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M·파운드리서 거세지는 美 반도체 기업 공세

마이크론, 제일 먼저 HBM3E 대량 양산 시작

‘엔비디아 GPU에 탑재’ 발표…공고한 파트너십 강조

“파운드리 인텔처럼 美 기업 이점 있을 것”

“엔비디아에 들어간다” 대놓고 밝힌 美 마이크론…삼성·SK에 한참 밀려도 ‘큰 위협’인 이유는? [김민지의 칩만사!]

‘칩(Chip)만사(萬事)’

마냥 어려울 것 같은 반도체에도 누구나 공감할 ‘세상만사’가 있습니다. 불안정한 국제 정세 속 주요 국가들의 전쟁터가 된 반도체 시장. 그 안의 말랑말랑한 비하인드 스토리부터 촌각을 다투는 트렌드 이슈까지, ‘칩만사’가 세상만사 전하듯 쉽게 알려드립니다.

마냥 어려울 것 같은 반도체에도 누구나 공감할 ‘세상만사’가 있습니다. 불안정한 국제 정세 속 주요 국가들의 전쟁터가 된 반도체 시장. 그 안의 말랑말랑한 비하인드 스토리부터 촌각을 다투는 트렌드 이슈까지, ‘칩만사’가 세상만사 전하듯 쉽게 알려드립니다.

[헤럴드경제=김민지 기자] “HBM(고대역폭메모리)에선 마이크론,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에선 인텔…힘 받는 미국 기업들.”

메모리와 파운드리 시장에서 미국 기업들의 공세가 거세지고 있습니다. 마이크론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보다 한발 먼저 8단 HBM3E(5세대 제품) 대량 양산을 공표했고, 당당하게 고객사가 엔비디아라고 명시했습니다. 앞서 인텔도 마이크로소프트(MS) AI 반도체 칩을 수주했다고 밝히며, 미국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고 파운드리에서 6년 안에 삼성을 밀어내고 2위 자리를 꿰차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삼성·SK 모두 예의주시 하는 모양새입니다. 다른 곳도 아니고 미국 기업이란 점이 가장 큰 위협 요소입니다. 자국 반도체 산업 부활을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는 미국 정부와 빅테크 기업들과의 ‘원팀’ 전략 시너지를 무시할 수 없습니다. AI 붐으로 큰 성장이 예상되는 HBM과 파운드리 시장에서 한국 기업들이 자리를 뺏기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칩만사에서 알아보겠습니다.

“삼성·SK보다 빨랐다”…모두를 놀라게 한 마이크론 ‘깜짝 발표’

26일(현지시간) 마이크론은 자사 홈페이지에 갑자기 깜짝 소식을 알렸습니다. 바로, 5세대 HBM 제품인 8단 ‘HBM3E’의 대량 양산을 시작했다는 겁니다. 이는 고객사 인증을 완료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엔비디아에 들어간다” 대놓고 밝힌 美 마이크론…삼성·SK에 한참 밀려도 ‘큰 위협’인 이유는? [김민지의 칩만사!]
마이크론 HBM3E [마이크론 홈페이지]

HBM3E 대량 양산은 HBM 업계 선두주자 SK하이닉스도 아직 시작하지 못한 겁니다. 앞서 SK하이닉스는 고객사 인증을 완료하고 올 상반기에 HBM3E 양산을 시작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습니다. 이르면 다음달 양산이 예상됩니다.

흥미로운 건 마이크론이 공개적으로 고객사가 엔디비아라고 밝힌 사실입니다. 마이크론은 게시글에서 “우리 HBM3E는 올 2분기 출하될 엔비디아의 ‘H200 텐서코어 그래픽칩(GPU)’에 탑재될 것”이라고 명시했습니다. 또한, “경쟁사 대비 전력소비가 30% 적다”며 성능 개선도 강조했습니다.

고객사명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건 업계에서는 꽤 손에 꼽히는 사례로, 마이크론과 엔비디아의 파트너십이 매우 공고하다는 점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엔비디아의 동의가 있어야 공개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엔비디아에 HBM3를 독점 공급한 SK하이닉스도 공식적으로 이를 밝힌 적은 한번 뿐입니다. 마치 홍길동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것처럼, 고객사는 밝힐 수 없는 ‘공공연한 비밀’인 경우가 많습니다.

“엔비디아에 들어간다” 대놓고 밝힌 美 마이크론…삼성·SK에 한참 밀려도 ‘큰 위협’인 이유는? [김민지의 칩만사!]
젠슨 황 엔비디아 CEO [엔비디아]

이날 마이크론은 12단 HBM3E 제품 샘플을 다음달 고객사에 전달하겠다는 향후 로드맵도 공개했습니다. 이달 12단 HBM3E 제품을 고객사에 제공했다고 밝힌 삼성전자 보다 약 한달 늦은 속도입니다.

마이크론, 당장 위협은 아니지만…“美 기업이란 점 간과해선 안돼”

물론, 당장 올해 마이크론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제칠 가능성은 현저히 적습니다. 지난해 HBM 시장 점유율은 SK하이닉스 50%, 삼성전자 40%, 마이크론 10% 구도입니다. 이미 SK하이닉스의 올해 HBM 물량은 전부 매진일 정도로 잘 팔리고 있고, 삼성전자도 올해 HBM 생산능력(캐파)를 지난해 대비 2.5배 늘리며 총력을 다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엔비디아에 들어간다” 대놓고 밝힌 美 마이크론…삼성·SK에 한참 밀려도 ‘큰 위협’인 이유는? [김민지의 칩만사!]
삼성전저가 세계 최초 개발한 HBM3E 12H D램 제품 이미지 [삼성전자 제공]

그러나 마이크론이 내년 HBM 시장 점유율을 25%까지 늘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엔비디아를 포함한 여러 AI 반도체 회사들은 앞으로 훨씬 더 많은 HBM을 필요로 할 것인데, SK하이닉스의 HBM 생산 능력 확대는 제한적입니다. 마이크론이 남는 물량을 조금씩 차지하기 시작한 후, 미국 기업이라는 점을 앞세워 엔비디아 등과 더 밀접한 파트너십을 맺을 수 있다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전문가들은 인텔처럼 마이크론 역시 메모리 시장에서 미국 정부의 ‘밀어주기’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반도체 업계 전문가는 “마이크론의 HBM 생산 역량이 지금은 다소 뒤쳐져 있다고 해도, 미국 기업끼리 손잡고 ‘일감 몰아주기’에 나선다면 삼성·SK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며 “무조건 기술력으로 차별화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엔비디아에 들어간다” 대놓고 밝힌 美 마이크론…삼성·SK에 한참 밀려도 ‘큰 위협’인 이유는? [김민지의 칩만사!]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이 지난 21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 맥에너리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IFS(인텔 파운드리 서비스) 다이렉트 커넥트' 행사에 화상으로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

최근 인텔이 파운드리 사업부 정식 출범을 알리는 첫 행사를 열었을 때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부 장관이 화상으로 참석해 “인텔은 반도체 업계의 챔피언으로, 미국의 반도체 산업이 활성화되는 데 매우 큰 역할을 할 것”이라며 “반도체를 실리콘밸리(미국의 반도체산업 발상지)에 돌려줍시다”라고 말했죠. ‘2030년 파운드리 2위’ 자리를 목표로 내건 인텔을 대놓고 밀어주겠다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인텔 역시 이 자리에서 파운드리 고객사로 MS를 확보했다고 당당하게 밝혔습니다. 50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맺고 MS의 AI 칩 수주에 성공했다며, 매우 이례적으로 구체적인 금액까지 공개했습니다.

결국 메모리와 파운드리 시장에서 경쟁력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한국 기업들에겐 기술력 뿐이라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미국 정부처럼 수백조원의 자금력을 가진 지원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한국 기업들이 기댈 곳은 인재와 기술력”이라며 “HBM 뿐 아니라 PIM, CXL 등 차세대 고부가가치 메모리 시장을 누구 보다 빠르게 선도하며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해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