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초여름의 장마, 장마가 물러난 뒤 한여름의 폭염, 폭염이 꺾이고 맑고 쾌청한 가을.
이같은 날씨 공식이 깨지고 있다. 최근 태풍으로 인한 재산 피해의 95%는 가을에 발생한 태풍으로 인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록적인 피해를 입혔던 2003년 ‘매미’와 재작년 ‘힌남노’도 9월에 발생한 태풍이었다.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가을 태풍이 더욱 강하게, 자주 나타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민간 싱크탱크 넥스트가 24일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0년 간 태풍 피해복구액 4조6363억원 가운데 4조3887억원(95%)가 가을(9~10월)에 발생한 태풍에서 비롯됐다. 넥스트가 2013~2022년의 행정안전부 재해 연보에서 태풍으로 인한 자산 피해액을 분석한 결과다.
2003~2022년 태풍 피해복구액 순위를 따져보면 1~4위가 가을에 집중됐다. 2003년 9월12일 발생한 ‘매미’의 피해복구액이 10조6146억6400만원으로 가장 컸다. 2012년 9월15일 발생한 ‘산바’가 2위로 뒤를 이었다. 3위 ‘미탁’은 심지어 10월(2019년 10월 1일)에 발생했다. 49년 만에 포항제철소 가동을 중단시켰던 ‘힌남노’ 역시 2022년 9월 3일에 발생한 가을 태풍이었다.
가을 태풍은 여름 태풍만큼 자주 오지는 않지만, 한번 발생하면 피해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았다. 같은 기간 여름에 발생한 태풍 43개 중 20개(약 47%)가 피해를 일으킨 반면 가을에 발생한 태풍 18개 중 13개(약 73%)가 피해 태풍이었다. 8월 말에 발생해 9월에 피해를 입힌 전환기 태풍까지 가을 태풍에 포함하면 피해 태풍은 24개 중 18개(약 75%)까지 늘어난다.
이는 가을 태풍의 특성과 경로의 영향으로 풀이된다. 우선 가을 태풍은 여름 태풍보다 최대 강도와 일 최다 강수량이 더 강한 경향이 있어서다. 또 피해복구액이 1000억원 이상인 태풍은 주로 남해안에 상륙해 부산, 울산, 경상도 및 전라남도 일부 지역에 직접 영향을 미쳤다.
보고서는 “가을 태풍 경로가 1인 당 지역총생산(GRDP)이 큰 지역을 통과한다”며 “가을태풍의 피해가 공공시설이 많은 도시 지역 혹은 생산 활동이 많은 지역임을 유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가을 태풍이 앞으로 더 자주 많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피해 태풍 발생일이 해마다 약 1.2일씩, 최근 20년 간 약 3주 가량 늦춰졌다. 과거에는 6월에 태풍 피해가 시작됐다면 최근 5년 새 7월 중순에 시작되는 식이다.
태풍이 점차 늦춰진다는 건 결국 여름이 오래 지속된다는 이야기다. 여름철 우리나라 상공에 확장한 북태평양은 가을철이 되면 동쪽으로 물러난다. 이 북태평양의 경계를 타고 북상하는 가을 태풍은 과거 주로 일본에 영향을 줬다. 기후변화로 북태평양 고기압이 쉽사리 물러나지 않다 보니 가을 태풍이 우리나라로 향하는 셈이다.
보고서를 쓴 넥스트의 송강현 책임연구원은 “가을 태풍은 여름 태풍에 비해 훨씬 적은 횟수로도 훨씬 더 심각한 피해를 입힌다는 것이 확인됐다”며 “기후변화로 가을 태풍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더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