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선진국 연금제도 살펴보니…

獨 ‘리스터연금’ 가입자에 정액보조금 지원 공적연금 비중 80%서 50%로 감소 효과

스위스 국민의 85% 개인연금에 의존 日 신퇴직연금제 도입…보험규제 완화도

재정고갈 문제를 해소하면서 납부자의 부담을 늘리지 않는 방법은 과연 없는 것일까.

우수한 복지제도를 자랑하는 유럽의 경우 우리나라보다 앞서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공적연금의 재정부담이 크게 증가했다. 이에 일부 유럽 국가는 2000년대 초반부터 공적연금 개혁을 추진했고, 최근에는 유럽 재정위기로 공적연금 개혁이 유럽 전체로 확산되는 추세다. 하지만 같은 유럽임에도 남유럽은 공적연금 단일구조 개선이 더디면서 재정위기라는 결과를 맞고 있다.

세금은 최소화하면서 노인 빈곤 사각지대를 줄이는 것은 각국의 공통 염원이다. 주요 선진국의 국민연금이 어떤식의 개혁을 추진하고 있으며 우리가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한 내용은 없는지 살펴본다.

▶사적연금 강화=주요 선진국의 공적연금 개혁의 핵심은 사적연금의 노후소득보장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다.

독일의 경우 2001년 정부가 가입자에게 정액의 보조금을 지원하거나 사후정산식 소득공제 혜택을 주는 방식으로 연금보험료의 일부를 지원하는 ‘리스터연금’을 도입하면서 사적연금을 강화했다. 리스터연금 덕에 전체 연금시장에서 약 80%였던 공적연금 비중이 50%대로 하락한 것으로 분석된다.

독일의 연금제도는 연금 수급자의 높은 만족도로 유명하다. 유럽 국가 가운데서도 비교적 성공한 경우로 꼽히지만 2029년까지 연금 수급 개시연령을 현행 65세에서 67세로 올리려는 개혁안을 추진 중이다.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연금 지급으로 인한 재정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영국도 1980년대부터 점진적으로 공적연금의 기능을 약화시켜왔다. 공적연금은 저소득층에 집중토록 하고 나머지 계층의 상대적 불리함을 사적연금을 통해 보장받게 하고 있다. 영국은 2030년까지 공적연금 기능을 기본적 노후소득수단으로 축소할 계획이다. 또 각 사업장이 퇴직연금과 퇴직금 중 하나의 제도만 선택하면 되는 우리나라와 달리 2011년부터 사적연금 강화를 위해 기업연금제도(NEST)를 통해 준강제적인 사적연금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일본은 2000년 이후 신퇴직연금제도 도입과 다양한 보험규제 완화를 통해 사적연금을 활성화했으며, 미국은 1890년대 퇴직연금제도 도입 이후 공적연금 한계를 사적연금과 사적시장의 기능 활성화로 극복하고 있다.

스위스는 가장 이상적인 연금제도를 구축한 국가로 꼽히지만 공적연금 비중은 낮다. 전 국민의 85%가 개인연금에 가입하고 있다. 우리나라(27.3%)의 3배다.

덴마크는 적립률이 높은 사적연금제도를 운영하는데다 노인을 연금에 의무가입시켜 안정적 삶을 보장하고 있다. 연금 소득대체율이 80% 수준이므로 42%에 불과한 우리나라보다 훨씬 높다.

▶투자 수익 따른 연금 수급=스웨덴처럼 펀드투자 수익에 따라 급여를 결정하는 방식으로 공적연금을 운용하는 경우도 있다.

복지국가의 전형으로 꼽히는 스웨덴은 세계 최초로 모든 국민에게 강제로 적용되는 공적연금제도를 도입했고, 전 국민을 대상으로 조세로 운영되는 기초연금을 운영했다. 하지만 1990년대 초반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10년에 걸친 논쟁을 거쳐 1998년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냈다.

전 노인을 대상으로 일정한 금액을 동일하게 지급하는 기초연금을 없애고, 소득별 선택과 집중을 통해 안정화를 꾀하는 명목확정기여(NDC) 방식으로 전환했다.

소득의 18.5%에 해당하는 보험료 중 16%는 비례연금으로 쌓이지만, 나머지 2.5%는 개인계좌에 적립된다. 이 적립금을 가지고 가입자는 자유롭게 연금펀드 운용사를 선정해 투자할 수 있으며, 그 수익에 따라 향후 전체 연금 급여 수준이 결정된다.

투자수익이 적자를 기록해 일정 부분 손해를 볼 수도 있지만 이 제도는 공적연금의 재정을 악화시키지 않으면서도 노후보장 기능을 강화시키는 방안으로 거론된다.

이는 공적연금의 재정적 지속성과 노후소득보장에서 국가의 역할을 적정보장에서 최저보장으로 전환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스웨덴의 개혁은 노르웨이의 공적연금제도 개혁에 영향을 미쳤고, 최근 일본의 공적연금제도 개혁안에서도 집중 논의되는 등 다른 국가의 연금 개혁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공적연금 단일 체계=북유럽 국가가 일찌감치 연금개혁을 서두른 데 반해 스페인과 그리스ㆍ이탈리아 등 남유럽 국가는 공적연금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위크엔드] 英, 준강제적 사적연금제 운용…공적연금 혜택은 저소득층에 집중

스페인은 은퇴 이후 은퇴 전 15년 평균급여의 85%를 연금으로 받는다. 재정위기 이전까지 은퇴자의 천국이라 불렸던 그리스의 경우 임금 대비 연금 수령액 비율이 95%로 OECD 30개국 가운데 가장 높다. 연금 삭감 등의 긴축을 조건으로 유로존과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기로 할 정도다. 이탈리아 역시 1992년부터 다섯 차례에 걸져 연금 개혁을 해왔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다른 유럽 국가는 공공지출 중 연금 지급액 비중이 7%에 불과하지만 이탈리아는 25%에 달한다.

그러나 이들 남유럽 국가는 65세 이상의 노인 빈곤율이 북유럽에 비해 이상 높아 근본적인 개혁이 쉽지 않다.

한희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