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 모터쇼’ 굿우드 페스티벌 오브 스피드 방문기
관람객 20만명 추정…관상용 아닌 자동차 직접 체험기회 제공
수억원대 고급차 직접 주행 …올드카, 중고 부품, 굿즈 부스도 인산인해
“체험 중심 프로그램, 가족 단위 관람객으로 활기”
[헤럴드경제(영국 치체스터)=김성우 기자] #. “인증 재생부품은 70% 더 저렴합니다. 인증 재생부품으로 환경과 당신의 주머니에 보탬이 되세요.” (이베이 굿우드 페스티벌 부스)
지난 11일(이하 현지시간)부터 14일까지 영국 치체스터에서 열린 ‘2024 굿우드 페스티벌 오브 스피드’(이하 굿우드 페스티벌) 다양한 글로벌 기업들이 마련한 ‘체험형 부스’들이 눈길을 끌었다.
먼저 글로벌 온라인커머스 플랫폼 이베이가 마련한 현장 부스가 눈길을 끌었다. 이베이는 이번 행사에서 게이트 바로 앞에 부스를 마련하고, 키오스크를 배치했다. 이베이에서 판매되는 재생 부품들을 직접 검색해보고, 구매까지 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다. 또한 직접 구매한 부품을 통해 차를 고쳤을 때의 이점을 체험형 매장의 방식으로 직접 선보였고, 매장은 관람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번에 직접 방문한 굿우드 페스티벌은 매년 관람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게 다가왔다. 전 세계적으로 모터쇼 시장이 부진의 늪에 빠진 것과 뚜렷한 대비를 보이는 것이다.
지난 1993년 처음 시작돼 올해로 30년을 넘은 굿우드 페스티벌은 영국 런던에서 차로 2시간 남짓 떨어진 치체스터에서 열린다. 기본 입장권이 하루 63파운드(약 11만3000원)로 비싼 수준임에도 매년 15만명 이상이 행사장을 찾는다. 올해는 특히 약 20만명 이상의 관객이 굿우드 페스티벌을 직접 찾은 것으로 추산될 정도로 해마다 인기가 더 높아지고 있다.
굿우드 페스티벌의 별칭은 ‘움직이는 모터쇼’다. 그만큼 ‘보여주기’ 대신 ‘체험하기’ 위한 모터쇼를 지향하면서 향후 모터쇼가 나아갈 길을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차량 마니아들이 선호하는 스포츠카의 최고 스피드를 직접 보여주거나, 차량·액세서리 등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소비자들에게 매년 꾸준히 인기를 끄는 대목이다.
실제 굿우드 페스티벌에서는 매년 ‘스피드’(속도광)와 관련한 테마를 선정하고 기성 고성능차와 튜닝카, 모터사이클 자동차들이 직접 경연을 펼친다. 관객들은 라디오 방송을 통해 현장에서 레이싱 경기 중계를 들을수 있고, 구독자 수가 73만4000여 명에 달하는 굿우드 페스티벌 공식 계정을 통한 유튜브 시청도 가능하다.
현장 곳곳에서는 돗자리를 펴고 앉아 유튜브와 라디오를 들으며 환호하는 가족 관객들, 레이싱 코스 앞에서 차량의 등장에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자동차 마니아들이 관측됐다. 인근에 위치한 굿우드 페스티벌 캠핑장에서는 캠핑 트레일러를 끌고와 차량의 매력을 즐기는 팬들도 많다고 했다.
관객들은 롤스로이스와 벤틀리, 포르쉐, 제네시스 등 프리미엄 고성능차들이 직접 주행하는 모습을 눈으로 볼 수 있다. 비가 많이 오는 영국에서 열리는 행사인만큼 수억원을 호가하는 고성능 차들이 습한 노면에서 진흙을 튀기는 모습도 쉽게 관측된다. 흔히 차량을 실내에 전시해 깔끔한 모습만을 보여주는 모터쇼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다.
특히 까다로운 코너와 가파른 언덕으로 구성된 1.86㎞ 길이의 ‘힐클라임’ 주행 구간은 다양한 차량의 성능을 보여주는 코스로 정평이 나 있다. 올해 행사에서도 둘째날인 12일 이른 오전께 현장에 많은 비가 내리면서, 주행을 마치고 진흙이 묻은 고성능차와 올드카의 모습이 쉽게 관측됐다. 마지막날 열린 힐클라임에서의 고성능 질주에서는 거니의 1974년식 이글-쉐보레 FA74가 47.34초의 성적으로 레이싱을 마친 차에 올랐다.
소비자의 반응이 뜨겁다 보니 모터쇼에 참가하고, 부스를 마련하는 것 자체가 완성차업계에는 큰 상징이 된다.
올해 행사에 참가한 완성차업계 고위 관계자는 “업체 입장에서는 굿우드 페스티벌에 참가하는 자체가 차량의 준수한 주행성능을 관객에게 뽐낼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서 “무조건 돈만 낸다고 행사에 참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성능과 브랜드 가치가 어느정도 검증된 브랜드만이 행사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자동차 마니아들을 위한 축제인만큼 다양한 업체들이 소비자와 소통하는 모습도 눈길을 끈다.
이 가운데 올해는 현대자동차그룹 산하 제네시스가 마련한 부스에서 ‘고성능차’인 마그마 차량들이 전시돼 현지 소비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BYD와 지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차로 알려진 홍치 등 중국 브랜드들, 미니와 포드 등 기성 자동차 브랜드도 대거 참가해 소비자들에게 주력 차량을 소개했다. 소비자들이 차량을 직접 볼 수 있도록 하고, 또 다양한 체험콘텐츠로 브랜드의 철학도 알리는 것도 굿우드 페스티벌의 특징이다.
올드카와 고성능차들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한다. 현지 중고차 브랜드인 ‘클래식&스포츠카 센터’, 올드카 복원 브랜드인 ‘라잔테 리미티드’(Lazante) 등이 마련한 부스는 쉽게 보기 힘든 다양한 차량들이 전시됐다.
아울러 재키 스튜어트 경, 제키 익스(제네시스 스폰서), 미카 하키넨, 페르난도 알론 등 세계적인 스타가 직접 현장을 찾는다. 행사 주최자인 제11대 리치몬드 공작가 찰스 고든레녹스 경도 주기적으로 기념품샵을 찾아 팬들과 소통한다.
행사장 한 켠에 마련된 천막 형식의 부스에서는 자동차와 관련한 다양한 굿즈, 또 부품을 직접 판매하기도 한다. 실제 현장에서는 이들 부스도 행사장을 방문한 소비자들이 몰리면서 북적이는 모습이었다.
중고차 브랜드들도 참가해서 올해 영국의 ‘헤이카’는 레이싱에 참여할 차량이 대기할 공간을 마련하는 동시에, 중고 올드카로 가상 주행을 체험해 보는 레이싱 기기를 들여와 눈길을 끌었다. 헤이카 담당자는 “행사장을 찾은 고객들이 브랜드에 매력을 끌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하면서 나온 부스 형식”이라면서 “고성능차에 관심이 많은만큼 다양한 올드카도 훌륭한 성능을 뽐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고 설명했다. 헤이카가 마련한 부스에는 올드카 가상 주행을 체험하려는 대기시간은 12일 오후 2시 기준 약 20분 이상에 달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올해 굿우드 페스티벌의 성공적인 개최는 최근 글로벌 모터쇼 시장이 부진한 상황과 대비된다. 세계 5대 모터쇼 중 하나로 꼽혔던 스위스 제네바 모터쇼는 성적 부진 탓에 120여년의 역사를 마감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앞서 지난 6월 부산 벡스코에서 개막한 부산모빌리티쇼에도 수입차 브랜드 중에서는 BMW만 참석하기도 했고, 제네바와 함께 5대 모터쇼를 구성해 온 독일 프랑크푸르트, 미국 디트로이트, 프랑스 파리, 일본 도쿄 모터쇼도 사업 규모를 매년 줄여가고 있다.
한 완성차업계 관계자는 “친환경 전기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온라인으로 차량을 판매하는 트렌드가 확산하는 가운데 정작 대부분 모터쇼에서 차량의 매력을 직접 볼 수 없어 고객들의 아쉬움이 커진 상황”이라면서 “이제 모터쇼가 소비자들에게 다양한 볼거리와 체험거리를 얼마나 제공할 수 있느냐가 생존을 위한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