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 김창완밴드 정규 3집 ‘용서’= 밴드 산울림의 1~3집은 국내외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실험적인 음악을 담은 앨범이었습니다. 특히 산울림이 지난 1978년에 발표한 2집의 수록곡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는 3분여 파격적인 전주와 사이키델릭 사운드로 실험적인 자세의 극치를 보여줬던 한국 록 음악사의 명곡이죠.
산울림의 음악적 중심이었던 김창완이 결성한 김창완밴드의 정규 3집 ‘용서’는 의미심장하게도 첫 트랙에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를 소환합니다. 동행하는 이는 국악기를 바탕으로 만들어 낸 실험적인 음악으로 세계 월드뮤직 신에서 각광을 받고 있는 밴드 잠비나이입니다. 세상에 나올 때부터 가장 실험적이었던 음악은 고요와 신명이 서로 교통하며 더욱 실험적인 음악으로 변모했습니다. 김창완은 이를 통해 자신의 과거를 받아들이면서도 현재와 미래를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보이고 있습니다. 김창완밴드가 지난 2012년에 산울림의 대표곡들을 리메이크해 발표한 앨범 ‘분홍굴착기’와 비교해 매우 달라진 태도이죠.
이번 앨범은 원테이크(한 번에 끊임없이 녹음하는 방식)로 녹음을 진행해 자연스러움을 강조한 것이 특징입니다. 영국 메트로폴리스 스튜디오의 하우스 엔지니어 출신 아드리안 홀(Adrian Hall)이 녹음에 참여해 사운드의 완성도를 높였죠.
이번 앨범에는 음악적 실험 외에도 한국 사회를 향한 비판적 시선이 눈길을 끕니다. 중학교 2학년 또래 사춘기 청소년들이 흔히 겪는 유아독존적인 심리를 빗댄 신조어 ‘중2병’을 통해 소통의 어려움과 화해의 자세를 노래한 ‘중2’,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학생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담담한 어쿠스틱 사운드로 담아낸 ‘노란리본’ 등의 곡이 그것이죠. 또한 단순하고도 질박한 코드 진행을 따라 이별의 후유증을 토로하는 ‘E메이져를 치면’은 담담해서 더욱 절박하게 느껴지고, 내레이션과 몽환적인 연주만으로 이뤄진 독특한 구성에선 굳어진 틀에 안주하지 않으려는 김창완밴드의 자세를 엿볼 수 있습니다.
김창완을 연기자로 자주 접해 뮤지션의 모습은 낯설다고요? 그렇다면 오는 12~14일 서울 대학로 DCF대명문화공장으로 오세요. 그곳에서 김창완밴드의 콘서트가 마련될 예정이다.
▶ 유병열 솔로 앨범 ‘아이 엠(I Am)’=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기타리스트를 바라보는 시선은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가수의 보조자 내지 반주자에 불과합니다. 가수들조차 앨범 단위로 신곡을 발표하기 어려워 싱글로 연명하는 현실 속에서, 재즈 외의 연주자들이 솔로 앨범을 발표하는 일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죠.
그런 의미에서 유병열의 솔로 앨범 ‘아이 엠’은 매우 소중한 작품입니다. 유병열은 지난 1994년 윤도현 1집에 세션 기타리스트로 참여한 것을 계기로 윤도현밴드(현 YB)의 리더로 합류하며 이름을 알렸습니다. 윤도현밴드의 히트곡 ‘가리지 좀 마’ ‘먼 훗날’ 등이 그의 손에서 나왔다고 알려드리면 “으흠~”하며 고개를 끄덕이시려나요? 윤도현밴드 탈퇴 후 그는 밴드 비갠후를 거쳐 밴드 바스켓노트의 리더로 활동하며 자신 만의 음악세계를 개척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오랜 세월 동안 프로 연주자로 활동하는 와중에도 꾸준히 솔로 앨범을 발표해 왔다는 점에서 보기 드문 록 기타리스트이죠.
마치 자신의 녹록치 않은 인생을 드러내는 듯한 블루지하면서도 격정적인 연주가 비장함을 느끼게 만들어주는 ‘아이 엠’을 비롯해 유병일이 직접 보컬을 맡아 절제된 연주를 들려주는 ‘낯선’, 보사노바 리듬의 상쾌한 느낌을 살린 ‘비트 하이(BeatHigh)’, 봄의 희망적인 분위기를 서정적인 멜로디로 표현한 ‘스프링 2015(Spring 2015)’, 업템포의 록에 펑키한 연주를 가미한 ‘로드 러너(RoadRunner)’, 블루지한 선율로 도시인의 삶을 묘사한 ‘라이트 오브 시티(Light of City)’ 등 다양한 장르의 요소들이 뒤섞인 다채로운 곡들이 지루할 틈 없이 이어집니다. 하지만 유병열은 그 음악적 뿌리가 록이라는 사실을 결코 잊지 않습니다. 앨범의 마지막 트랙에 담긴 다소 무거운 리듬의 그루브를 강조한 ‘헤비 바운스(HeavyBounce)’ 같은 곡은 그 명백한 증거이죠.
유병열은 다음 달 29일 오후 5시 서울 서교동 롤링홀에서 생애 첫 단독 콘서트를 벌입니다. 기타 인생 32년 만에 첫 솔로 단독 콘서트라는군요.
▶ 이영훈 정규 2집 ‘내가 부른 그림 2’= ‘한국의 데미안 라이스’라는 수식어가 조금 낯간지럽긴 하지만, 싱어송라이터 이영훈의 음악을 설명하기에는 가장 손쉬운 수식어 같군요. 삶을 관조하면서도 서정을 잃지 않는 가사와 차분하면서도 감성적인 음악은 데미안 라이스와 분명히 통하는 부분이니까요. 그러나 ‘쌀아저씨’와 분명히 다른 점은 이영훈은 한국인이고 한글로 가사를 쓴다는 사실이죠. “생각하다가 또 결국 오지 않을 당신을 기다리다가/나는 이내 허기진 배를 채우려/다 식어 버린 밥을 먹는 둥 마는 둥”(‘가만히 당신을’) 같은 가사는 이영훈이 한국에 뿌리를 박고 사는 뮤지션이 아니라면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서정과 표현이니까요.
이영훈은 지난 2006년부터 홍대 인디 신에서 활동해왔지만 행보는 조용한 편이었습니다. 그가 첫 정규 앨범 ‘내가 부른 그림’을 발매한 게 고작 3년 전인 2012년이니까요. 어쿠스틱 기타를 중심에 두고 기타 연주를 해치지 않을 만큼만 다른 악기를 더했던 1집은 소박하면서도 쓸쓸한 앨범이었죠. 이번 앨범은 1집의 정서를 유지하면서도 다소 단조롭게 느껴졌던 음악에 다채로움을 가미한 것이 특징입니다. 이 같은 변화의 핵심은 앨범에 공동 프로듀서와 편곡자로 참여한 싱어송라이터 선우정아입니다. 1집의 수록곡을 재편곡해 싱글로 선공개된 ‘안녕 삐 #2’의 풍성한 사운드는 이 같은 변화를 잘 보여주는 곡이죠.
시를 방불케 하는 사색적인 가사는 여전하고, 새삼 노래에서 가사가 얼마나 중요한 부분인가를 일깨웁니다. ‘기다리는 마음 하나’의 “까닭 없는 외로운 밤이 문득 나를 찾으면/가지런히 놓여 있던 기억들이 위태로운 듯 흔들리며/조금씩 사라지는 얼굴 하나/대책 없이 기다리는 마음 하나”와 ‘무얼 기다리나’의 “당신은 무얼 기다리나/아무도 찾지 않는 밤/할 말이 더 남아 있나/더 이상 닿지 않는 마음”과 같은 가사는 사랑의 헛헛함을 삭이는 조용한 절창입니다.
이영훈은 다음 달 13~15일 서울 서교동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 1층에서 ‘일종의 고백’이란 타이틀로 앨범 발매 기념 콘서트를 벌일 예정입니다. 근처에 분위기 좋은 찻집도 술집도 많은 아기자기한 동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