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기 13년만에 솔로 2집 ‘내 머리속의 가시’를 들고 세상밖으로

“아빠는 왜 요즘 노래 안만들어” 어린 딸 핀잔에 음악복귀 결심

지난9월부터 매일 한곡씩 썼죠 그렇게 3개월간 100여곡 쌓여…

타이틀 곡인 ‘광석이에게’는 내 감정이 가장 짙게 깔린 노래

만약 한국 대중음악사에 그룹 동물원이 없었더라면 많은 이들의 ‘청춘의 배경음악’은 꽤나 빈곤했을 것이다.

‘거리에서’의 스산한 가사와 서글픈 선율은 실연 뒤 아픈 가슴을 어루만지는 위로였다. ‘흐린 가을하늘에 편지를 써’의 고민 어린 가사와 벅찬 선율은 원인 모를 청춘의 비감을 공유하는 친구였다. ‘널 사랑하겠어’의 솔직담백한 가사와 서정적인 선율은 수줍은 고백을 위한 응원가였다.

동물원 출신 싱어송라이터 김창기는 이들 아릿한 ‘청춘의 배경음악’을 빚어낸 주인공이다. 지난 2000년 솔로 1집 ‘하강의 미학’을 마지막으로 본업인 의사로 충실하게 살아온 그가 13년 만에 2집 ‘내 머리속의 가시’를 발표했다. 서울 도곡동의 한 병원에서 진료를 마친 그와 캔맥주를 사이에 두고 앨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김창기는 오랜 시간 동안 음악과 멀리 떨어져 지낸 이유에 대해 “동물원을 탈퇴한 뒤 야심차게 이범용과 ‘창고’라는 듀오를 결성해 발표한 앨범과 솔로 앨범의 곡들이 대중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현실이 두려웠다”며 “내가 행복해야 듣는 이도 행복해진다는 생각에 음악을 손에서 놓았었다”고 고백했다.

김창기의 음악적 침묵을 깨운 것은 어린 딸의 핀잔이었다. 김창기는 “딸이 텔레비전에선 아빠가 만든 노래가 자주 나오는데, 왜 아빠는 요즘엔 노래를 만들지 않느냐고 물었다”며 “내 음악이 무용하지 않음을, 또 딸에게 아빠도 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딸은 노래가 다 비슷하게 들린다고 또 핀잔을 준다”고 멋쩍게 웃어보였다.

김창기(의사/가수/김창기정신과의원원장/연세대학교외래교수/성균관대학교외래교수)“밉고도 미안한 내 친구 광석이에게…”
김창기(의사/가수/김창기정신과의원원장/연세대학교외래교수/성균관대학교외래교수) 만약 한국 대중음악사에 그룹 동물원이 없었더라면 많은 이들의 ‘청춘의 배경음악’은 꽤나 빈곤했을 것이다.

김창기는 지난해 9월부터 마치 공부하듯 매일 한 곡씩 써내려갔다. 그는 악보와 가사를 개인 블로그에 올리며 서둘러 재활에 나섰다. 4마디에서 막히던 곡들이 어느 순간부터 8마디, 16마디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3개월간 100여곡이 쌓였다.

그는 동물원의 멤버로 함께했던 절친 고(故) 김광석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광석이에게’를 비롯해 바보 같은 사랑에 대해 자책하는 ‘눈사람’, 가족과 함께 있으면서도 느끼는 외로움을 노래하는 ‘난 아직도 외로워’, 기러기 아빠 생활의 고단함을 다룬 ‘난 살아있어’, 끊임없이 긍정과 부정을 반복하는 복잡한 마음을 그려낸 ‘내 머릿속의 게임’ 등 10곡을 추려내 앨범에 실었다. 마냥 착하기만 한 소년 같았던 김창기는 이 앨범에 없다. 때로는 격정적인 연주가, 때로는 좌절과 공허함을 토로하는 가사가 앨범의 주인공을 재확인하게 만든다. 심지어 김창기는 ‘지혜와 용기’ 같은 곡에선 “이런 우라질!”이라고 욕설까지 내뱉는다. 앨범 속지에 사진으로 실린 그의 찡그린 표정과 권태로움을 담은 눈빛 또한 낯설다.

김창기는 “수록곡들은 ‘내 머리속의 가시’라는 앨범 타이틀처럼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들을 노래한다”며 “이제 나도 50대 아저씨인데 더 이상 착하고 수줍은 소년인 척 연기하긴 어렵다. 예전의 나를 복제하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광석이에게’를 타이틀곡으로 선택하는 과정도 김창기에게 많은 고민을 안겼다. 자칫 추억팔이로 오해 받을 소지가 충분했기 때문이다. 김창기는 “이미 그런 오해를 많이 받고 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석이에게’를 타이틀곡으로 선택한 이유는 그 곡에 내 감정이 가장 짙게 실려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지금도 광석이를 생각하면 만감이 교차한다”며 “세간의 눈초리를 의식해 억지로 타이틀곡에서 빼는 것도 우습게 느껴졌다”고 덧붙였다.

김창기가 몸을 담았던 동물원은 데뷔 25주년을 맞아 활발히 공연 활동을 펼치고 있다. 동물원과 함께 공연할 계획을 가지고 있느냐는 질문에 김창기는 “지금도 멤버들과 자주 연락하고 술잔을 기울이는 친근한 사이지만, 각자 원하는 삶과 음악적 색깔이 다르다”며 “함께하진 못해도 동물원은 언제나 그리운 이름이다”고 답했다.

김창기는 오는 7월 20일부터 약 4~5일간의 일정으로 서울 동숭동 학전 소극장에서 콘서트를 벌일 계획이다. 그는 “학전은 내게 많은 추억을 남겨준 의미 있는 공연장”이라며 “무대에 오르는 일이 여전히 어색하고 어렵지만 열심히 할 것이다. 많은 응원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정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