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슨 황 CEO “삼성에 기대 크다” 극찬
12단 제품 향한 고평가로 분석
“HBM 실수 되풀이 없다”…12단·HBM4에 총력
[헤럴드경제=김민지 기자] ‘JENSEN APPROVED(젠슨이 승인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 서명 하나에 삼성전자의 HBM(고대역폭메모리)를 향한 분위기가 급반전 됐습니다. 그가 삼성의 기술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자 주가가 치솟을 정도입니다.
삼성전자는 HBM에서 ‘실수’의 쓴 맛을 봤습니다. 절치부심하는 심정으로 지난해 말부터 공격적으로 엔비디아 공략에 나섰습니다. 이번 젠슨 황의 발언과 행보로 보아, 협업 관계 구축이 원활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궁금증도 듭니다. 갑자기 젠슨 황은 왜 삼성에 대해 공개적으로 러브콜을 보내는 제스처를 취한 걸까요? 삼성전자의 어떤 기술력에 큰 기대를 걸고 있는 걸까요? 오늘 칩만사에서 숨겨진 배경을 알아보겠습니다.
삼성전자 콕 찝어 치켜세운 젠슨 황…‘기대’의 주인공은 12단?
지난 21일(현지시간) 막을 내린 엔비디아의 연례 개발자 콘퍼런스 ‘GTC 2024’는 반도체 업계의 최대 화두였습니다. 젠슨 황 CEO의 한마디 한마디에 관련 업계들의 주가가 들쑥날쑥할 정도였죠. AI 반도체 시장에서 가진 엔비디아의 영향력을 새삼 다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가장 주목할만한 건 삼성에 대한 젠슨 황의 태도였습니다.
그는 “고대역폭 메모리, HBM은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기술이고 기술적인 기적과도 같다”며 “삼성전자의 HBM을 테스트하고 있는 중인데 기대가 크다”고 말했습니다. 또 “한국인들은 삼성이 얼마나 대단한 기업인지 잘 모른다”며 “삼성은 매우 비범한 기업”이라고 치켜세웠습니다. 그는 삼성 부스를 찾아 삼성이 세계 최초로 개발에 성공한 12단 HBM3E에 친필 사인도 남겼습니다.
때문에 업계에서는 젠슨 황이 삼성을 콕 집어 “기대하고 있다”고 언급한 것이 12단 제품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삼성이 12단 제품에서만큼은 SK하이닉스 보다 한발 앞섰다고 평가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삼성전자는 세계 최초로 12단 HBM3E 제품 개발에 성공해 고객사에 샘플을 공급했다고 지난달 밝혔습니다. HBM은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연결해 쌓아 데이터 처리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인 메모리 칩입니다. 단수가 높아질 수록 고성능이 가능하지만, 같은 두께로 구현해야 하기 때문에 훨씬 고도화된 기술을 요구합니다. 현재는 8단이 주력 제품이지만 12단, 더 나아가 HBM4(6세대)에서는 16단까지 높이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HBM에서의 ‘실수’ 12단만큼은 없다”…선행 기술 총력
그럼 왜 삼성이 12단 제품에서 한발 앞섰다고 평가받는 걸까요? 거기엔 바로 공정의 차이가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적층 공정으로 ‘어드밴스드 TC NCF(열압착 비전도성 접착 필름)’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D램을 쌓을 때 칩 사이에 얇은 비전도성 필름(NCF)을 넣은 뒤 열로 압착하는 방식으로, 칩 사이의 공간을 완벽히 메울 수 있다는 게 삼성전자 설명입니다.
반면, SK하이닉스는 ‘어드밴스드 매스리플로 몰디드언더필(MR-MUF)’을 쓰고 있습니다. 액체 형태의 보호재를 공정 사이에 주입해 굳히는 방식입니다.
8단 제품까지는 MR-MUF 방식이 훨씬 생산성이 좋았습니다. 그러나 12단, 16단 등 단수가 높아지는 상황에서는 NCF 방식이 유리하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12단 적층 제품부터 칩 휘어짐에 의한 기술적 문제 발생 가능성이 있는데 MR-MUF 방식은 이에 취약할 수 있다는 겁니다.
앞서 삼성전자가 경쟁사인 SK하이닉스의 ‘MR-MUF’ 기술 관련 반도체 제조 장비를 주문했다는 로이터통신의 보도에 대해 삼성전자가 즉각 “MR-MUF 기술을 도입할 계획이 없다”고 부인한 것도 이 같은 이유로 풀이됩니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해 가장 많은 12단 HBM3 제품을 양산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8단 보다 시장이 크지는 않지만, 차세대 기술인 12단 제품에서 SK하이닉스 보다 탄탄한 제조 경험을 축적됐다는 평가입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HBM 시장 점유율은 SK하이닉스 49%, 삼성전자 46%, 마이크론 5%로 나타났습니다. 삼성과 SK의 격차가 불과 3%포인트 밖에 되지 않습니다.
삼성전자는 올해 12단 제품에 총력을 다할 전망입니다. 경계현 DS(디바이스솔루션·반도체) 부문장 사장은 최근 열린 정기주주총회에서 사업전략 방향을 설명하며 “12단 적층 HBM 선행을 통해 HBM3(4세대)·HBM3E(5세대) 시장의 주도권을 찾을 계획”이라며 “D1c D램, 9세대 V낸드, HBM4 등과 같은 신공정을 최고의 경쟁력으로 개발해 다시 업계를 선도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