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인도권역본부 델리 신사옥 르포
척박한 건설 환경 속 완공까지 ‘60개월 무재해’
내진설계부터 공기정화까지 첨단 기술 총집약
신차·기술개발로 ‘걸음마 단계’ 인도 전기차 시장 공략
김언수 인도권역본부장 “EV 시장 선점 및 수출 확대 집중”
[헤럴드경제(구르가온)=서재근 기자] 인도 수도 델리로 가는 관문인 인디라 간디 국제공항에서 차를 타고 20여 분을 달리자 이내 큼지막한 ‘Hyundai(현대)’ 영문 로고가 달린 직사각형 모양의 신축 건물이 위용을 드러냈다.
아직 교통 시스템과 도로·건물 곳곳에서 과거의 흔적이 오롯이 남아 있는 인도의 풍경을 바라보다 마주한 현대자동차 하리아나주 구르가온시 인도권역본부 델리 신사옥(이하 델리 신사옥)은 첫인상부터 더 세련되고, 미래지향적이며 웅장하게 느껴졌다.
지난 2021년 첫 삽을 뜬 이후 올해 초 완공된 델리 신사옥은 4만9587㎡(1만5000평)에 이르는 부지에 800여명(현지 법인 임직원 600여명, 그룹사 임직원 200여명)이 입주해 있다.
입구에 들어서자 건물 주차장에는 현대차가 글로벌 시장에서 판매 중인 다양한 모델들이 주차공간을 빼곡히 채웠다. 특히 제일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닮은 듯 다른’ 현지 전용 모델들은 이곳 델리 신사옥의 역할이 무엇이고, 얼마만큼 중요한지 느낄 수 있게 만든다.
지난 1998년 경차 아토스를 개조한 쌍트로 양산을 시작으로 인도 시장에 본격적으로 첫발을 내디딘 현대차는 커지는 인도 자동차 시장과 다변화된 인도 고객 수요에 맞춰 2015년 7월 첫 현지 전략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 크레타를 출시하며 흥행 잭팟을 터뜨렸다.
세련된 디자인에 성능과 신기술을 갖춘 도심형 SUV 크레타는 당시 네모난 디자인의 소위 ‘지프차’만 일부 존재하던 인도 SUV 시장에서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며 오늘날 현대차를 인도 완성차 시장의 ‘SUV 명가(名家)’로 올려놓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모델로 평가받는다.
현대차는 크레타 성공에 힘입어 2021년 3열을 갖춘 알카자르, 2023년 엔트리 모델 엑스터에 이어 베뉴, 투싼, 순수 전기차 아이오닉 5에 이르기까지 모두 6종의 SUV 라인업을 구축하며 입지를 다졌다.
적극적으로 신차를 출시한 현대차는 지난해 인도 시장에서 연간 최대인 60만2111대(점유율 14.6%)를 판매, 전체 브랜드 가운데 2위를 차지했다. 판매 호조의 원동력으로 꼽히는 현지 전용 모델과 글로벌 모델을 아우르는 ‘투 트랙 전략’을 구상하는 전략기지가 바로 델리 신사옥이다.
입구에 들어서자 마치 유럽 대도시에 있는 광장을 연상케 하는 광활한 공간이 펼쳐진다. 푸른잎으로 메워진 한쪽 벽(그린윌)면에 현대차 대표 친환경 모델인 수소전기차 넥쏘 1대가 놓여있있을 뿐, 어림잡아 30m 정도로 보이는 안내 데스크가 있는 맞은편 벽면 사이 공간은 아무것도 체워져 있지 않다.
언제든지 필요에 따라 현대차의 기술력을 뽐낼 수 있는 신차부터, 예술적 가치를 지닌 조형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요소를 적재적소에 배치할 수 있도록 공간을 구성했다는 게 이곳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1층 광장을 지나면 쾌적한 전시공간이 방문객들을 맞는다. ‘전시장’이라는 표현보다 ‘갤러리’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법한 이 공간에는 엑스터와 크레타, 크레타의 고성능 버전 크레타 N 라인 등 현지 전용 SUV 모델과 베뉴, 쏘나타 등 국내에서도 판매 중인 다양한 차종이 전시돼 있다.
델리 신사옥의 진가는 2층 공간부터 시작된다. 전시공관과 임직원들의 휴게 공간, 그룹사 오피스, 피트니스 센터와 식당에 이르기까지 각종 사무·편의 시설이 집약돼 있다. 사무 공간은 전형적인 ‘사무실’과 거리가 멀다. 도서관과 같은 오픈형 구조부터 벌집 형태로 칸막이 배치를 통해 공간효율성을 극대화한 구조 등 다양한 형태로 이뤄져 있는 오피스 공간은 이곳이 마치 구글,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글로벌 IT 기업 내부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수백명의 직원들이 한꺼번에 식사를 할 수 있는 초대형 식당은 최근 큰 화제를 모았던 넷플릭스 요리 경연프로그램 ‘흑백요리사’에 등장한 거대한 세트장을 방불케 할 만큼 크고 깔끔하다.
최고급 시설로 꾸며진 피트니스 공간 한쪽에는 임직원들을 위한 의료시설이 갖춰져 있어 눈길을 끈다. 이곳에는 전문 의료진이 상주해 있는데, 병원이 많지 않은 데다 교통이 혼잡한 현지 상황을 고려해 만든 공간이다.
쾌적한 근무환경을 조성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 독특한 건물 구조도 눈여겨볼 만하다. 델리 신사옥은 안전성을 위해 H빔 철골을 활용해 강도 7 이상을 견딜 수 있는 내진구조를 갖췄다. 아울러 3중 헤파필터가 적용된 그린월과 중앙 집중식 정수 필터 시스템을 통해 최고 수준의 내부 공기질과 수질을 확보했다.
이 외에도 현지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개방형 아뜨리움 구조로 지어진 델리 신사옥은 오피스 공간도 대칭형을 이룬다. 한 계단씩 층수가 올라갈 때마다 건물 구조가 시원하게 보이는 구도는 마치 우리나라에 있는 초대형 복합쇼핑몰을 떠올리게 만든다.
현대차 인도권역본부가 신사옥에 이처럼 공을 들인 것은 인도 완성차 시장의 잠재력과 무관하지 않다. 인도 자동차 시장 규모는 지난해 기준 500만대로 중국과 미국에 이어 3위다. 이 가운데 승용차 시장은 410만대 규모로, 오는 2030년에는 500만대를 넘어설 것으로 점쳐진다.
델리 신사옥에서 만난 인도권역본부와 아중동권역본부를 총괄하는 김언수 현대차 인도아중동대권역장(부사장)은 “인도는 그 어느 곳보다 성장 가능성이 큰 시장이지만, 잠재력만큼이나 성공적으로 안착하기 어려운 시장이기도 하다”라며 “최근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가 철수한 것도 인도 시장의 특수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김 부사장은 인도에서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최우선 실천과제로 ▷마켓 쉐어에만 집중하지 않는 질적 성장 ▷인도 역사와 문화에 대한 존중을 토대로 한 사회공헌활동 및 대고객 서비스 ▷한발 앞선 전동화 전환과 수출 확대를 꼽았다.
특히 전동화 전환과 수출 확대는 인도권역본부가 추진 중인 핵심 중장기 전략이다. 김 부사장은 “인도 전기차는 아직 점유율 2% 수준의 초기 단계다. 많은 글로벌 전기차 제조사가 인도시장에 도전장을 내미는 것 역시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양한 신차 출시는 물론 전기차 및 전기차 배터리 분야에서의 탁월한 기술을 인도 시장에 빠르게 적용하고, 충전 인프라 구축과 부품 현지화를 통해 가격 경쟁력을 갖춘다면 충분히 시장을 주도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인도 내수 공략을 넘어 수출을 확대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며 “현재 인도에서 가장 비싼 가격대의 차들이 한국에서 가장 낮은 가격대의 차들보다 가격이 싸다. 이는 인도에서 생산된 차들은 중동 및 아프리카 등 신흥 시장에서 경쟁력이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어 “다양한 현지 맞춤형 신차 개발, 생산능력과 더불어 연구·개발(R&D) 역량을 끌어올리는 데 더욱 집중해 인도를 소형차 중심의 수출기지로 육성하고자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