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L-R에 피의자 동의는 필요 없어”
“법원 양형 판단 시 결코 무관치 않아”
“사이코패스 여부보단 사건 본질에 관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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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이용경 기자] 최근 강남 의대생 교제살인 사건이 발생한 이후 피의자에 대한 ‘사이코패스 진단검사(PCL-R)’ 시행 여부에 또 다시 관심이 집중됐다. 강력범죄 사건이 발생할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PCL-R’. 헤럴드경제가 이에 관한 몇 가지 오류를 짚어봤다.
사이코패스 검사에 피의자 동의 필요?… 정답 = 필요없다
이별을 통보한 피해자를 흉기로 살해한 20대 의대생 남성 최모 씨가 지난 14일 검찰에 구속 송치됐다. 앞서 최씨에 대한 ‘PCL-R’을 실시할 때 피의자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일부 언론 보도가 이뤄졌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심리검사에 해당하는 ‘PCL-R’에는 ‘피의자 동의’가 필요 없다. 이는 경찰청이 지난 13일 정례 브리핑에서 밝히기도 했다. PCL-R은 형사 절차상 법률적 규정이 별도로 존재하지도 않는다.
경찰청 과학수사과 관계자는 16일 헤럴드경제와 통화에서 “사이코패스 검사는 수사 과정에 공식적으로 포함시켜야 되는 게 아니라, 프로파일러(범죄심리분석관)들이 피의자의 범행동기를 분석할 때 필요하면 실시하는 것”이라며 “일종의 심리 평가이다보니 이에 관한 법률적 규정이 있을 수는 없고, 내부적인 지침만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반적으로 피의자의 범행 동기를 분석하고 규명하기 위해 PCL-R을 많이 활용하는데, 경찰 수사 단계에서는 시간이나 자료의 제약이 많다”며 “대검 차원에서도 통합심리분석실에서 주요 사건 피의자들에 대한 사이코패스 검사를 실시한다”고 설명했다.
PCL-R은 캐나다 심리학자 로버트 헤어가 1991년 만든 사이코패스 측정 검사다. 국내에서는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와 조은경 한림대 심리학과 교수가 지난 2008년 한국 범죄자 유형에 맞춰 표준화 작업을 한 뒤 한국판 PCL-R로 활용되고 있다.
이수정 경기대 교수는 이날 헤럴드경제와 통화에서 “PCL-R 검사 자체는 자기보고식 검사가 아니어서 당사자 동의가 꼭 필요하지 않다”며 “형사사법적으로 동의가 필요한 절차라거나 수사 면담 과정에서 변호인 입회 하에 실행해야 하는 것과 동일하게 간주할 성격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피의자가 동의를 하지 않는 것도 사이코패스 진단검사 시 평가의 단초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사이코패스 검사’ 결과 양형과는 무관?… 정답 = 영향 있다
사이코패스 검사, 이른바 PCL-R에 관한 또 다른 오해는 법원 단계에서 ‘양형’과 전혀 무관하다는 인식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같은 ‘사이코패스 검사’ 결과는 법원의 양형 판단에 있어 결코 무관하지 않다. 다만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양형 기준상 사이코패스인지 여부가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이처럼 단정적 혼란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PCL-R은 재범위험성 평가 도구 중 하나”라며 “재범위험성이 있는지 여부는 집행유예 여부에도 굉장히 큰 영향을 주고, 전자발찌와 같은 각종 부수적 처분을 할 때도 고려하게 돼 있다”고 말했다.
이 판사는 이어 “양형에 재범위험성도 고려된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PCL-R 결과는 중요한 요소”라며 “양형기준에 사이코패스 진단 여부가 안 들어가 있어서 ‘양형요소’가 아니라고 오해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양형이라는 건 굉장히 전인격적 판단이기 때문에 PCL-R 결과도 재판 시 피고인에 대해 참고하는 중요 자료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사이코패스 여부는 ‘곁가지’… “사건 본질 집중해야”
한편 전문가들은 이번 의대생 교제살인 사건과 같은 강력범죄가 발생될 때마다 범죄자의 ‘사이코패스 해당 여부’에 여론이 집중하는 데 대해 사회적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강력범죄 사건이 발생한 상황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차단하고, 범죄자 개인의 정신병리학적 특성 탓으로만 사건을 바라보게 한다는 이유에서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범죄자가 사이코패스에 해당되는지 여부보다도 해당 범죄자가 범한 범죄행위 자체가 더 중요한 것”이라며 “강력 사건을 일부 사이코패스 특성을 가진 개인의 특성으로 돌리면 범죄가 발생한 사회적 배경 내지 맥락에 대한 폭넓은 논의를 자연스럽게 봉쇄할 우려가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