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러 간 긴장 고조되면서 비확산 공감대 약화

WSJ “韓·튀르키예도 자국 핵무장 논의”

러시아, 북한, 이란…핵위협 공포 냉전 후 최대치 [디브리핑]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6월 19일 북한 평양에서 열린 국가 리셉션에 참석하고 있다. [로이터]

[헤럴드경제=정목희 기자]지구촌 핵 비확산 체제가 냉전 이후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으로 국제적 고립 위기에 처한 러시아는 최근 핵교리(핵무기 사용 규정)를 개정해 핵위협을 경고했고, 북한은 연이어 핵협박 발언을 내놓고 있다. 이란은 이스라엘이 이란의 핵 시설을 표적으로 삼을 경우 이란의 핵 교리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고 경고하는 등 지역 갈등에 따른 핵전쟁 공포가 확산하고 있다.

16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냉전이 종식된 후 오랜 적대 관계의 정부들은 핵탄두를 없애는데 합의했고 핵무기 비확산에 협력했지만 그 약속이 이제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달 핵 교리 개정을 공식화했다. 서방이 러시아에 위협을 가하면 핵무기를 사용하겠다는 경고다.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 체결된 두 가지 중요한 핵무기 통제 조약 중 중거리핵전력조약(INF)은 2019년 트럼프 정부 시절 미국이 탈퇴하면서 이미 무너졌고, 핵무기 배치를 제한하는 뉴스타트조약은 2026년 초에 만료된다.

약 60년 전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은 1975년까지 전세계에 핵보유국이 15~20개국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현재 9개국으로 제한돼 있다. 그럼에도 라파엘 그로시 유엔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전 세계 핵비확산 체제가 냉전 이후 어느 때보다 큰 위기에 처해 있다”며 “10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핵 대결의 위협이 이제는 더 이상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고 경고했다.

에릭 브루어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비확산 국장도 “1960년대부터 비확산 체제를 구축하고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비확산의 중요성에 대한 강대국들의 공통된 공감대가 약해졌다”며 “적어도 우리는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국가가 더 많은 세상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우려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미국과 러시아는 협력해 구소련 공화국인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에 위치한 3000개 이상의 전략 핵탄두를 비활성화 했다. 2012년까지 러시아와 미국은 각각 5000개 미만의 탄두를 보유하고 있었다. 미국 과학자 연맹에 따르면, 1988년에는 러시아는 4만1000개 이상, 미국이 2만3500개 이상의 핵탄두를 보유했다.

1990년대 초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소규모 핵무기를 개발한 뒤 이를 폐기한 첫 번째이자 유일한 국가가 됐다. 약 10년 후 리비아도 핵 개발을 포기하기로 합의했다. 이란은 미국이 이웃 국가인 이라크를 침공한 후, 자국의 핵 연구에 대한 협상을 시작하는 데 동의했다.

러시아, 북한, 이란…핵위협 공포 냉전 후 최대치 [디브리핑]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해 4월 김정은 국무위원장 지도 아래 “초대형방사포병부대들을 국가핵무기종합관리체계인 ‘핵방아쇠’ 체계 안에서 운용하는 훈련이 22일 처음으로 진행됐다”고 보도했다. [헤럴드DB]

그러나 비확산 노력은 좌절에 직면하게 됐다. 파키스탄은 1998년 핵무기 실험을 시작했고, 북한도 2006년 핵무기를 실험하기 시작했다.

핵 위협을 억제하기 위한 노력은 1970년 핵무기 개발이나 보유를 금지하는 핵확산금지조약(NPT)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이 법안은 핵무기 확산을 제한하는 것이 동맹국들에게 각각 폭탄을 제공해 이점을 추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두 강대국들(미국과 소련)의 결정을 성문화했다.

현재 191개국이 가입한 NPT는 핵을 보유하지 않은 국가가 원자력 에너지를 평화적 목적으로 사용하도록 약속하고 유엔 국제원자력기구(IAEA) 감독 권한을 부여한다. 여기에는 핵무기 보유국들이 무기를 줄이기 위해 성실하게 노력하겠다는 서약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미국, 중국, 러시아 간에 긴장이 고조되면서 핵 비확산에 대한 공감대가 약화되고 있다. WSJ은 “전문가들은 이란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데 몇 달밖에 남지 않았을 수 있으며, 그렇게 된다면 사우디아라비아도 그 뒤를 따를 것”이라며 “한국과 튀르키예에서도 자국 핵무장에 대한 논의가 시작했다”고 전했다.

중국의 핵 확장 속도가 가장 빠른 것으로 보인다. 미 국방부는 현재 중국의 핵무기 보유량이 약 500개로 2035년까지 1500개에 달할 것으로 예상돼 중국이 러시아 및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것으로 보인다고 예측했다.

러시아는 북한 김정은 정권과의 파트너십 확대의 일환으로 북한에 대한 핵 관련 재재를 공개적으로 거부했다. 이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수백만 발의 포탄을 러시아에 보냈다.

여기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도 가세하면서 핵 군비 경쟁의 위험성은 가속화되고 있다. 나토는 지난달 크렘린궁의 핵 교리 개정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 14일 연례 핵억지연습 ‘스테드패스트-눈(Steadfast Noon)’을 시작해 러시아를 비롯한 적대 세력들에게 필요시 충돌에 대비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