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기술·인력 빼가기에 中 보조금으로 급성장
HBM 경쟁 속 중국은 범용 메모리 공격적 증설
내수 공급물량 기반 저가 공세로 시장 흔들어
삼성전자 기술 가져간 CXMT가 대표적 사례
[헤럴드경제=김현일 기자]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 등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3강이 인공지능(AI) 열풍 속 고대역폭 메모리(HBM)에 열중하고 있는 사이 중국 업체들이 빈틈을 파고들고 있다.
중국 업체들은 HBM보다 기술 난이도가 낮은 범용 메모리 제품을 자국 시장에 싸게 쏟아내며 몸집을 불리고 있다. 내수시장의 강력한 지지를 받는 중국 업체의 성장은 메모리 반도체 시장 가격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삼성전자가 3분기 부진한 실적을 기록한 배경 중 하나로도 중국 업체들의 공격적 증설에 따른 제품 가격 상승 폭 둔화가 지목된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기술·인력 빼가기도 마다하지 않았던 중국 반도체 기업들은 자국 정부의 보조금 지원까지 받으며 급성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아직은 기술력이 떨어지지만 향후 중국 반도체 업체들이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사업을 확장할 경우 K-반도체에도 위협 요인이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대표적인 중국 메모리 반도체 업체는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다. 2016년 설립된 CXMT는 중국 안후이성 허페이와 베이징에 각각 공장을 두고 범용 D램인 더블데이터레이트4(DDR4)와 저전력 D램인 LPDDR4을 주력으로 생산하고 있다. 현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양산하는 DDR5, LPDDR5X보다 한 세대 아래 제품들이다.
글로벌 D램 시장에서 CXMT의 생산량 점유율은 올해 2분기 기준 5.1% 수준이다. 아직 한 자릿수에 불과하지만 정부의 보조금을 기반으로 생산능력을 빠르게 키우고 있다.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CXMT의 범용 메모리 제품을 적극 채택하는 ‘애국소비’ 경향도 CXMT의 성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CXMT의 2023년 말 D램 생산능력은 월 10만5000장 수준이었으나 올해 말 19만장, 2025년에는 36만6000장까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생산능력 기준 글로벌 시장점유율이 16%까지 올라 세계 3위 마이크론(약 20%)에 근접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반도체 업계는 지난달부터 메모리 시장에서 DDR4 현물가격의 상승세가 꺾인 배경에도 CXMT의 저가공세가 있다고 본다. 시장조사업체 디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범용 D램 ‘DDR4 8Gb(기가비트) 2666’의 현물가격은 지난달 6일 기준 1.971달러로, 연고점인 지난 7월24일의 2달러 대비 1.5% 내렸다.
CXMT는 내년에도 범용 D램 증설과 저가 공급에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이 HBM 생산 확대에 집중하고 있는 상황에서 빈틈을 노린 전략으로 풀이된다.
낸드플래시 메모리를 제조하는 중국 YMTC가 미국 정부의 제재를 받고 있는 반면 CXMT는 제재 대상에서 빠져 있어 향후 CXMT가 계속 범용 D램 공급을 확대할 경우 기존 메모리 강자들에게는 잠재적 위협요인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중국 업체들은 국내 기업에서 근무하던 임직원을 통해 기술과 인력을 빼가 논란이 됐다. 올 1월 전직 삼성전자 부장은 지난 2016년 18나노 D램 반도체 공정 정보를 CXMT에 유출한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된 바 있다.
전직 삼성전자·하이닉스 출신 임원도 중국에 회사를 설립하며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설계자료 등을 유출·사용한 혐의로 지난해 6월 기소돼 수원지방법원에서 재판 중이다.
정민규 상상인증권 연구원은 “정보·인력 유출 등으로 인해 기술 격차가 조금씩 좁혀지고 있다”며 “메모리 3사가 다음 세대로의 전환을 원활히 진행하지 않는다면 향후 중국이 DDR5·LPDDR5을 본격 생산할 때 저가공세의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