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발 수익성 악화 직격탄·캐즘 여파로 전동화 전략 대폭 수정
폭스바겐 본국 공장 87년 만에 첫 폐쇄 고려
볼보·포드·GM 잇달아 전동화 전환 계획 연기
현대차, 하이브리드 라인업 강화 등 업계 대책 마련 분주
[헤럴드경제=김지윤 기자] ‘전기차 전환’ 전략을 야심차게 추진해 오던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중국발(發) 수익성 악화’와 ‘전기차 캐즘’(대중화 전 수요 정체) 여파 등으로 잇따라 전략을 수정하고 있다.
8일 업계와 외신에 따르면 유럽 최대이자, 세계 2위 자동차 기업인 폭스바겐그룹은 87년 역사상 처음으로 독일 공장 폐쇄를 검토하겠다고 최근 발표했다. 1994년부터 유지해 온 고용안정 협약도 해지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본격적인 인력감축을 예고했다. 자국 공장 폐지가 확정될 경우 약 2만명이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올리버 블루메 폭스바겐그룹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2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자동차 산업이 매우 어렵고 심각한 상황에 있다”며 “폭스바겐은 포괄적인 구조조정을 거쳐야 하고, 공장 폐쇄도 이제는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폭스바겐그룹이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중국에서 현지 업체들에 밀려 판매량 감소세를 겪고 있고, 본토인 유럽에서는 중국 기업들에 전기차 시장의 파이를 빼앗기면서 수익성이 악화한 것이 이번 결정의 원인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전기차 캐즘 시기까지 겹치면서 전동화 전환을 위한 사용한 막대한 투자 비용이 손실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올해 상반기 폭스바겐의 중국 내 판매량은 134만대로, 3년 전과 비교해 25% 이상 줄었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중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자동차 브랜드였던 폭스바겐은 지난해 1위 타이틀을 중국 전기차 업체인 BYD에 내줬다.
독일 정부는 지난해 연말 폐지한 전기차 보조금 일부를 되살리기로 하는 등 폭스바겐의 공장폐쇄와 인력 구조조정에 대한 대책을 내놨지만, 이번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다.
폭스바겐 뿐만 아니라 다른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 역시 중국에서 존재감이 줄어들고 있다. 중국승용차시장정보연석회(CPCA) 자료에 따르면 지난 7월 중국 자동차 시장에서 외국 완성차 브랜드들의 합산 점유율은 33%로, 2년 전의 53%와 비교해 20%p 급감했다.
이 같은 상황이 이어지자 일본 혼다는 광저우 공장을 10월에 폐쇄하고, 우한 공장도 11월부터 생산 중단에 들어간다는 계획을 내놨다. 연간 149만대인 현지 차량 생산능력을 100만대 수준까지 줄일 예정이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는 중국에서 상하이자동차(SAIC)와 합작사를 운영 중인데, 올해 2개 분기 연속으로 적자를 기록했다. 인력 감축을 비롯해 사업 전반에 대한 구조조정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메리 바라 제너럴모터스(GM)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중국에서 돈을 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며 중국 사업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했다.
세계 완성차 업체들은 중국 시장뿐만 아니라 세계 전기차 시장 공략에 대한 계획 또한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있다. GM은 당초 2025년까지 전 세계에서 100만대의 전기차 생산을 목표로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지만, 전기차 판매가 부진하자 이에 대한 투자와 소프트웨어 개발 등을 줄줄이 연기하고 있다.
중국 전기차 업체들이 저렴한 가격을 앞세워 자국 시장을 넘어 유럽 등 해외로의 공습을 강화하고 있어서다. 중국의 올 상반기 자동차 수출(외국 업체의 중국 내 생산분 포함)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5% 급증한 279만3000대를 기록했다. 지난해 491만대를 수출하며 일본(442만대)을 제치고 세계 1위 자동차 수출국 자리를 꿰찬 데 이어 2년 연속 1위가 예상되는 상황이다.
글로벌 금융기업 UBS는 2030년까지 중국 업체가 세계 전기차 시장의 3분의 1을 점유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볼보 역시 전기차 계획을 전면 수정 중이다. 볼보는 최근 2030년까지 모든 차종을 순수전기차로 바꾸겠다는 계획을 철회했다. 짐 로완 볼보 CEO는 “우리는 2030년까지 전기차 전환을 끝낼 준비가 돼 있지만 시장과 인프라, 고객의 인식이 이를 따르지 못한다면 몇 년을 미룰 수도 있다”고 말했다.
볼보는 전기차 전환 수정 계획에 따라 2030년까지 전 세계 판매량의 90~100%를 전기차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차량으로 전환할 방침이다. 나머지는 일반 하이브리드 차량을 생산한다.
앞서 포드 또한 대형 전기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 출시 계획을 폐기했다. 해당 차량은 포드가 ‘개인용 초고속 열차’를 표방하며 야심 차게 준비한 차세대 모델이었나 최종 무산됐다. 대신 성장하는 중국 전기차 업체들에 대응해 하이브리드에 자금력을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자동차 역시 하이브리드 라인업을 강화한다. 지난달 28일 열린 CEO 인베스터데이에서 현재 7개 차종에 적용되는 하이브리드차를 14종으로 늘리고, 프리미엄 브랜드인 제네시스의 전 차종에 하이브리드 모델을 넣기로 했다.
반면 여타 글로벌 브랜드들과 달리 메르세데스-벤츠는 중국 시장 내 전기차 판매에 집중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으면서 결과가 주목된다.
벤츠는 중국 협력 업체와 함께 중국 시장에 140억위안(약 2조6000억원)을 추가 투자해 포트폴리오 다각화에 나선다. 이르면 내년부터 전기차 신모델을 잇달아 투입한다.
새로운 모델에는 롱 휠베이스를 장착한 전기차 CLA, GLE SUV의 롱 휠베이스 버전, 밴 일렉트릭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한 고급 전기 밴 모델 등이 포함된다. 올라 칼레니우스 벤츠 최고경영자(CEO)는 “중국은 언제나 우리 글로벌 전략의 핵심 축이었으며, 전기차 혁신과 지능형 혁신을 추진하는데 최전선에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