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리코타 치즈 샐러드, 버터 갈릭 브레드, 쉬림프 파스타, 알리오 올리오, 에그 베네딕트, 스모크 살몬……. 레스토랑 메뉴판 목록이 아니다. 밴드 소란의 정규 2집 ‘프린스(Prince)’의 타이틀곡 ‘리코타 치즈 샐러드’는 삼겹살과 설렁탕을 좋아하는 촌스러운 남자가 한 여자를 만나며 겪는 입맛의 변화 과정을 음식 이름의 나열을 통해 재기발랄하게 그려내고 있다. 지난해 ‘살 빼지 마요’란 곡으로 20~30대 여성 팬들을 사로잡으며 공연계의 큰 손으로 떠오른 소란은 2집 역시 달콤한 사랑 노래들로 채웠다. 편하게 들리는 음악이지만 어쿠스틱 악기 특유의 섬세한 질감부터 퓨전재즈를 방불케 하는 다채로운 리듬과 연주까지 뜯어보면 재미있는 구석이 적지 않다. 지난 5일 서교동의 한 스튜디오에서 소란의 멤버 고영배(보컬), 서면호(베이스), 편유일(드럼), 이태욱(기타)을 만났다.
고영배는 “컴퓨터 프로그래밍 사운드를 배제하고 현악과 브라스 등 어쿠스틱 악기를 전면에 내세운 연주와 편곡이 전작과 가장 큰 차이”라며 “편안하게 흘려들을 수 있지만 집중하고 들었을 때 질적으로 높은 수준의 음악이라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앨범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귀를 사로잡는 것은 단내를 뿜어내는 가사다. ‘작은 청혼’의 “저녁엔 같은 집에 퇴근하고 둘이 잠들고 싶어”, ‘유후(YouWho)’의 “널 보고 있어도 보고 싶어 모든 게 완벽해 내겐”, ‘유어 러브(Your Love)’의 “아무 것도 아닌 날 네가 가치 있게 해”, ‘프린스’의 “제발 날 녹여줘 나 슬프기 전에”처럼 명확한 노림수를 가진 ‘일상툰(일상을 다룬 웹툰)’ 같은 가사들은 유려한 멜로디에 실려 여심을 부드럽게 파고든다.
서면호는 “소란의 음악을 여성 취향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지만 실은 남성들에게도 연애 지침서 같은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음악”이라며 “여자친구와 함께 콘서트를 찾았다가 오해를 풀고 팬이 된 남성들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가벼운 듯하면서도 쉽게 질리지 않는 사운드는 가사 이상으로 매력적이다. 이 같은 매력은 멜로디와 가사를 떠받치는 적지 않은 겹을 가진 음악적 지반으로부터 나온다. 특히 탁 트인 시야에 광활한 하늘의 모습을 펼쳐내는 시원한 연주가 돋보이는 ‘구름의 그림자 위에’와 역동적인 분위기 속에서도 정교한 연주를 들려주는 ‘프린스’ 등은 소란이 가벼운 팝의 범주에 놓여있지 않음을 증명해주는 중요한 곡들이다.
이태욱은 “자연스러운 느낌을 강조하다보니 섬세한 연주가 필요해 녹음 과정이 쉽진 않았다”며 “앨범 전체를 몇 차례 반복해 듣는다면 스트리밍으로 몇 곡을 선택해 들을 때와는 달리 곳곳에 숨겨놓은 음악적 장치를 발견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편유일은 “일부러 집중해 듣지 않아도 귀에 쏙쏙 들어올 수 있게 음악을 만들었지만 가볍지는 않다”라며 “쉽게 카피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달려들었다간 애를 먹을 것”이라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고영배는 “우리의 음악을 뭐라고 정의하던 간에 우리의 정체성은 밴드”라며 “장르와 상관없이 좋은 음악을 들려주는 것이 소란의 지상목표”라고 덧붙였다.
소란의 멤버들은 각종 라디오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출연해 입심을 자랑하고 있다. 이들의 입심에 반해 팬이 된 청취자들도 적지 않다. 고영배는 “우리 같은 진짜 라디오 스타가 MBC 예능 프로그램 ‘라디오스타’에 출연해야 한다”며 “소란은 홍대의 그 어떤 밴드보다도 큰 야망을 가진 밴드”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소란은 다음달 27~28일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연말 콘서트를 연다. 고영배는 “무대 위 소란의 모습은 열정적인 상남자”라며 “음악만으로는 상상하기 힘든 에너지 넘치는 무대를 감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를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