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자 83%가 허가증 없는 순례자

천만원짜리 '죽음의 여행'된 성지순례, ‘불법 브로커’ 성지 [세모금]
16일(현지시간) 이슬람 순례자들이 사우디아라비아의 성지 메카 근처 미나를 방문하고 있다. [AFP]

[헤럴드경제=김빛나 기자] 메릴랜드 주민인 이스타우 우리와 엘리우 우리 부부는 2만3000달러(약 3100만원)를 내고 이슬람 정기 성지순례(하지)를 떠났다가 사망했다. 우리 부부는 성지순례를 떠나기 위해 몇 년 간 저축한 돈을 현지 여행사에 내고 여행을 떠났으나 사망 직전까지 제대로 된 투어를 받지 못했다.

우리 부부의 딸은 24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어머니로부터 받은 마지막 메세지에는 버스가 도착하지 않아 2시간 동안 걸어갔다는 내용이 담겼다”고 말했다.

하지 사망자가 1300명을 넘긴 가운데 사우디아라비아가 하지 기간 인파를 통제하지 못해 사고를 키웠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원칙적으로는 허가 받은 인원만 성지순례를 갈 수 있지만 불법 브로커나 여행사를 통해 순례자가 쏟아지면서 사망자 수가 늘었다는 것이다.

NYT에 따르면 매년 200만명이 참여하는 성지순례에서 해마다 사망자가 발생하는 가운데 이들 대부분은 온열 질환으로 사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최근 몇 년 동안은 하지 기간 폭염이 극심해 심혈관 질환, 열사병 등으로 숨진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여기에 미등록 순례자가 대부분이라 전체 사망자 1301명 중 83%가 허가 받지 않은 순례자였다. NYT는 “대규모 사망자가 발생한 것은 사우디 정부의 안전 정책의 실패”라며 “하지 시작 몇 주 전에 메카 주변을 폐쇄하고, 등록되지 않은 순례자들이 성지에 도착하는 것을 막으려 했으나 실패했다”고 전했다.

천만원짜리 '죽음의 여행'된 성지순례, ‘불법 브로커’ 성지 [세모금]
16일(현지시간) 이슬람 순례자들이 사우디아라비아의 성지 메카 근처 미나를 방문한 순례자가 휠체어에 앉아 이동 중이다. [AFP]

상당수 순례자가 여행사의 불법 알선이나 불법 브로커를 통해 하지에 참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NYT는 “이들이 출신 국가에 따라 5000달러(약 690만원)에서 1만달러(약 1300만원) 이상을 받는다”며 올해는 이집트와 요르단 국가에 경제 위기가 찾아와 달러 대비 화폐 가치가 떨어지면서 유난히 미등록 순례자가 많았다고 전했다.

허가를 받지 않은 순례자들은 하지 시작 몇 주 전 미리 메카에 도착해 숨어 지내다가 에어컨이 없는 버스로 이동하고 물, 식량에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등 불합리한 상황을 겪는다고 NYT는 전했다. 이집트 여행사의 불법 알선으로 가족 모두 성지순례에 왔다 할머니가 사망한 알 타와브씨는 NYT에 “사우디에 오기 전까지 우리가 규정을 위반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며 “친척들과 함께 숙소에 갇히고 버스를 못 탄 채 더위 속에서 걸어야 했다”고 전했다.

사망자가 폭증하자 일부 국가에서는 성지순례 여행사에 제재를 가하는 등 조치에 나섰다. 모스타파 마드불리 이집트 총리는 하지 여행을 주선한 여행사 16곳의 면허를 박탈하고 메카 여행 불법 알선 혐의로 여행사 관리자들에 대한 검찰 조사를 명령했다. 최소 99명의 순례자가 사망한 요르단도 불법 성지순례 사업에 대해 검찰이 수사에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