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삼노, 1일 오전 이재용 회장 자택 앞서 기자회견
“200만 포인트 추가 요구, 마지막 제안”
전삼노 대표 교섭권 만료 후 노노 갈등 가능성 우려도
메모리 슈퍼사이클 시작 타이밍에 극적 타결 무산
[헤럴드경제=김민지 기자] 삼성전자 노사가 막바지 협상까지 가서도 타결에 이르지 못하면서 노조 리스크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노조는 막판 협상에서 최후의 제안으로 200만원 상당의 복지 포인트 제공을 추가 요구했지만, ‘무노동 무임금’ 원칙에 사측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최종 결렬됐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이 메모리 슈퍼사이클에 올라탄 시점에도 노사 갈등 실마리를 찾지 못하면서 노조가 반도체 상승세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200만 포인트, 마지막 제안…2년치 교섭 조건 약속 안 지킨 사측 책임 커”=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이하 전삼노)은 1일 서울 용산구 이재용 회장 자택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집행부와 대의원은 파업 상태를 조속히 해결하기 위해 3일간 집중 교섭을 진행했고 사측과 합의를 이루고자 노력했다”며 “올해 교섭은 2년 치의 교섭임에도 불구하고, 사측은 휴가 제도 개선 등에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사측은 막판 교섭에서 ▷노조 총회 연 8시간 유급 활동 인정 ▷전 직원 50만 여가포인트 지급 ▷향후 성과급 산정 기준 개선 시 노조 의견 수렴 ▷연차 의무사용일수 15일에서 10일로 축소 등을 제시했다.
노조 총회 8시간 유급 노조활동 인정은 노조의 핵심 요구사항인 노조창립일 유급 휴가를 일부 수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여가포인트 50만 지급 역시 전삼노 측에서 요구하는 기본 임금인상률 0.5%보다 높다. 연차 의무사용일수 축소를 통한 연차보상비 보상으로 파업 참여 노조원들은 임금 손실을 일부 줄일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노조 측 안을 어느 정도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8일부터 파업에 참여한 노조원들은 ‘무임금 무노동’ 원칙에 따라 대리급은 최소 400만원, 과장급은 최소 500만원의 임금 손실을 본 것으로 추산된다.
극적 타결 방향으로 진행되던 양측의 교섭은 막판에 상황이 반전됐다. 전삼노 측이 추가로 ‘삼성 패밀리넷(임직원 대상 삼성전자 제품 구매 사이트)’ 포인트 200만을 요구하면서다. 이에 사측이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고수하면서 협상이 최종 결렬됐다.
전삼노 측은 패밀리넷 200만 포인트 추가 요구에 대해 파업을 종료하기 위한 마지막 제안이었다는 입장이다. 사측이 기본금 인상과 성과급 제도 개선 등을 받아들이지 않자 최후의 카드로 추가 요구했다는 것이다.
이현구 부위원장은 “이번 최종 협상에서 사측은 노조 창립기념일 휴가 1일 보장을 노조 총회 8시간 유급 인정으로 축소하는 등 부분적으로만 수용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이에 노조는 200만 포인트라도 제공해주면 (파업을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가겠다는 입장이었다”며 “포인트 규모를 두고 협상이 되지 않았고 결국 결렬됐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전삼노와의 합의를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결렬돼 안타깝다”며 “앞으로도 계속 노조와 대화를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삼노는 노조는 오는 5일 국회 앞에서도 기자회견을 이어갈 예정이다. 1일 오후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통해 향후 계획 및 지침을 밝힐 예정이다.
▶동행노조 교섭권 요구 여부 따라 대표교섭권 박탈 가능성도=전삼노 측은 계속해서 총파업을 이어가며 장기 투쟁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다만, 교섭 대표권이 만료되는 5일 이후로는 쟁의권을 잃게 된다. 6일부터는 삼성전자에 있는 5개의 노조(사무직노조, 구미네트워크노조, 동행노조, 전삼노, DX노조)끼리 대표 교섭권을 두고 다시 논의 해야 한다. 만약 이 중 한 노조라도 교섭권을 요구하면, 전삼노는 대표 교섭권을 잃게 된다.
손우목 위원장은 “현재 동행노조를 제외하고는 교섭권을 요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전삼노 측에 공식적으로 전달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동행노조는 최근 "대표 노동조합의 총파업을 통한 협상이 회사와의 첨예한 대립으로 더 이상 합리적인 결과를 기대할 수 없는 길로 들어서고 있다"며 전삼노의 파업을 비판한 바 있다. 동행노조의 교섭권 요구 여부에 따라 노노 간 논쟁 등 지리한 노사 갈등이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장기 총파업에 참여 조합원 임금손실 눈덩이…명분·실익 둘 다 잃었나=교섭이 결렬되면서 전삼노는 명분과 실리 모두 얻지 못하고 노조원들에게 막대한 임금손실 피해만 입혔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특히, 메모리 슈퍼사이클이 시작되며 모처럼 반도체 시장에 훈풍이 불고 있는 상황에서 무리수를 두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총파업으로 인한 생산 차질 발생과 노조 리스크 부각이 글로벌 고객사와의 신뢰 관계 형성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은 지난 2분기 6조450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하반기 범용 D램 가격 상승과 기업용 SSD 등 고부가가치 낸드 제품 수요 증가로 가파른 실적 개선이 기대된다. 여기에 3분기부터 5세대 HBM(고대역폭메모리) 제품인 HBM3E 대량 양산을 시작하며 HBM 시장 선두 추격을 본격화한다. 경쟁사 대비 큰 캐파(생산능력)을 기반으로 엔비디아에 제품을 공급하며 시장 점유율을 크게 늘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삼성전자 DS부문의 연간 영업이익이 25조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반등하는 지금은 노사가 힘을 합쳐 폭발하는 시장 수요에 대응해 실적 개선에 집중해야 하는 타이밍”이라며 “파업 장기화는 회사에도 노조에게도 타격만 입힐 뿐이며, 노조는 진짜 실익이 무엇인지 다시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