우선주의 경영을 하고 있다. 상대가 원하는 것을 빠르게 파악하고 적시 공급하는 것이 수주형 사업인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사업) 특성이기 때문에, 고객사와 협력하며 고객 우선 마인드를 갖추는 것이 조직 전반에 깊게 내제돼 있다. 이것이 TSMC와 다른 파운드리 회사의 차이점을 만들었다.
최근 삼성전자도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파운드리 사업에서의 ‘턴키(일괄수주)’ 전략을 일부 수정하며, 필요할 경우 경쟁사인 TSMC와도 협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비친 것이다. 턴키 방식은 종합반도체기업(IDM)으로서 가지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 생산, 첨단 패키징, 테스트 공정간 시너지를 앞세운 삼성전자의 차별화 전략이었다. 그러나 AI 시대의 협력의 중요성이 커지며 이 같은 전력은 일보 후퇴했다는 평가다.
업계 안팎에서는 삼성전자가 전반적으로 협력 마인드를 더욱 키워야 한다는 지적이 오래 전부터 제기돼 왔다. 기존 D램, 낸드 등 메모리 사업 특성 상 유리한 위치에서 판매하는데 익숙해져 있다는 평가다. 파운드리 시장에서 TSMC와의 시장 점유율 격차를 좁히지 못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분석이다.
삼성전자에서 오랜 기간 근무했던 전 임원은 “삼성은 혼자서 잘 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어 고객사나 협력사를 대하는 태도가 여전히 경직돼있다”며 “생태계를 구축하고 남들과 손잡는데 미흡했던 점이 AI 시대에 경쟁력을 떨어트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조만간 나올 연말 인사와 조직 개편에서 삼성전자의 체질 개선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이 같은 맥락에서 나온다. 오픈 마인드로 협력하는 분위기를 내부에 전파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객사와 협력사에 인간적인 따뜻함을 쌓으려는 노력도 중요하다. AI 시대에선 혼자서 모든 걸 다 할 수 없다. 메모리 1등 타이틀 고수에 사활을 거는 것 못지 않게 시대의 변화에 맞는 마인드셋을 갖추는 것이 중요해진 이유다. 삼성전자가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던 저력을 이용해 ‘협력’이라는 성공의 키도 거머쥘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