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의 아픔·어려움에 공감할수록 성공률 높아지는 피싱 범죄
탈취한 개인정보로 피해자 맞춤 시나리오 범죄 수법 횡행
보이스피싱 의심될 땐 무조건 의심·가족 또는 지인과 상의
편집자주 “한국에서는…도망쳤다고 추적하기를 중단합니까?” 범죄부터 체포까지, 대한민국 경찰들의 끝나지 않는 ‘붙잡을 결심’을 소개합니다.
[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 #. 60대 A씨는 최근 검사 사칭 보이스피싱 범죄에 당했다. 피싱 조직은 ‘당신이 범죄에 연루됐다’고 속여, A씨의 심리를 완전히 지배했다. 조사를 빌미로 피싱 조직은 A씨를 모텔 방 등으로 유인했다. 소위 가족이나 지인 등 A씨가 범죄 피해를 당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만드는 ‘고립’ 수법이다. A씨는 2주간 고립된 상태에서 피싱범죄 조직에 약 1억원을 뜯겼다.
2018년부터 6년째 보이스피싱 범죄 하나만을 파고 있는 서울 도봉경찰서 김준형 팀장(경위)을 도봉서에서 만났다. 김 팀장의 별명은 ‘미친개’다. 강력범죄자를 한번 물면 끝까지 놓치지 않아 팀원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김 팀장은 “보이스피싱 범죄는 공포를 이용한 범죄가 아니다. 오히려 피해자의 ‘어려움에 공감’하는 것이 범죄 수법”이라며 “범죄자가 피해자의 아픔과 어려움에 공감을 많이 하면 할수록 범행 성공률이 높아진다”고 분석했다.
김 팀장은 전국에 320명밖에 없는 책임수사관인 동시에 전문수사관 마스터 자격까지 취득한 국내 1호 수사관이다. 수사관 자격은 예비수사관, 일반수사관, 전임수사관, 책임수사관 등 4단계로 나뉘는데, 책임수사관은 수사관 자격 가운데 가장 높은 단계다.
피싱 조직, ‘피해자 맞춤 시나리오’ 개발해 범행
보이스피싱의 가장 흔한 수법은 저금리 대환·대출, 기관 사칭, 가족 사칭 등이다. 대환·대출 사기는 40~60대의 피해 사례가 많고, 기관사칭은 20대~30대 피해자들이 많으며, 가족 사칭은 40대 이상의 피해자가 많다. 피싱의 역사가 누적되면서 메신저 피싱, 몸캠 피싱 등 그 종류도 다양해졌다. 최근의 경향은 타깃이 뚜렷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피싱이 많았다면 최근에는 탈취한 개인정보를 활용해 ‘피해자 맞춤형 시나리오’ 범죄가 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피해자가 스스로 개인정보를 넘겨주는 사례도 빈발한다. 가령 인스타그램 광고를 보고 소상공인 저리 대출 홈페이지에 접속하게 한 다음, 연락을 준다고 하며 피해자의 이름·휴대폰번호·주민등록번호 등을 탈취하는 식이다. 소상공인 정책자금 알리미라는 이름의 앱을 만들어 피해자들이 스스로 개인정보를 넘기게 만드는 방식이다.
피싱범의 문자를 보고 저리 대출을 신청한 피해자는 캐피탈 등 고금리 대출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가령 3000만원을 캐피탈에서 빌린 피해자라고 한다면, 피싱범들은 “제1금융권에서 캐피탈의 절반 금리로 돈을 빌려주겠다”는 문자를 보내 꾀어내는 식이다. 피해자가 해당 문자를 보고 상담사에게 전화를 하면 “대출승인 났다. 원하는 액수보다 조금 더, 저렴한 금리로 빌려주겠다”며 피싱 조직이 만든 앱을 깔게 한다. 이 앱은 원격 제어 악성앱으로, 이 앱이 한 번 설치되면 전화 가로채기가 가능하다.
그 다음 과정은 이렇게 진행된다. 범죄조직은 캐피탈 업체를 사칭해 피해자에게 “방금 다른 기관에서 대출 받으셨냐. 계약 위반으로 지금 3000만원을 상환해야 한다. 상환하지 않을 경우 금융감독원에 신고해 계좌와 카드를 정지시킬 것”이라며 피해자를 협박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가 금융감독원 대표번호 또는 112에 신고를 하더라도 피싱 앱이 깔려있는 상태기 때문에 결국 피싱 조직과 다시 통화를 하게 된다. 소위 ‘전화 가로채기’ 수법이다. 제1금융권 직원·캐피탈 직원·금융감독원 직원·112 등, 모두 하나의 피싱 조직원들이다. 결국 ‘고립’된 피해자는 피싱 조직에게 3000만원을 보내게 되고 이는 고스란히 피해로 이어진다.
최근에는 카드가 새로 발급 됐다며 우체국, 카드사 등을 사칭하는 수법도 생겨났다. 우체국 직원 등을 사칭해 카드가 발급됐다는 문자를 보낸다. 피해자가 카드를 발급받지 않았다고 답할 경우 카드사로 전화해 보라며 카드사 전화번호를 가르쳐준다. 피싱범에게 전화를 걸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카드사 직원을 사칭한 피싱범은 “명의가 도용된 것으로 의심된다”며 피해자에게 금융감독원을 사칭한 피싱범에게 연결하고, 이후엔 경찰과 검사를 사칭한 피싱범에게 연결된다. 이후 수사기관을 사칭한 피싱범들은 “수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으니 재산금융조사를 받아야 하고, 피해자를 위한 공탁금을 걸어야 한다”며 입금을 요구한다.
피싱 범죄, 대포통장 사용·점조직화 등으로 추적 어려워…검거와 예방 함께 가야
보이스피싱 범죄가 기승을 부리지만, 예전에 비해서 검거하기 어려워진 것이 사실이다. 초기 보이스피싱은 피해자가 직접 은행 창구를 찾아가 돈을 보내는 등 ‘대면’ 방식으로 송금이 이뤄졌기 때문에 타인(은행 창구 직원 등)이 개입할 여지가 있었다. 이에 은행들이 예방책을 내놓으면서 중간 수거책을 활용해 현금을 전달해주는 방식으로 변화했다. 이때까지도 수거책을 검거하면 피해금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인터넷뱅킹이 발달하며 계좌이체를 하는 경우가 다수다. 이럴 경우 피싱 조직들은 여러 개의 대포통장을 이용하며 피해금을 오염시키기 때문에 피해금을 돌려받기 어려워진다. 그렇게 모아진 금액은 피싱 조직의 상선으로 넘어가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도 피해금을 금이나 백화점 상품권 등 현물로 바꿔 자금세탁을 하거나 무역거래를 위장하는 등 수법이 진화했다. 위장하는 방법까지 다양해진 것이다.
피싱 범죄의 이런 특성 상 범인 검거도 중요하지만 예방도 못지 않게 중요해졌다. 피해자들이 피싱의 수법을 알고 있어야 하는 이유다. 김준형 팀장은 예방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네이버 블로그 ‘도봉경찰서 피싱범죄수사팀’, 인스타그램 ‘@detective__kim’을 운영 중이다. 도봉경찰서는 정한규 서장의 주도로 ‘보이스피싱 제로화 프로젝트’를 추진해 태스크포스(TF) 팀을 운영하는 등 예방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보이스피싱에 대한 인식도 바뀌는 중이다. 예전에는 ‘바보같이, 어떻게 피싱 범죄를 당하냐’는 등 피해자를 탓했던 분위기가 팽배했다면, 요즘은 ‘알고도 당한다’며 누구나 피싱을 당할 수 있다는 걸 인지하는 분위기다. 경찰청 또한 일전에는 ‘속지마라’고 강조했다면, 최근에는 ‘속지 않은 게 아니다. 내 차례가 오지 않은 것 뿐’이라며 슬로건을 바꿨다.
피싱 범죄 피하는 두 가지 원칙 “무조건 의심·가족 또는 지인과 상의”
만약 보이스피싱 피해를 입었다면, 조건을 충족하는 하에서 피해자 지원금을 받을 수도 있다. ▷최근 3년 이내 보이스피싱을 당한 ▷중위소득 100% 이하 ▷사건 진행 중·종결된 지 최근 3년 이내일 경우 1인 최대 300만원의 긴급 생활비를 지원받을 수 있다. 법률 상담 또는 심리 상담도 지원 받을 수 있다. 보이스피싱 제로 사무국(1811-0041)로 연락을 취하면 된다.
김 팀장은 보이스피싱 피해를 당하지 않을 수 있는 두 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무조건 의심하고, 가족 또는 지인과 상의하라는 원칙이다. 김 팀장은 경찰청이 개발한 ‘시티즌 코난’ 앱을 설치해 피싱 조직의 악성 앱이 깔려있는지 확인해볼 수 있다고도 조언했다.
김 팀장은 마지막으로 “보이스피싱은 누구든지 당할 수 있는 범죄”라며 “피해자들이 자책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위로의 말을 전했다. 이어 “경찰은 현재 서민 경제에 큰 피해를 주는 피싱 범죄 조직 일망타진을 위해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보이스피싱은 예방이 최선”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