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4일 개막ㆍ국립창극단 ‘이날치전’
김수인 이광복 주연ㆍ랩 배틀 같은 소리 열전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서편제의 거장’이었고, ‘줄타기의 명인’이었다. 바다 위를 날아오르는 날치처럼 ‘날쌔게 줄을 잘 탄다’ 해서 ‘이날치’라고 불렸다. 조선 후기 8 명창 중 한 명인 이경숙(1920~1892)을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이 바로 이날치였다. 밴드 이날치의 이름도 그의 예명에서 출발했다.
“이날치가 새소리를 내면 실제로 새가 날아들었다는 일화가 있어요. 소리의 이면을 잘 표현했기에 그런 속설이 생기지 않았을까 싶어요. 감히 따라갈 수는 없겠지만 판소리가 가진 이면을 깊이 생각하고 그려낼 수 있는 소리꾼으로 표현해보고 싶습니다.” (이광복)
조선 최고의 명창 이날치의 이야기가 창극으로 다시 태어났다. 국립창극단의 신작 창극 ‘이날치전’(11월 14~21일, 달오름 극장)을 통해서다.
창극은 이날치의 성장 서사를 연대기에 따라 훑어간다. 소리꾼이기 이전에 하늘을 나는 줄광대였고 북을 치는 고수에서 천하 제일의 명창이 된 그의 삶이 전통연희와 함께 어우러지는 무대다.
연출을 맡은 창작 소리극 단체 타루의 정종임 대표는 “창극의 핵심인 판소리, 판소리 중에서도 전통 판소리, 그리고 새롭게 작창을 한 새로운 판소리에 명인의 줄타기와 풍물, 탈춤 등 우리 전통예술을 다채롭게 엮은 놀이판이 될 무대”라고 말했다.
이날치는 양반집 머슴으로 태어나 ‘신분의 벽’과 맞서며 오로지 예술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했다. 그의 이야기는 윤석미 작가의 손을 통해 다시 태어났다. 윤 작가는 “사료가 많지 않아 고민하다 새로운 이날치를 만들어보고자 했다”며 “19세기 조선 후반을 살았던 예인 한 사람을 21세기 젊은이들에게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윤 작가가 주목한 것은 19세기 동서양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신분제의 붕괴다. ‘신분의 굴레’에 갇혀 겹겹이 쌓은 한(恨)을 소리로 토해내며 백성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명창이 되겠다고 결심하는 이날치를 그린다. 그는 “서양의 신분제, 조선의 양반 계급이 무너지던 시기에 각각 오페라와 판소리라는 장르가 등장한다”며 “이날치는 신분사회를 뚫고 나가기 위해 예인의 길로 나간다는 설정을 넣었다. 죽기살기로 줄을 타고 소리를 하는 모습을 21세기 젊은이들도 가져가길 바라는 바람이 있었다”고 했다.
이날치의 삶을 살아낼 두 주인공은 김수인 이광복이다. ‘팬텀싱어4’에서 크레즐 팀으로 3위에 오른 김수인은 “판소리를 하는 사람에게 이날치 선생님은 전설 같은 분이다. 그런 분을 감히 제가 표현한다는 것이 영광이다”라며 “이날치 명창의 시대를 그대로 옮기면 사극이겠지만 지금을 사는 이날치를 연기하면 현실과 소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광복은 “이날치 명창을 감히 따라갈 수는 없겠지만 고집스럽고 힘 있는 소리로 우리 전통소리의 정수를 표현하겠다”고 했다.
국립창극단의 ‘이날치전’엔 판소리의 주요 눈대목이 두루 담겼다. 창극단 단원 개개인의 역량을 모두 볼 수 있는 데다 보다 전통 소리의 정수를 만날 수 있다.
정종임 연출가는 “‘이날치전’에는 (창극단 단원들이) 20년 넘게 공부한 전통 판소리가 모두 녹아 있다”며 “다만 소리꾼들마다 공부한 ‘제’와 ‘스타일’이 다르다. 본인의 스타일이 아닌 다른 소리를 한다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다. 이 작품에선 조금 무리해서 다른 소리를 하도록 요구했고, 그 부분을 단원들이 굉장히 고생하며 매일 연마했다”고 말했다.
압권이 될 장면은 네 명의 명창이 소리 실력을 겨루는 통인청대사습놀이다. 서바이벌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 ‘쇼미더머니’를 방불케할 순간이다. 정 연출가는 “전통 판소리엔 없었던 형식이다”라며 “한때는 스승이었지만 라이벌이 된 박만순 명창과 이날치가 같은 대목을 불러 겨루는 장면에서 서로 소리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랩 배틀 같은 모습이 그려진다”며 기대를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