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보증금 대출 악용 대출사기단 엄단”
25일, 서울남부지검 한우현 검사 인터뷰
[헤럴드경제=이용경 기자]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이 돈을 구하기 위해 대출사기 범죄에 연루되는 상황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최근 일선 법원에서는 금융기관의 청년 전·월세보증금 대출 제도를 악용한 사기 범죄 가담자들에 대한 실형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서울남부지법에서도 지난 8일 사기, 사기미수 등 혐의로 기소된 대출사기 일당에게 실형이 선고됐다. 이번 사건을 맡아 사기범들을 엄단한 한우현 서울남부지검 검사는 25일 헤럴드경제와 만나 수사와 기소 과정에서 느낀 소회를 이같이 밝혔다.
한 검사는 최근 잇따르는 청년 보증금 대출 제도를 악용한 대출사기 범죄에 대해 “보통 이러한 사건은 허위 임대인과 허위 임차인이 짝을 이뤄 범행을 저지르는데, 전세 대출금을 신청할 때 부동산 1개당 대략 1억 원 상당의 전세 대출금을 편취한다”고 설명했다. 이번에 한 검사가 수사·기소한 사건도 총 5명의 피고인이 5건의 전세대출금을 신청해 총 5억 원을 가로챈 사건이다.
전세사기 전담 부서에 소속됐었던 한 검사는 이번 청년 대출 상품을 이용한 대출사기 사건 이외에도 관련 사건 수사에 여러 차례 참여해 왔다. 그는 “이러한 사건은 남부지검에만 있지 않다”며 “총책과 모집책 등 전체 범행을 기획하는 존재가 있고, 이들의 기획에 따라 상당수의 사람들이 허위 임대인·임차인으로 동원되기 때문에 그 피해 규모가 전국적으로 상당한 정도”라고 말했다.
한 검사의 설명에 따르면 ‘대출 사기’ 범죄단은 크게 기획책·모집책·계약책 세 부류로 구성된다. 기획책은 범죄를 기획하는 인물이고, 모집책은 허위 임대·임차 계약인을 모으는 역할을 맡으며, 계약책은 실제로 자신의 이름으로 허위 계약을 해 은행에 대출을 신청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예컨대 은행에서 대출이 1억원이 나왔을 경우 계약책에겐 1000만~2000만원이 배분되고, 나머지 8000만원은 기획책과 모집책이 나눠 갖는 구조다.
한 검사가 ‘안타깝다’고 표현한 청년들은 주로 계약책으로서 통상 허위 임대인·임차인 역할로 대출사기 범죄에 가담하는 사람들이다. 보통 대출사기 총책들은 SNS상에서 비금융권 대출을 미끼로 비교적 나이가 어리고 경제적으로 상황이 좋지 않은 이들을 쉽게 유인한다고 한다. 또 임대차 계약에 대한 경험이나 지식이 부족한 청년 층이라면 더욱 쉽게 이 같은 허위 임대인·임차인 역할로 범죄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수사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을까. 한 검사는 “아직 확정된 사건이 아니어서 맡은 사건과 관련한 수사 과정을 말하기는 어렵다”며 “다만 대략적으로 전세대출금 사기 사건은 실제 임차인이 존재하는 상태에서 허위 임대차를 새로 만들어 대출을 받거나, 갭투자를 상정하고 임대차 계약을 허위로 만든 뒤 대출을 받고 이를 전혀 갚을 생각이 없이 돈을 나눠 갚는 구조로 범행이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범행후) 조만간 허위 임대차의 존재가 밝혀지게 되기 때문에 허위 임대인·임차인의 대출금 분배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허위 임대인·임차인 역할을 한 사람은 물론 이들을 모은 총책이나 모집책들도 확인할 수 있게 된다”고 덧붙였다.
특히 한 검사는 피해 금융기관이 임대차 계약의 허위 여부를 알기 힘든 구조라고 설명했다. 그는 “대출금 신청을 하기 위해서는 은행마다 약간 차이는 있지만, 보통 전세 계약서와 계약금 영수증, 재직 증명서, 4대 보험 가입 내역 확인서 등을 제출하게 된다”며 “금융기관 입장에서 전세 계약서와 계약금 영수증은 허위인지 여부를 확인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재직증명서와 4대 보험 가입 내역 확인서도 모두 위조된 서류이기 때문에 해당 회사가 실존하지 않는다”며 “하지만 대출사기 일당들이 재직 여부를 확인해주는 사람도 별도로 두고 있기 때문에 허위라는 것을 쉽게 알 수가 없다”고 했다.
대출사기 일당을 엄중히 처단한 한 검사는 수사 과정에서 느낀 안타까운 심정도 밝히기도 했다. 그는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이 이러한 범죄에 금전을 구하기 위해 연루된다는 게 심정적으로 많이 안타까웠다”며 “대개 이러한 사건은 대출신청 내역도 은행 전산에 보관돼 있고, 비대면으로 이뤄지는 대출신청 서류들이 전부 증거로 남아 있어서 피고인들이 범행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너무 힘들어서 가담하게 됐다’는 얘기를 들을 때는 안타까운 심정이 들었던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 검사는 이 같은 대출사기를 예방하기 위한 사회적 선제 조치로서 “청년들을 상대로 대출 홍보 등을 접할 경우 전세사기 범죄에 연루될 가능성이 있다는 부분을 널리 알리는 조치가 필요하다”며 “금융기관도 대출 심사 시 보다 꼼꼼하게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인터뷰 말미에서 한 검사는 이번 사건과 같은 대출사기 범죄로 기소되고 처벌받게 된 청년들, 향후 범죄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는 청년들을 향해서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한 검사는 “범행 구조를 보면, 허위 임대인·임차인으로 가담해 전세 대출을 받으면 대부분 전세대출금 중 대략 10%를 수당으로 받아가는데, 실제로는 그 대출금 전액에 대해 허위 임차인이 채무자로서 상환 책임을 져야 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며 “이처럼 대출사기에 연루되면 범죄자로 전락할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전세대출금 채무 전액을 부담해야 되는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상황이 생기기 때문에 청년들이 조금 더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대출 사기 범행은 피해자인 금융기관의 피해를 넘어 청년 전·월세보증금 대출 제도를 이용하려는 다수의 선량한 청년들까지 피해를 미치고 궁극적으로는 국가 재정에 손실을 입히게 되는 사회적 해악이 매우 큰 범죄임을 명심해 줬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