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을 움직이는 글로벌 거장들

디자인 세계 중심은 산업·패션·건축 칼 라거펠트·디터람스·피터 줌터 등 명성

팀 브라운·지안프랑코 자카이·올리버 킹 제품 아닌 경영·이미지 디자인으로 ‘혁신’

‘I♥NY’밀턴 글레이저 세상에 희망을 이브 베하, 지속가능한 ‘착한디자인’ 명성

한국 디자이너는 단 3명…활약 미미

디자인은 역동성이 살아 숨쉬는 ‘변화의 영토’다. 백가쟁명(百家爭鳴). 수많은 디자이너들이 자신만의 감각과 철학을 뽐내며 매일같이 등장하고 누군가는 대중의 공감을 받아 ‘거장’으로 우뚝 선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번뜩이는 재치와 영감으로 무장한 신진디자이너들이 미래의 디자인 세계를 평정하기 위해 칼날을 간다. 물리적 한계 없이 ‘상상과 사고’로 모든 것이 가능한 이곳, 디자인의 세계는 이른바 ‘춘추전국(春秋戰國)’ 시대다.

헤럴드경제는 국내 최고의 디자인 전문가 10명에게 ‘현재 디자인 세계를 움직이는 중원의 거장과 은둔 고수는 누구인가’를 물었다. 전문가들은 디자인 분야에 관계없이 이미 일가를 이뤘다고 생각되는 디자이너와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신진 디자이너들을 자유롭게 추천했다. 그 결과 68명(중복 제외)의 디자이너들이 ‘현재 디자인 세계를 움직이는 디자인 거장’으로 거론됐다. 디자인세계의 중원, 또는 중원으로 나가려고 변방에서 꿈틀대는 최고수들은 누가 있을까.

디자인의 신세계를 ‘디자인’ 하는 68명의 파워

▶ ‘산업ㆍ건축ㆍ패션’ 주류디자인의 ‘위ㆍ촉ㆍ오’=아무리 시대가 변했다지만 ‘전통의 강자’는 변하지 않았다. ‘상품 소비’가 생활의 중심이 된 현대사회에서 디자인 세계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것은 산업디자인과 패션, 건축 디자인이었다.

전문가들에게 추천받은 디자이너들을 집계해 본 결과, 현재 디자인계의 거장으로 지목된 산업ㆍ가구디자이너는 총 28명. 전체의 절반가량에 이르는 수치다. 애플의 디자이너인 조나단 아이브, 세계 3대 산업 디자이너로 손꼽히는 카림 라시드, 스페인의 하이메 아욘, 프랑스의 로낭 & 에르완 브흘렉, 영국의 재스퍼 모리슨, 독일의 콘스탄틴 그리치치 등이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았다.

애플의 산업디자인팀 부사장인 조나단 아이브는 영국 출생으로 1992년 애플에 입사했다. 입사 당시에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1998년 출시된 ‘반투명한 청록 빛’의 iMac, 아이팟 등 다수의 제품을 디자인하며 ‘심플한 디자인’의 거장으로 우뚝 섰다.

‘세계 3대 산업디자이너’로 손꼽히는 카림 라시드는 이집트 출생이다. 그는 300여개가 넘는 디자인상을 수상했고 전 세계 40여개국을 넘나들며 가구, 제품, 인테리어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 중이다.

스페인의 하이메 아욘은 미(美) 타임지에 ‘가장 영향력 있는 크리에이터 100인’에 이름을 올린 이른바 ‘핫 피플’이다. “놀이는 삶을 유쾌하게 하고, 자유롭게 하고, 꿈을 꾸게 하는 중요한 요소” 라고 외치는 그는 독특하고 개성 넘치는 가구디자인으로 2008년 벨기에 인테리어 비엔날레 사상 최연소 초청작가로 초대되기도 했다.

디터람스는 ‘시대를 뛰어넘는 디자이너’라는 평가를 받았다. 40여년간 독일의 명품 가전업체 브라운사의 일을 했던 그는 라디오ㆍTVㆍ면도기 등 브라운사의 제품 500여개를 디자인했다.

패션 디자인분야에서는 칼 라거펠트, 피비 필로, 마리 카트란주 등 12명의 디자이너가 눈에 띈다. 펜디, 샤넬의 디자이너로 유명한 칼 라거펠트는 유머와 위트를 패션에 접목하면서도 우아함을 잃지 않는 디자인으로 샤넬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신예 마리 카트란주는 ‘과감한 그래픽 프린트’로 패션계의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건축 분야 거장으론 13명이 추천됐다. 이토 도요, 장 누벨, 피터 줌터 등이 그들이다. 10월 열리는 헤럴드디자인포럼 2013에 연사로 오는 이토 도요는 ‘사회적인 가치를 담은 건축’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피터 줌터와 장 누벨은 도시의 아름다움으로부터 영감을 찾고 지역의 재료와 기술을 기반으로 디테일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디자인을 함으로써 건축의 최고봉에 이름을 올렸다.

<이젠 DSR이다②> 디자인의 신세계를 ‘디자인’ 하는 68명의 파워

▶정중동의 힘, ‘디자인 혁신가’=이와는 반대로 화려하진 않지만 조용히 디자인 세계의 ‘혁신’을 만드는 거장들도 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나 커뮤니케이션 디자이너, 브랜드 전문가들이다. 직접 제품을 디자인 하지는 않지만 기업의 경영이나 서비스, 이미지를 담당하면서 ‘조용하지만 막강한’ 디자인 파워를 보이는 이들이다.

미국 디자인경영협회 회장인 지안프랑코 자카이는 1983년 ‘디자인 컨티늄’ 이라는 디자인 컨설팅 회사를 설립해 제품, 엔지니어링, 디자인 전략, CI 디자인 등 분야를 넘나들며 여러 기업에 변화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헤럴드디자인포럼2013의 연사이자 영국 IDEO 대표인 팀 브라운은 ‘다양한 분야의 인재가 모여 만드는 디자인 방법론’을 실천하는 세계 최고 디자인 전문회사의 대표다. 그는 매출, 소비를 위한 디자인을 뛰어넘어 인간의 삶과 사회를 이롭게 하는 디자인을 실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서비스디자인 회사 Engine Group 설립자 올리버 킹도 공공 및 민간서비스 혁신을 위해 서비스디자인 방법론을 적극 활용하는 이로 명성이 자자하다. 그는 기존 경영컨설팅에서 강조하던 효과나 효율을 넘어 소비자의 숨겨진 욕구를 해결해주는 데 초점을 맞춰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인류를 위한 건축(Architecture for Humanity) 대표인 카메론 싱클레어는 분쟁지역 거주자들을 위한 저예산 건축 및 건축 아이디어를 위한 온라인 오픈 플랫폼을 운영한다.

▶각자의 분야에서 ‘사회적 책임’을 실현한 디자인 거장들=디자이너들이 단순히 상업적인 성공을 이뤘다고 해서 ‘거장’으로 손꼽히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분야에 ‘사회적 가치와 공공성’을 접목시켜 진정 인간을 위한 디자인을 실천하는 이들의 위상도 대단하다.

그래픽 디자이너 밀턴 글레이저는 문자나 그림을 통해서도 사람과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아이 러브 뉴욕(I♥NY)’이 그의 작품. 이 작품은 제1차 석유파동 직후 전 세계가 극심한 경제 불황을 겪고 있던 1975년에 뉴욕주 상무국이 시민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기획한 광고 캠페인에서 탄생했다.

제품을 만드는 산업디자이너이면서도 사회적 책임을 실현한 이도 있다. 스위스의 이브 베하다. 혁신적이면서 인도주의적 디자인으로 세계적 명성을 떨치고 있는 디자이너인 그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착한 디자인’을 뽑는 인덱스 어워드를 두 번이나 수상했다. 자신의 디자인으로 세상이 끊임없이 바뀔 수 있다고 믿는 낙관주의자인 이브 베하는 자신의 목표를 “지속 가능성, 사회적 공익 같은 21세기의 큰 주제를 위한 용병이 되는 것”이라 말한 바 있다.

▶미개척 영토 ‘DSR’로 미래를 점령하라=하지만 이처럼 변화무쌍한 세계 디자인 영토에서 우리 디자이너들의 활약은 미미했다. 이번에 디자인 거장으로 추천된 한국인 디자이너는 단 3명. 이웃나라 일본의 10명에 비해 한참 뒤떨어진다.

디자인 거장 또는 주목할 만한 고수로 추천된 한국인 디자이너는 이돈태, 오준식, 위진복이다. 영국 텐저린사의 공동대표인 이돈태는 ‘미래를 보는 통찰력을 담은 디자인’으로 호평을 받았고, 오준식 역시 ‘사회적 가치를 담은 디자인 혁신’이라는 이유로 주목 대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서울시 공공건축가 위진복은 서울 영등포의 쪽방촌 주민들을 위한 임시 거주 시설로 마련된 이른바 ‘컨테이너 쪽방촌’을 설계하며 잠재력을 인정받았다.

김영준 SADI 학장은 이와 관련해 “많은 디자이너들이 디자인의 사회적 책임을 외치고 있지만 아직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며 “우리 신진 디자이너들이 본인의 작업에 그런 공공적인 가치를 접목한다면 앞으로 더 큰 발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이슬기 기자/yesyep@heraldcorp.com

그래픽=이은경/pony713@heraldcorp.com

■DSR란=헤럴드경제가 매주 게재하는 디자인면의 주제는 ‘이젠 DSR(디자인의 사회적 책임ㆍDesign’s Social Responsibility)이다’입니다. 단순한 제품과 상품 디자인을 넘어 사회적 책임을 담은 디자인, 성과와 혁신을 넘어 공존의 가치를 담은 디자인, 그것이 바로 DSR입니다. 헤럴드경제가 연중 최대 행사로 10월 진행하는 ‘헤럴드디자인위크 2013(Herald Design Week 2013)’ 전까지 게재되는 이 지면에서 독자 여러분은 디자인의 미래 창(窓)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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