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협, 역대 산업부 장관 초청 특별 대담 개최
황철성 교수 “낸드처럼 쌓는 D램 구조 전환에 韓 경쟁력 약화 가능성”
16나노까지 쫓아온 중국 D램…기술 발전 속도 위협적
[헤럴드경제=김민지 기자] 한국이 보유한 현재의 D램 기술력이 5년내 한계에 부딪히면서 ‘메모리 1등’으로서의 위상이 약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장에서의 부진보다 한국이 독보적인 위상을 유지하던 메모리 D램 분야에서 중국이 빠른 속도로 추격하고 있다는 점이 더 위협적이라는 분석이다. 국가핵심산업인 반도체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보조금 등 직접적인 지원을 포함한 국가 차원의 총력을 다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한국경제인협회(이하 한경협)는 1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FKI타워에서 역대 산업부 장관들을 초청해 특별대담을 개최했다.
김창범 한경협 상근부회장은 이날 개회사를 통해 “미국, 중국 및 일본은 막대한 보조금과 세제혜택을 자국 기업과 현지 투자 기업에 제공해 기술 혁신 및 선점을 위해 앞다투고 있다”며 “우리도 주요국처럼 보조금 지급이나 직접환급제도(Direct Pay)와 같은 실질적인 지원책 도입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할 때”라고 제안했다.
“대만 TSMC 보다 중국 D램이 더 문제”
이날 주제발표를 맡은 황철성 서울대 재료공학부 석좌교수는 “최근 파운드리가 굉장히 큰 아젠다인데, 대만 TSMC와의 시장 점유율 격차가 좀처럼 개선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며 “하지만 더 큰 문제는 D램”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D램 시장에서는 중국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스(CXMT)가, 낸드 시장에서는 중국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스(YMTC)가 빠른 속도로 한국을 추격해오고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CXMT는 지난해까지 소위 ‘듣지도 보지도 못한’ 기업이었지만, 올해부터는 주요 플레이어로 등장할 수 있다고 봤다.
황 교수는 “올 1분기 기준 D램 시장에서 CXMT의 웨이퍼 투입량이 전체의 약 10%고, 낸드 시장에서 YMTC는 13%를 차지하고 있다”며 “지금은 중국 기업들이 서방 시장에 수출을 하지 못하고 내수 기반의 사업을 하고 있지만, 언제까지 그럴 거란 보장은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중국 기업들은 저가의 범용 메모리를 중심으로 물량 공세를 펼치며 점유율을 늘리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전체 D램 시장에서 중국 메모리 업체의 점유율은 올 3분기 6% 수준에서 내년 3분기 10.1%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기술 발전 속도도 위협적이다. 중국 대표 메모리 업체인 CXMT의 올해 주력 D램은 17나노 제품이다. 전체 생산 제품의 53%를 차지한다. 지난해 19나노 D램이 전체의 87%를 차지했던 것과 비교하면 매우 빠른 속도로 업그레이드에 성공했다. 여기에 올 3분기부터는 한단계 업그레이드한 16나노 D램을 초도 양산한다. CXMT는 내년 16나노 D램의 생산 비율을 전체의 33%까지 끌어올릴 것으로 전망된다.
황 교수는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고 강조했다. D램의 기술 발전이 낸드처럼 칩을 쌓는 적층 구조로 전환되면서 중국 업체들이 강세를 보일 여지가 생겼다는 분석이다.
그는 “현재의 2D 스케일링에 기반한 D램 성능 향상 추세가 향후 5년 내 한계에 봉착할 것”이라며 “수직구조 낸드플래시와 유사한 적층형 3D D램 구조로의 전환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D램에서도 쌓아올리는 기술이 중요해지면, 중국 CXMT도 못할 이유가 없다”며 “향후 극자외선 노광장비(EUV) 및 관련 기술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감소하면 한국이 후발국가 대비 보유한 D램 분야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직 장관들 모여 한 목소리… “국가 차원 총력 지원 절실”
전직 장관들은 한국이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으나, 기술 한계와 후발국의 추격 및 전력 수급 등 산적한 과제에 직면해 있다고 지적했다. 반도체 강국 지위를 지키기 위해서는 과감한 혁신과 정부의 전방위적 지원이 시급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이윤호 전 지식경제부 장관은 이날 대담에서 “미국, 중국, 일본이 막대한 보조금 지원을 결정한 것은 반도체가 단순한 산업을 넘어 국가 경쟁력과 직결되기 때문”이라며 “현대 군사 기술의 90% 이상이 반도체 기술에 의존하는 등 반도체 산업은 국가 안보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밝혔다.
윤상직 전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업부) 장관은 심각한 전력 수급 문제를 지적하며 “2030년경에는 현재 발전용량(2023년 기준 약 144GW)의 50% 이상이 추가로 필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만 최소 10GW 전력이 필요하고, 2029년까지 신규 데이터센터 전력수요만 49GW에 달할 것이라면서, “특별법 제정을 통해 지체되고 있는 송전망 건설을 조속히 완공하고, 신규 원전건설과 차세대 SMR(소형모듈원전) 조기 상용화도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성윤모 전 산업부 장관은 다양한 지원을 통한 반도체 생태계 강화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반도체 설계전문 기업(팹리스) 육성은 물론 일본 수출규제 대응을 통해 마련된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산업에 대한 지원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창양 전 산업부 장관은 “AI 시대로 진입하면서 반도체 산업의 제품 수요와 기술 변화, 그리고 기업의 경쟁력 판도가 급속하게 변화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기업이 경쟁력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경영 판단 및 기민한 대응과 함께 이를 뒷받침하는 정부의 효과적인 정책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특별초청 자격으로 대담에 나선 이종호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산학연 협력을 통해 AI의 엄청난 전력 소비를 줄일 수 있는 저전력 반도체 기술 개발이 신속하고 실효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며 “대학과 기업의 연구개발을 위한 컴퓨팅 인프라 구축과 지원이 시급하며, AI 관련 기업 지원 펀드 조성도 필요하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